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자유게시판
형이상학자라는 족속에 대해
이병창 2019.12.23 49
형이상학자에 대해

어제(지난 토요일 21일)는 여섯 번에 걸친 윤구병 선생님의 형이상학 대화를 마친 날이다. 나는 빠짐없이 참석해 패널로 선생님과 대화했다. 대화를 마치고 선생님을 보내 드리고 집으로 오니 많은 상념이 떠오른다.

언젠가 변산 반도에 있는 윤구병 선생님의 공동체를 찾아가 본 적이 있다. 선생님은 꼭 55세 되는 해 대학교수를 때려치우고 전북 변산에 들어가 공동체를 세웠다. 그리고 거기서 자연을 통한 감성 교육을 위한 대안 학교도 운영했다.

부산에서 가기에는 정말 멀었는데, 아마 몇몇 후배들과 함께 갔던 것 같다. 누구였는지, 언제였는지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 하면서 선생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농법을 소개해주고, 자기가 이룬 성과를 자랑했다. 그 농법이야 그냥 자라나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니, 농법이라 할 만한 것도 아니다. 내가 본 논이란 게 잡초밭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선생님은 자기가 키운 것은 벼가 아니라 바로 잡초다라고 우기셨다. 그것도 그럴 것이 선생님의 집에 들어 가보니 마당 가득히 커다란 장독이 있었고, 거기엔 잡초가 재워져 있었다. 선생님은 그게 효소며 이게 얼마나 사람의 몸에 좋은가 하고 열을 내며 설명했다.

저녁이 되었고 우리는 술자릴 폈다. 처음 대화는 주로 공동체 운동과 자연 감성 교육이라는 선생님의 삶의 근본 주제에 관해 토론이 이루어졌다. 선생님은 이 운동의 미래를 낙관하였지만 솔직히 당시 나는 어느 낭만주의자의 아름다운 꿈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도 자연을 통한 감성 교육이라는 개념만은 머리에 깊이 남았다. 자연 만큼 그리고 감성적 체험만큼 우리에게 더 큰 스승이 어디 있겠는가?

서론이 길어졌는데, 실은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형이상학이다. 부산서 차를 몰고 달려온 지라 피곤이 저녁 일찍 몰려들었다. 그런데 그때부터다. 선생님은 갑자기 대화의 주제를 형이상학적 문제로 끌어들였다.

선생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있음과 없음, 운동과 생성, 우연과 필연 등등...이 자리에서는 생략하자. 일반 사람은 들어도 잘 모를 귀신나락까는 소리처럼 들릴 테니 말이다. 늘 하시는 말씀이라 우리는 한 귀에 흘리고 들었지만 뭐랄까 우리는 선생님의 말씀이 곧 우리를 흥분시킬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철학도의 감성이란 것이 그렇다. 이상하게도 이런 형이상학적 언어는 철학하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한다. 옛 성인께서 하루에 세 번 반성을 하지 않으면 혀에 바늘이 돋는다고 했는데, 우리가 꼭 그렇다. 우리는 하루에 한 번 정도 이런 형이상학적 언어를 말하지 않으면 혀에 이끼가 서린다.

그건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변산 시골에 들어와서 대체 누구하고 그런 형이상학적 언어를 말했을까? 그동안 입이 궁금해서 온통 입에 이끼가 내린 모양이었다. 그런데 불원천리하고 철학하는 후배들이 왔으니 어찌 즐겁지 않았겠는가?

형이상학적 언어를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 참을 수 없었는데 마침내 입이 터져 홍수와 같은 형이상학적 언어가 쏟아져 내린 것이다. 우리 후배들 역시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으니, 갑자기 정신이 맑아지고 온 몸에 찬 기운이 내린 듯 형이상학적 언어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없는 것도 있으며, 생성하는 가운데 정지가 있으며... 등등.

한참이나 떠들다가 문득 나는 깨달았다. 철학도란 대체 어떤 족속인지, 이런 형이상학적 언어가 시골의 고요한 밤보다 더 즐거운 것인가?

선생님과 함께 한 지난 6번의 형이상학의 대화도 마찬가지이다. 윤구병 선생님은 이제 많이 늙으셨다. 나보다 10년 선배되시니, 나 자신을 생각하면 선생님이 얼마나 힘드실까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선생님은 굉장히 실천적인 분이시라 하는 일도 엄청 많다. 많은 일을 벌여 놓았는데, 선생님의 공동 세상이라는 꿈을 실현하는 데 약간이라도 도움이 될 그런 일이다. 그런 많은 일을 여기서 소개하지는 않겠다.

그 많은 중요한 일에 대해 무슨 말씀이라도 후배들에게 남길 법도 한데, 선생님이 마지막 택한 대화는 형이상학에 관한 대화였다. 이것이 정말로 기이하게 생각하는 것이고 과연 형이상학자답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겠다.

생각해 보면 형이상학자의 제일 조건은 현실에 대한 냉담성이다. 누가 형이상학자에게 현실에 대한 비참과 고통, 불만을 말하면 형이상학자는 그의 얘기를 다 듣고 나서 딱 한 마디를 말한다. 다 그렇고 그런 세상이다.

형이상학자가 현실을 냉소하거나 현실 속에 살아가는 대중을 절대 경멸하지는 않는다. 누구도 증오하지 않으며 또한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현실과 대중을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 볼 뿐이다.

그러면서 스스로 내리는 결론은 자기가 빨리 깨닫지 않으며 안 된다는 거다. 자기가 깨달음을 얻는 그 순간 현실이 구원되기 때문인데, 안타깝고 또 안타깝게도 그 깨달음의 순간은 언제 올지 알지 못한다.

그런 안타까움과 긍휼의 마음을 현실 속에 사는 대중은 모른다. 그래서 형이상학자에게 견유학파(냉소주의자)니 유리알의 유희나 일삼는다는 식으로 비난한다. 형이상학자와 배다른 형제가 시인이다. 마찬가지로 그들도 꿈과 환상을 좇는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시인은 좀 담즙질인 반면 우리 형이상학자는 점액질에 가깝다.

선생님과 여섯 번에 걸친 대화를 마친 지금, 나는 형이상학자라는 인간 족속에 대해 남다른 감회를 품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런 형이상학에 몸담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인지 다행인지 나는 그런 형이상학자의 세계로부터 파문된 지 오래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다. 현실을 너무 많이 동경한다는 것이다. 이상이 아니라 현실을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 동안 너무 오래 현실에 몸을 담았다. 본래 형이상학의 세계가 그립다. 이제 돌아가야 할 때인가? 무거운 구름이 잔뜩 낀 겨울이 떠오른다. 눈 내릴 것인가? 우울한 마음 금할 수 없다. 언제까지 이 지상에 머물러야 하나!
0 개의 댓글
(댓글을 남기시려면 사이트에 로그인 해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