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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헤겔로 8 생명성의 양적인 차이
이병창 2015.09.30 102
다시 헤겔로 8
1)지각과 오성
앞의 강의에서 헤겔은 유기체에 있어서 <내적인 규정(예를 들어 감각)과 외적인 조직(예를 들어 신경체계) 사이에 대응하는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입장은 유기체의 내적인 통일성은 생명체의 조직 전체에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헤겔은 이어서 자신의 입장은 과거 의식 단계에서 등장했던 ‘지각’과 ‘오성’ 개념에 비추어 설명합니다. 지각은 지각적 성질을 통일하는 통일체를 상정합니다. 그것이 성질의 통일체로서 ‘사물’이나, 관념의 통일체로서 ‘의식’이죠. 사물이나 의식은 성질이나 관념 너머에 있는 것이죠. ‘너머’에 있다는 것은 곧 내면에 숨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 이 경우 성질과 사물, 관념과 의식의 관계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한편으로 사물이나 의식은 일종의 담지체 즉 그릇과 같은 것입니다. 이 속에서 성질이나 관념은 한편으로 자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서로 무차별하게 존재하죠. 다른 한편으로 사물이나 관념은 이런 성질이나 관념의 통일체이므로, 여기서 성질이나 관념은 우연적인 것에 지나지 않고 있는 것은 이런 사물이나 관념뿐이 됩니다. 통일성(사물. 의식)이냐, 개별성(자립적인 성질, 관념)이냐? 지각은 한쪽 패를 잡았다고 생각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패로 넘어가는 혼란에 빠집니다.

반면 지각의 단계를 넘어서 오성의 단계에 이르면 사물의 ‘법칙’이 파악됩니다. 이 법칙은 지각의 단계에서 가능한 법칙 즉 두 자립적 지각적 성질들 간의 외면적인 관계는 아닙니다. 오성이 파악하는 법칙은 사물의 두 고유성(대자존재, 종차) 사이의 관계이죠. 오성은 이런 법칙(예를 들어 Y=F(X²))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이런 필연성을 두 대립된 힘의 미분적인 관계를 토대로 해서 성립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즉 법칙은 <생성하고 소멸하는 힘의 통일성dx/dy>으로 파악됩니다. 이 두 힘의 관계가 미분적인 힘이 되어서, 이 미분적 힘의 산물이 함수적인 법칙 Y=F(X²)로 표현되죠. 여기서 이 함수는 대립된 양상을 나타냅니다. 동일한 함수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우에는 상승하고, 어떤 경우에는 하강하죠. 함수에서 나타나는 이 대립된 양상이 사물의 두 고유성에 각각 대응합니다.

헤겔은 지각으로부터 오성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이행하는지를 설명했습니다만, 이 자리에서 다시 설명하는 것은 생략합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내가 이미 쓴 주석서<불행한 의식을 넘어>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헤겔은 관찰하는 이성을 고찰하는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지각과 오성이 되풀이 된다는 것을 말하며, 지각과 오성의 차이를 아주 간명하게 이렇게 규정합니다. 지각은 “이행이 대상화되지 않는 이행”이며, 오성에서 “그 관계는 순수한 이행이며, 스스로 대상이다”고 말합니다. 아주 절묘한 표현입니다. ‘대상화 된다’는 것은 곧 <의식의 대상이 된다는 것>, 간단히 말하자면 의식된다는 뜻이겠지요. 둘 다 이행이지만 대상화되어서 의식되는 것이냐, 아니면 대상화되지 않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는가 하는 차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제 이런 오성의 단계에서, 내적인 것은 ‘단순한einfach 일반성’(생명성)이며 외적인 것은 ‘일반적인 대상들’(신체적 유기체)이라 합니다. 생명성과 유기체적 조직 사이의 관계는 수학적으로 미분적 힘과 그 적분된 결과 사이의 관계에 해당됩니다. 감각을 ds로, 자극반응을 di로 표시한다면 여기서 I가 신경조직을 의미한다면, S는 자극반응을 의미하게 되겠죠. 그러면 생명성과 신체조직 사이의 관계는 이렇게 표현됩니다. 즉 함수 I=F(S)가 되겠죠.

오성의 법칙 I=F(S)는 자연의 단순한 관찰에서 얻어지는 법칙과 구분됩니다. 지각의 법칙이 외적인 것의 관계이고, 우연성을 면하지 못한다면 여기 오성의 단계에서 법칙은 필연성을 지니는 것이며, 미분적 힘을 통해 내적으로 생성된 법칙이라 하겠죠. 헤겔은 전자를 ‘특정한 내용’으로 이루어진 법칙으로 규정하고 후자를 ‘법칙에 대한 사상Gedanke,’. 또는 ‘개념의 불안’을 지닌 법칙으로 규정합니다.

“따라서 내용에 관하여, 순수하게 존재하는 구별을 일반적인 형식 속으로 고정적으로 수용하는 법칙이 아니라, 이런 구별 속에서 직접적으로 개념의 불안Unruhe을 갖는 따라서 그 측면들이 필연적으로 관계하는 법칙이 보존되어야 한다.”(156쪽)

‘개념의 불안’이라! 아주 멋있는 표현입니다. 나는 이 개념의 불안을 미분적인 힘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법칙을 이루는 두 측면의 관계 즉 함수적 관계는 이런 미분적인 힘의 산물이므로 필연적이 되죠. 미분적인 힘을 이루는 두 대립된 계기들은 ‘순수한 이행’에 불과하기에 ‘불안’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법칙을 규정하기 위해 필요한 것과 같은 존재하는[고정된] 측면은 전혀 생겨나지 않기에” 이 측면들은 서로 필연적으로 관계하죠.

2)양적인 차이
개념의 내적 통일, 생명성의 산물이 유기체적 조직입니다. 그런데 개념의 계기들(di/ds), 그리고 유기체의 부분적 체계(I/S)들 사이의 개념적인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서, 전적으로 일반성 자체에만 머무르는 경우가 나타납니다.

이런 식으로 구별(di/ds, I/S)을 무시하고 전적으로 일반성(생명성, 유기체 전체)에만 머무르는 것을 헤겔은 ‘완전하게 자기 내로 반성되어 있는 것’이라 규정합니다. 이 경우 개별적인 계기들은 ‘직접적인 감각적인 존재’와는 다른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것은 이제 ‘고정성’을 상실하고 ‘변천’이라는 특징을 가지게 됩니다. 헤겔의 말을 빌리자면, “관찰에 나타나는 감각적인 구별은 고정적으로 머무르지dem beobachten bleibende sinnliche Unterschied” 못하며, “존재하는 규정은 끊임없는 변천Wechsel seiender Bestimmtheiten”속에 있을 뿐입니다.

‘변천 속에 있다’는 말이 좀 모호합니다. 그런데 앞뒤 맥락을 통해 본다면, 그 변천이란 ‘양적인 차이’가 서로 다른 성질로 나타난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즉 전체를 대표하는 성질이 먼저 선택되죠. 예를 들어 생명성을 선택한다 해 보죠(그것을 ‘감각’이라 해도 되고, ‘자극반응’이라 해도 됩니다. 아니면 양자를 아우르는 ‘생명성’이라 해도 되겠죠. 어느 것을 선택하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머지 성질들은 이런 대표적 성질과 비교되는데, 여기서 성질들 간의 개념적 차이는 무시되고, 대표적 성질 예를 들어 ‘생명성’이라는 단순한 성질의 양적 차이로 규정됩니다. 이런 양적 차이 때문에 서로 다른 성질들이 출현한다는 거죠. 그러면 예를 들어 ‘감각’은 ‘낮은 생명성’이 되고, ‘자극반응’은 ‘높은 생명성’이 되겠죠.

마찬가지로 유기체 전체의 신체 속에 가지는 각 체계들의 개념적 차이는 무시되고, 하나의 공통된 신체성, 유기체성의 표현이 되죠. ‘신경체계’는 ‘낮은 유기체성’이고, ‘자극반응 체계’는 ‘높은 유기체성이 되겠죠.

이런 경우는 전체적인 통일성을 파악하기는 했지만 아직 그 구별적 계기들 사이의 연관을 무시했기에 오성이지만 지각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입니다. 헤겔은 이런 파악을 “단순히 지각하는 오성의 원리나 방식으로 되돌아갔다”(157쪽)고 말합니다. 헤겔은 이를 ‘자기 내 반성을 지각과 교환한 것Umtauschung’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인식은 앞에서 전개된 것과 같이 <개념의 계기들과 신체의 각각의 조직 사이에 법칙>이 존재한다는 인식보다는 개념적 인식에 더 가까이 다가간 것입니다. 즉 전체의 유기적 통일성을 파악했으니까요. 그러나 아직 이런 개념적 인식은 추상성의 단계에 머무르고 있으므로 여전히 개념을 하나의 존재자로 보는 오류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동물적 유기체는 높은 자극 반응성을 지니고, 식물적 유기체는 낮은 자극반응성을 지닌다고 합니다. 이때 자극반응성이 대표적인 성질이 되고, 모든 것은 이 성질의 양적인 차이로 규정되었죠.

이런 ‘자극 반응성의 고저’이라는 개념은 이제 물질적으로 규정되면, ‘근육의 강약’으로 규정될 수도 있고, ‘근육력의 크기’이라고 규정될 수도 있죠. 이 세 가지 표현을 비교해 보면, ‘근육력의 크기’는 반성적인(양적) 표현이지만 무규정적인(질적 차이가 없는, 일반적 양적 표현)이라면, 이에 반해 ‘자극반응성의 고저’란 질적인 규정을 가진 것이라 하겠습니다. ‘자극반응성의 고저’를 똑 같이 질적인 규정을 지닌 ‘근육의 강약’과 비교해 본다면, 전자는 개념적인 계기인 반면 후자는 신체적인 존재에 불과합니다. 이런 점에서 전자가 반성적(개념으로의 반성)이지만 후자는 감각적인 것, 비반성적인 것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헤겔은 여기서 생명체를 외적인 신체로 파악해서 유기체적 조직(근육력의 크기나, 근육의 강약)의 양적 차이로 파악하는 것보다는 생명체의 본성인 생명성으로 파악해서 그 정도(자극반응의 고저)로 표현하는 것이 장점을 가진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식 역시 아직 진정한 개념에 이른 것은 아니죠.

“그런 무 개념적인 표현의 자리에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아니다. 강하거나 약하거나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본다면 개념에 기초한 것이고 개념을 내용으로 삼지만 이런 자기의 근원과 성격을 전적으로 잃어버리는 규정들(강한 생명, 약한 생명)로 충족된다.”(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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