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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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정권 10년 때문에...
강경표 2009.06.04 1304
김태호 경남도지사가 \"지난 좌파정권 10년의 대북정책 결과가 핵폭탄으로 돌아왔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저들이 말하는 좌파정권 10년 때문에 10년 전에 개발될 뻔한 핵폭탄이 10년 후로 미뤄진 것은 아닐까요?

저들이 좋아하는 조선일보를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해 보고자 합니다.

조선일보측 자료에 따르면<2009년 5월 27일 지해범전문기자 칼럼>

북한은
1954년 인민군 내에 \핵무기 방위부문\을 설치
1956년 30여명의 핵물리학자를 소련에 파견
1959년 조소(朝蘇)원자력협정을 체결
1962년 김일성대학과 김책공대에 핵연구학과를 두어 인재양성, 영변에 원자력연구소도 설치
1965년에는 소련으로부터 IRT-2000이라는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를 했다고 합니다.

또한 파키스탄의 핵물리학자 압둘 카디르 칸(핵물리학자이자 세계적인 핵무기 거래상)과 접촉하여 고농축우라늄의 기술과 장비를 제공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파키스탄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압둘 카디르 칸이 북한과 접촉한 것은 1989년부터 북한과 접촉하여 우라늄 농축 기술과 원심분리기 도면, 부품 등을 제공했습니다(아 사실은 2004년에 압둘 카디를 칸이 직접 시인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살펴봅시다...
저들이 그렇게 욕하는 좌파정권 10년 대북햇볕정책은 언제부터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김대중대통령이 재임한 시기는 1998년 2월부터 2003년 2월까지이고 노무현대통령이 재임한 시기는 2003년부터 2008년 2월까지입니다.

그렇다면 좌파정권 10년 동한 북한은 핵무기개발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을까요?
2003년 1월10일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
2003년 10월20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재처리된 플루토늄의 용도변경 작업이 성과적으로 완료되었음을 공식 선언
2005년에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언
2006년 1차 핵실험 강행

여기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6.25전쟁 이후부터 꾸준하게 핵무기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해 오던 북한은 저들이 좌파정권 10년 기간이라 부르는 기간 중에서 특히나 김대중정권시기에는 핵관련공식보도나 자료를 찾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물론 김영삼정권시절에도 핵관련공식자료나 보도는 찾기 힘듭니다.

그리고 노무현정권기가되면서 북한의 핵관련 소식들이 많이 전해지는데요...

저들의 논리에 따르면 좌파정권 10년동안 북한의 핵개발을 묵인해 준 것이 지금의 사태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정권이 아닌 미국정권을 살펴보면 그 대답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빌 클린턴 재임기간 1993년 1월부터 2001년 1월, 조지 부시재임기간 2001년부터 1월 2009년 1월 아버지 부시 1989년부터 1992년

햇볕정책이 비교적 강력하게 추진되던 김대중정부시절에는 북한도 잠잠했습니다. 물론 당시 미국정권도 극보수인 공화당정권은 아니였구요.

재미있는 사실은 김영삼정부시절에도 북한은 잠잠했습니다. 물론 미국은 민주당...

노무현정부시절 미국파트너는 부시였습니다... 말 안해도 잘 아시는 전쟁광이죠...

결국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우리정권과는 거의 상관 없이  미국정권이 소위 보수(우익)로 돌아설 때, 그래서 북한의 요구를 무시하거나, 대화가 단절이 될때, 북한의 핵무기프로그램이 가동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우리의 지난 10년 정권이 좌파였기 때문에 그나마 북한의 핵무기개발프로그램을 지연시킨 것은 아닐까요?

저는 김대중정부시절이 그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와 미국이 북한에게 따듯한 손길을 미칠 때였죠...

노무현정부시절에도 많은 노력은 있었지만 꼴통 부시때문에 그다지 성과를 못 얻은게지요...

짧은 역사지식으로 답답한 마음에 글을 남겨봅니다...

저들이 좌파정권 10년에 씌우려는 멍에가 너무나 어처구니 없어 보입니다... 어떻게든 옳아매보려고 하는 저들이 가여워 보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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