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자유게시판
싫컷 두둘겨 패놓고서는!
이병창 2013.09.06 276
경향일보 9월 5일자 사설이다.



사설은 이석기 의원의 구속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이렇게 서술했다.



“녹취록 외에는 제대로 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에 의존한 국정원의 수사 행태는 국가정보기관이란 이름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국정원에서 충분한 증거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후는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을 벌인 당사자는 누구일까? 바로 모든 언론들이 아닌가? 경향신문도 그 마녀사냥에 예외는 아니지 않는가? 이 사설이 경향신문의 사설이니, 우선 자기비판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이란, 정치적 희생양을 방지하기 위한 민주주의의 최후의 장치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에 취해 스스로 그런 민주주의 장치를 훼손해 버린 자들이었다는 데 대해서 적어도 한마디 고발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뒤늦게나마 여론재판임을 인정한다니, 그래도 양심적이다. 이어서 내린 다음과 같은 결론은 무슨 뜻인가?



“이 의원을 위시한 관련자들이 ‘내란 음모’라는 이름으로 법의 심판대에 섰다. 충격을 안긴 이번 사태의 진상을 규명하고 단죄해야 할 사법부의 책임은 실로 막중하다. 냉철하고도 공정한 사법부의 판단을 기대한다.”



이 말은 공정한 판단을 부탁하는 말로 들린다. 그렇다면 옳은 말이다. ‘단죄’라는 말에 실린 선입견에 걸리기는 하지만 까짓것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 정말 재판부가 냉철하고 공정하기를 바란다.



사설의 본래 취지는 내란음모는 재판부에 맡기고 이제 국정원 개혁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이처럼 그럴 듯한 말은 없다. 그런데 내란음모라는 사건이 국정원의 개혁을 방해하기 위한 국정원의 음모였지 않을까? 이 사설은 이 점에 이미 동의한다. 다음을 읽어 보자.



“그 와중에 구시대에 횡행했을 법한 정보정치에 대한 공포가 되살아났다. 그렇잖아도 국정원은 지난 대선 때 정치에 개입한 혐의가 밝혀져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된 터다. 결국 이번 사태는 국정원 개혁의 당위성을 재확인한 계기였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듯싶다.”



국정원의 개혁의 당위성이 그렇게도 확실했다면, 내란음모라는 사건 자체에 대해 저항부터 했어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증거가 부족하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언론사가 정작 싸워야 할 때는 국정원의 여론재판에 앞장 섰다가, 한 명의 억울한 의원이 정치적으로 희생당한 다음 슬그머니 다시 국정원의 개혁에 목청을 높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것을 바로 힘없는 자의 자조라고 말한다. 이 말은 다음에 보자라는 말과 같다. 깡패 앞에서는 찍 소리도 못하다가 (아니 깡패하고 합세해서 팼지) 깡패가 사라진 다음 너 다음에 보자라고 외치는 가련한 시민의 말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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