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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정신 장 2절 계몽주의 주석(5)- 계몽의 자가당착
이병창 2019.12.24 33
정신현상학 정신 장 2절 계몽주의 주석(5)- 계몽의 자가당착


1) 앞의 요약

지금까지 계몽이 신앙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헤겔은 타자에 대한 비판은 결국 자기에 대한 비판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헤겔은 우선 신앙이 믿고 있는 절대적 존재 즉 신에 대한 계몽의 비판을 검토합니다.


계몽은 대상 속에서 자기를 봅니다. 사실 이 자기는 그가 대상 속에 집어넣은 것이죠. 계몽은 이런 자기를 거꾸로 대상이 그에게 드러낸 것이라 즉 객관적이라 봅니다.


반면 신앙은 절대적 존재를 믿지만 절대적 존재에 대해 내적인 친밀감을 가지고 있죠. 본래 절대적 존재란 곧 공동체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신앙은 그런 공동체 정신을 자기 밖에 초월적으로 존재한다고 전제합니다.


구조적으로 계몽과 신앙은 동일합니다. 다만 계몽은 자기가 집어넣는 것을 대상이 주는 것으로 보고, 신앙은 자기 넘어 있는 존재가 자기를 사랑한다 믿죠. 전자가 편집증이라면 후자는 나르시시즘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계몽이 신앙의 절대적 존재를 비판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객관적 존재를 상정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과 같죠. 동시에 계몽은 신앙이 이 절대적 존재에 대해 내적인 친밀감을 느끼고 따라서 자기와 마찬가지로 그 속에서 자신을 본다는 사실은 알지 못합니다.


2) 사제의 바꿔치기

이어서 헤겔은 계몽이 사제의 기만을 비판하는 것으로 이행합니다. 계몽은 신앙이 믿고 있는 절대적 본질은 사제가 바꿔치기한 아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데, 이점에 관해서 계몽은 정말로 바보 같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계몽은 순진무구한 의식이 사제의 기만을 자기의 것으로 삼는다고 비판하지만, 계몽은 자기가 말한 것의 반대를 말하면서, 자기가 사실은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폭로하기 때문입니다.


헤겔은 순진무구한 의식이 진리라고 확신하는 것에는 어떤 기만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헤겔은 대중을 속이는 것이 가능하냐고 반문하면서, 대중이 믿고 있는 것이 바로 진리인 한에서 대중을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의식이 직접적으로 자기를 확신하는 본질에 대한 지식에서 기만이라는 생각은 전적으로 배제된다.”


여기까지가 헤겔이 계몽과 신앙 사이의 투쟁을 일반적으로 서술한 부분입니다. 이어서 299: 16에서 302:27까지는 세부적인 투쟁을 서술합니다. 이 세부적 투쟁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우선 신앙의 대상인 신의 조각상, 두 번째는 신앙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로서 지식(계시와 성서), 세 번째로는 절대적 존재와 관계를 맺는 행위(봉사)를 다룹니다. 이제 계몽과 신앙의 투쟁을 세부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죠.


3) 신의 조각상에 관해

계몽이 보기에 조각상의 본질은 ‘순수 사유’에 지나지 않고, 신앙에서는 이것이 ‘대상성이라는 공허한 형식’을 가질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계몽이 보기에 ‘표상된 것’ 즉 환상이 되죠.


그러나 신앙이 볼 때 그가 숭배하는 조각상은 감각적 사물이지만 그것은 절대적 존재를 표현합니다. 절대적 존재는 내적인 것이고 감각적 조각상은 외적인 것이 되죠.


계몽과 신앙이 조각상에 대해 각각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조각상은 감각적 사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계몽의 비판은 불법을 범하는데 왜냐하면 신앙의 대상[절대적 존재]을 그 자신의 대상[순수 사유]으로 파악하였기 때문입니다.


“계몽은 자신이 순수한 의식이라고 사칭하지만, 정신[신앙]에게 영원한 삶이며 성스러운 정신인 것을 실제의 가멸적인 사물로 만들고, 이를 그 자체로 무실한 견해인 감각적 확실성을 가지고 그런 것을 모독한다.”


신앙은 감각적 사물인 조각상이 조각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몽의 비판은 헛다리를 짚은 것이죠.


“계몽이 신앙의 대상은 또한[Auch] 이런 것[감각적 사물]이기도 하며, 심지어 본래 그리고 진실로 이런 것이라고 하고 말할 생각이 떠오를 때, 신앙은 부분적으로 그런 ‘또한’을 인정하지만 그런 또한은 그에게 숭배 밖에 있는 것이다. .. 오히려 순수 사유의 본질만이 신앙에게서 본래적인 것이다.”


4) 신앙의 근거


“신앙은 사유하는 순수의식이므로, 그에게 절대적 존재가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계시는 소수에 한정되며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소수가 전한 것을 믿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의 근거라고 말하는 것이죠.


계몽은 이런 신앙의 근거 즉 최초의 계시는 우연한 사건에 대한 우연하게 얻은 지식입니다. 하지만 신앙은 이런 지식 즉 계시를 들은 사람은 ‘인식하는 일반자’[Wissende Allgemeine]‘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를 표현한 말로 보입니다. 즉 보통 사람과 다른 인간을 대표하는 일반자이고, 그는 다른 사람과 달리 신을 아는 능력을 가진 자입니다. 왜냐하면 그에게서 신이 곧 자신이므로 신에 대하여 아는 것은 곧 자기를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근거는 인식하는 일반자이다. 즉 그는 진실로 절대적 정신이며, 추상적인 순수한 의식 또는 사유 자체를 지닌 다만 절대적인 본질이며, 그러나 자기의식으로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다.”


계몽 역시 순수의식이지만, 그는 자신의 본질을 모르며, 따라서 그에게서 모든 것은 대상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계몽은 신앙이 지닌다고 하는 이런 계시는 하나의 기만이며, “역사적인 증인이 관찰한 하나의 역사적 증거”일뿐이라 생각하죠.


그러나 과연 이런 증거를 믿을 수 있을까요? 더구나 그런 증거를 성서가 제대로 보존해 왔을까요? 이 증거는 기록되고, 전사되는 가운데 변조되지 않았을까요? 최종적으로 우리는 그 시대 언어로 말한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것일까요? 계몽은 이 모두 의심스럽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신앙은 이런 역사적 증거나, 성서를 말 그대로 믿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은 그런 말은 마치 조각상과 마찬가지로 외적인 계기에 불과하죠. 신앙은 그런 말의 배후에 있는 신의 계시를 감각적 눈으로 파악하지 않고 마음의 눈으로 파악하죠.


“그러나 사실상 신앙은 그런 증거나 우연성에 그의 확신을 연결하려는 생각을 떠올리지 않는다. 신앙은 확신하면서 그의 절대적 대상에 대해 무구속적인[직접적인] 관계를 갖는다.”


5) 향락과 소유의 포기

마지막으로 세 번째 측면은 행위를 통해 절대적 존재와 만나는 겁니다. 즉 개인은 자신의 자연적 욕망을 정화하면서 순수한 자기의식이 되고, 본질과 하나가 된다는 확신을 얻는다는 겁니다.


계몽은 이런 행위를 비판하는데, 합목적성의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으며, 목적의 측면에서 사악하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은 모두 부조리하다고 헤겔은 생각합니다.


우선 계몽은 신앙이 자연적 향락과 만족을 실제로 포기함을 통해서 또는 소유를 내던짐으로써 순수 의식이 되려 한다고 믿습니다. 계몽은 이것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향락과 소유의 포기는 스스로 죽게 만드니, 순수한 본질과 합일에 이를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계몽은 이것이 불순한 의도[목적]를 지녔다고 믿는데 왜냐하면 향락과 소유는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헤겔은 계몽이 이런 식으로 신앙에 대한 비판하는 것은 계몽 자신의 불순한 의도 즉 향락과 소유가 그의 목적임을 드러내며 또한 부조리 한데 왜냐하면 스스로 순수한 사유이기를 바라면서도 그 수단이 되는 향락과 소유에서 해방될 다른 길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헤겔은 계몽은 다만 의도에서만 순수 사유에 이르고자 하며 행위를 통해 이를 실행할 뜻은 없다고 비판합니다.


"그 순수한 의도란 진실로 하나의 기만이다. 즉 내적인 고양을 제기하고 요구하지만 진지하게 실제로 실행하고 그 진리를 입증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어리석고 그 자체로 부당한 것으로 사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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