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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헤겔로 9 생명체에서 의식적 존재로
이병창 2015.10.07 83
다시 헤겔로 9

1)형태와 기관 사이의 이중적 관계
유기체의 법칙과 관련하여 헤겔이 마지막으로 다루는 법칙은 유기체의 전체적 조직(체계)과 그 부분적인 조직 사이의 관계입니다. 이때 전체적인 조직이란 ‘유기체의 본질(das organische Wesen)’이 단적으로 ‘표현된 것(das Sein fuer Andre)’이고, 전체적인 형태는 하나의 유기체를 고유한 유기체 개체로 만다는 것이니, 그것은 헤겔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대자존재’(gegenstandliches Wesen in seinem fuer sich sein)라고 하겠죠. 이런 유기체의 형태는 자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자유롭게 자연에 관계합니다.

헤겔은 이런 유기체적 개체(형태)가 비유기적인 자연에 대해 관계하는 방식을 두 가지로 규정합니다. 한 가지는 자연에 대해 ‘반발하는 관계(gegen gekehrt)’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립적이고fuer sich’하고 ‘내적으로 in sich 반성된 관계’입니다. 이런 표현은 모두 유기체가 자신의 환경 즉 자연의 인과적 작용에 내맡겨져 있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유지, 보존한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유기체의 형태를 이렇게 규정한 다음 헤겔은 여기서 유기체의 전체적 형태와 그것을 구성하는 여러 부분적인 조직, 즉 기관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주목합니다. 대자존재, 생명체의 전체적 형태는 그 계기들의 ‘무한한 일자(als unendliches Eins)’이지만 ‘내적인 것’으로 규정됩니다. 즉 ‘무한한 일자’란 사실은 유기적인 통일성인데도 불구하고 아직은 그런 것으로 파악되지 않고 단순히 여러 부분적인 기관들을 담지하는 그릇으로서 나타납니다. 따라서 외적인 기관들로부터 따로 떨어져 있는 것, 즉 ‘내적인 것’으로 나타나죠. 전체적인 형태는 한편으로는 “형태의 계기들을 그 [물질적인] 존립Bestehen으로부터 그리고 외적인 것[자연]과의 관계로부터 벗어나게 해서 자기 내로 집중시키는 것”(159쪽)이고 ‘계기들의 과정’이지만 ‘내용이 없는 것inhaltlose’이며, 따라서 그것은 ‘단순한 부정성’이거나 ‘절대적 자유’라는 개념으로 설명됩니다.

헤겔은 여기서 형태와 계기의 관계에 대해 서로 무차별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마치 사물에서 사물이 지각적 성질의 담지자이었던 것처럼, 형태는 기관들의 담지자가 되죠. 그 결과 형태는 기관들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하며, 각 기관들 역시 형태로부터 독립하고 서로 자립적으로 존재합니다.

“단순한 부정성 또는 순수한 개체성이라는 극단 속에서 유기체는 그의 절대적 자유를 가지고 있다. 이런 자유를 통해서 유기체는 대타적 존재에 대립하여, 즉 형태의 계기들의 규정성에 대립하여 무차별하며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gesichert 있다. 이러한 자유는 계기들 자체의 자유가 되기도 하며, 이 유기체의 절대적 자유가 계기들이 현존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파악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제 계기들은 외적인 것에 대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로에 대해 자유롭고 무차별하다. 왜냐하면 이런 자유의 단순성이 존재 또는 그 계기들의 단순한 실체이기 때문이다.”(159쪽)

즉 형태와 기관들은 서로 자립적으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기관들 역시 서로 자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거죠. 이런 주장은 마치 생명체가 시계처럼 부품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부품을 중의 하나는 전체를 손상시키지 않고서도 대체 가능하다는 주장과 닮았습니다.

이런 형태와 기관들 사이의 이중적인 관계는 이전 지각적인 의식의 단계에서 나타났던 이중성과 동일합니다. 그때도 사물은 한편으로는 성질들의 단일한 통일체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성질들의 단순한 담지자였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생명체의 형태는 그 기관들의 단일한 통일체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관들의 담지자에 불과하죠.

2)생명체와 기관의 수적인 관계
생명체는 이렇게 단순한 담지자의 측면에서 본다면, 생명체의 전체적 형태는 ‘단순한 내면einfache Inneres’이며, ‘형태는 외적으로 분절된 기관이 존립하는 기반das Elment des Bestehens der seyenden Glieder der Gestalt’일 뿐입니다.

이런 단순한 물질적 담지자로서 생명체 속에서 나타나는 여러 기관들은 즉 ‘현실적인 형태화를 이루는 규정성’은 ‘마찬가지로 단순한 일반적인 비감각적인 규정성’입니다. 즉 각 개별 기관들이 엄밀하게 본다면 어떻게 구분되는지 각기 어떤 기능을 하는지 눈앞에 나타나지 않죠. 신체 중 사지에 비해서 내장의 조직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고, 또 오늘날까지도 폐와 간이, 심장과 신장이 어떻게 구분되고 각기 어떤 기능을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한의학의 주장에 비추어)을 생각해 보면 헤겔의 이런 말이 쉽게 이해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신체의 기관들의 구별이나 기능이 ‘비감각적’인 한에서 결국 이 마지막의 관계 즉 전체적 형체와 각 기관의 관계라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법칙 역시 알 수 없게 됩니다. 남아 있는 것은 이런 기관들을 신체의 전체적 조직이 나타나는 양적인 차이로 즉 ‘수’로 규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앞에서 생명체의 다양한 성질을 대표적인 성질(생명성)의 정도, 즉 내포량으로 표현하면서 이를 ‘수’라고 했던 것에 비추어 본다면, 이번도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여기서 ‘수’는 전체적 통일성 위에서 각 기관이 지니는 차이가 개념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양적인 정도의 차이로 파악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심장이라면, 그 아래에 허파가 있고, 그 아래에 위장이 있고 ..등등 이렇게 정도의 차이로 볼 때 그것을 헤겔이 수라고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헤겔은 이런 유기체의 전체적 형체를 내적 생명성의 개념과 비교합니다. 생명성의 개념은 외적인 조직에 대하여 내적인 것인 반면, 유기체의 전체적 형체는 외적인 기관에 대해 내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자 즉 생명성의 개념은 ‘추상의 불안’을 개념으로 삼는다 합니다. 개념의 계기(감각, 자극반응, 재생)들이 내적으로 이행하면서 통일을 이루는 관계를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후자 즉 전체적 형체는 ‘고정된 일반성ruhende Allgemeinheit’를 개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통일성이라는 말이겠죠.

“따라서 전자는 그 속에 개념이 자기의 계기를 전개하므로 관계의 필연성이라는 가상을 통해 기만적이기는 하지만 법칙을 약속한다면, 후자는 그런 법칙에 대한 약속을 단념한다. 왜냐하면 그런 법칙의 한 측면을 이룬다고 할 규정성(기관)이 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수는 전적으로 고정된, 죽은 무차별한 규정성이어서, 그 위에서 모든 운동과 관계가 소실되어 버리며, 이런 규정성은 생동적인 충동, 생명의 방식, 그 밖의 감각적 현존으로의 가는 다리를 단절해 버렸다.”160쪽

결과적으로 여기서도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즉 전체적 형태와 부분적 기관 사이의 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말해서 이성의 관찰이 법칙을 파악하는 오성의 단계에 머무를 때 결국 생명성의 개념은 파악되지 못합니다. <유기체와 환경의 관계>라든가, <유기체의 성질과 그 조직 사이의 관계>라든가, <유기체의 전체적 조직과 부분적 조직 사이의 관계>가 모두 내/외의 법칙으로 파악되었습니다만,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헤겔의 분석을 통해 보듯이 그런 내/외의 법칙은 허구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런 허구가 밝혀지면서 관찰하는 이성은 오성의 단계를 넘어 자기의식의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런 이행과 더불어 비로소 생명체의 개념이 처음으로 파악되죠.

“왜냐하면 관련되어야 하는 두 측면이 다만 서로 무차별한 것으로 확립되었기 때문이며 유기체의 본질을 이루는 자기 내 반성이라는 것이 이를 통해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지금까지 시도된 비교는 비유기체적 자연에게 맡겨진다. 여기서 무한한 개념은 내적으로 감추어져 있으며 외적으로는 자기의식에 속하는 본질일 뿐이며, 유기체에서 대상적으로 현현하는 것과는 더 이상 같지 않다. ”(160쪽)

4)비유기체에서 특수한 무게와 성질의 관계
이와 같은 비판 끝에 이성은 마침내 최종적으로 생명체의 개념을 발견하기에 이릅니다. 생명체의 개념이 무엇인가에 관해 헤겔은 이를 비유기체의 개념과 비교합니다. 이런 비교는 161-163에 흩어져서 서술되어 있으므로 이를 종합적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비유기체적 사물의 경우, 헤겔은 ?그것의 고유한 대자존재, 종차는 ‘무게(specifische Schwere)’라고 합니다. 오늘날의 과학적 개념으로 말한다면 ‘질량’이라 해야 마땅하겠죠. 사물의 개별성은 이런 질량의 수적인 차이에 불과합니다. 이는 비본질적인 차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수적 차이의 결과로 형태나, 색깔, 강도, 점착성 등이 나타나죠.

“특수한 무게에서 다른 성질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수가 유일한 규정성이며, 이 수라는 것은 성질들의 상호 관계와 이행을 표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법칙성의 어떤 흔적도 제거되어 있다는 사실을 표현한다. 왜냐하면 수라는 것은 비본질적인 규정성이라는 의미에서 규정성의 표현이기 때문이다.”(162쪽)

그런데 이런 대자존재 또는 종차는 다른 지각적 성질들에 대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성질이며, 이런 성질들에 대해 외적으로만 관계합니다. 그러니 양자 사이에 어떤 필연적 연관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죠. 헤겔은 이런 경우 ?지각적 성질들은 다발을 이룬다고 말합니다. 이 다발을 헤겔은 ‘지각(상식)의 응집die gemeine Kohaesion’이라 해요. 반면 대자존재는 이런 지각적 성질들을 담는 일반적인 그릇이 되겠죠.

이런 비유기체의 경우 시간의 흐름, 과정에 따라서 그의 대자존재는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죠. 따라서 비유기체에게서 ?대자존재와 시간의 흐름, 과정이란 서로 대척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의 흐름에 대립하면 할수록 오히려 자기 자신의 동일성을 유지할 능력이 없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신의 대자성이 무너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유를 통해 말하자면 힘이 없는 자가 타자와 관계하기를 꺼려한다는 것과 같은 이치이죠.

“특수한 중심이 강하면 강할수록, 즉 내재존재Insichsein이 높으면 높을수록, [내재존재가] 더 사소한 것들보다 과정 속에 들어가는 것에 더욱 더 저항한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자면 대자존재의 자유는 모든 것과 쉽게 관계하거나 자기를 쉽게 다양성 속에 유지하려 데에서만 입증된다. 관계라는 외연이 없는 그런 내포는 내용이 없는 추상이다. 왜냐하면 외연은 내포가 현존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161쪽)

이런 비유체적 사물들의 계열은 특수한 무게의 수적 차이에 불과하므로 마찬가지로 수적인 차이를 지닌 다른 성질들의 계열 사이에 비록 평행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법칙성이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서로 질적으로 무차별한 성질들이니까요. 만일 그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존재한다면(서로 비례하든지, +와 -의 관계이든지, 서로 배제하는 관계이든지) 이는 개념에 의한 관계이지만 성질들이 이처럼 무차별한 한에서 감추어져버리고 맙니다.

“평행하는 차이를 보여주면서 흘러가는 어떤 계열이 있을 때, ..중요한 것은 오직 결합된 전체에 대한 최종적으로 단순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법칙에서 특수한 무게의 반대측면을 이루는 것은 이 단순한 표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측면은 그저 존재하는 결과[우연히 발견된 것일 뿐이라는 의미]이며, 개별적인 성질에 불과하다. ”(162쪽)

즉 특수한 무게(내적)와 비례하는 어떤 성질(외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 성질이 여러 성질들 가운데 우연히 선택된 성질에 불과하다면, 그걸 법칙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물질의 차이에 비례하여 물질의 색깔이 변화하더라도, 물질과 색깔 사이에 법칙적 관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는 없죠.

5) 생명체의 개념
생명체의 경우는 이와 다릅니다. 생명체에게서도 다양한 성질이 지각될 수 있죠. 이런 성질들이 상호 이행의 관계 속에서 ‘응집Kohaesion’될 때, 이런 내적 통일성이 생명체에게서 대자존재가 됩니다. 내적 통일성이란 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성질이 아니라 이런 응집이며 그 과정입니다. 헤겔은 이렇게 과정으로서 ?내적인 통일성을 ‘타재성 속에 있는 대자존재 das fuer sich im Andersein’이라고 합니다. 이는 비유기적 사물의 경우 대자존재를 ‘순수한 대자존재’라고 규정했던 것과 비교되죠. 생명체의 이런 개념이 의미하는 것은 신진대사, 종의 재생산 등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재생, 이게 바로 타재성 속에서 자기의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이죠.

“우리가 대자존재를 단순히 자기를 보존하는 자기 관계로 규정한다면, 타자 존재는 단순한 부정성이며, 유기체적 통일성은 이런 자기동일적인 자기 관계와 순수한 부정성의 통일이다. ”(163쪽)

이런 생명성의 개념에서 감각이나, 자극반응, 재생 등의 개념이 필연적으로 전개됩니다. 그러므로 내적인 개념과 외적인 성질들 사이는 결코 우연적, 무차별적, 수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헤겔은 ?이를 ‘개념 속에 정립된 규정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유기체에서는 더 이상 수적인 규정성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수는 고정된 비본질적인 차이이지만 유기체의 규정성은 자기 이행적인 것, ‘순수한 부정성’, 본질적인 차이이기 때문이죠.

헤겔은 이런 유기체적 자기동일성은 ?결국 ‘종적인 존재Gattung’가 된다고 합니다. 이런 종적인 존재란 곧 자기를 종적으로 재생산하는 존재를 말합니다. 이런 종적인 재생산은 생명체에서 자기 자신을 재생산하는 것(자기보존)에서 발전된 결과이죠.

“이런 통일성은 통일인 한에서 유기체의 내면이다; 따라서 이것은 그 자체에서 일반적이며 또는 종이다. 현실성에 대립하는 종의 자유는 그 [자연적인] 형태에 대립하는 특수한 무게의 자유와는 다른 것이다.... 그러나 유기체의 개체성은 순수한 부정성이며 따라서 수의 고정된 규정성을 자기 내에서 근절한다. ”(163쪽)

6)의식적 존재
이제 유기체는 비유기체와 달리 개별자(개체)이면서 동시에 보편자(종)라는 규정에 이르게 됩니다. 즉 비유기체의 경우, 일반성은 ‘그 본질 속에 따로 떨어져 있는 규정(eine Bestimmung in seinem Wesen)’에 불과합니다만 유기체의 경우 “개체성은 그 자체로an sich 일반적이라”는 거죠. 그런데 유기체에서 개별자는 ‘그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것이라고 하는 그 계기들에서 발전하지’ 않습니다. 종과 개별자 사이의 관계는 유기체 중에 의식을 지닌 유기체(즉 ‘의식’)에 이르면서 새롭게 변화하게 됩니다. 여기서 개체는 단순한 일반성으로부터 스스로 발전합니다.

어떤 변화 때문에 이런 차이가 나타나지에 대해 명확하지 않지만 헤겔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즉 “존재하는 형태를 이루는 부분들에서 일어나는 과정 가운데 발전된 운동”(164쪽) 때문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이런 ‘발전된 운동’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지는 않아요. 그런데 바로 다음에 나오는 아래 구절과 더불어 읽어보면 어느 정도 이해되지 않을까 합니다.

“종이 고정된 단순성인 형태에서 구별된 부분들을 가진다면, 따라서 종이 지니는 단순한 부정성 자체가 동시에 운동이라면, 그래서 이 운동 속에서 단순한 부분들이 종의 계기로서 실제하는 부분이며 즉 마찬가지로 그 부분들에게서 이미 일반적이라면, 이런 유기체적인 종이 의식이다.”(164쪽)

이 구절에서 종이 스스로 부분(개체)으로 구별되며, 부분이 그 자체 일반적으로 된다면, 그게 의식이라는 거죠. <종과 그 개체> 사이의 이런 관계는 생명체의 차원에서는 발견되기 어렵습니다. 이 관계는 인간 사회에서만 비로소 가능하죠. 의식을 가진 인간의 경우, 종에 해당되는 것이 사회이고, 이 사회는 유기적으로 자기를 분화시켜서 <유기적인 총체>로 구성되니까요. 여기서 사회를 이루는 한 부분은 고립된 부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전체 즉 사회로 이행되는 것이니까요.

생명체에서 개체와 종의 관계, 의식적 존재에게서 개체와 종(사회)의 관계을 구분하는 개념으로 헤겔은 ‘일반적인 개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이 일반적 개체는 ‘규정된 일반자’, 류Art를 말합니다.

생물체에게서 종은 다양한 개체에게서 실현됩니다. 각 개체는 동일한 종이지만 다른 개체에 대해 차이성을 지니죠. 그 가운데 어느 것이 일반적인 종의 실현인가는 판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 중의 어떤 것을 자의적으로 종을 대표하는 개체로 보고,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종에 속하는지 않는지를 판정하죠. 바로 이것이 ‘일반적 개체’이고 이 일반적 개체가 가진 규정성이 ‘류의 규정’(곧 특수성)입니다. 나머지 개체들은 이런 보편적 개체에 비추어서 그 차이를 통해 규정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차이는 다시 한 번 수적인 차이, 비본질적인 차이에 불과하게 되죠.

예를 들어 어떤 개가 진돗개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대표적인 진돗개를 정하게 되죠. 어떤 개든지 이런 대표적인 진돗개에 비추어본다면 정도의 차이만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 차이가 일정한 정도 안에 든다면, 우리는 그 개를 진돗개로 판정하죠. 이런 점에 관해 헤겔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따라서 류의 규정성으로서 단순한 규정성은 그런 류에서 비정신적인 방식(geistlos; 멍청하게)으로 현존한다. ..이 현실적인 것으로서 유기체는 다만 어떤 대변자에 의해 대변된다. 그러나 이 대변자, 수는 ...일반성과 개별성이 서로 무차별하며 자유롭다는 것을 표시한다. 개별자는 종에 의해 크기의 비본질적인 차이에 내던져지며 생동적인 것인 한에서 스스로 이런 차이로부터 무관한 것으로 입증된다.”(164쪽)

이런 일반적 개체가 가지는 특수성은 자의적인 것이기에 생명체 자신으로 볼 때는 무의미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생명체의 본성은 오히려 개체 속에 들어 있는 자기 동일성이 되죠.

“진정한 일반성[생명체의 자기 동일성]은 이 경우 단지 내적인 것으로 머무르는 본질이다; 류의 규정성으로서 일반성은 형식적인 일반성이며, 진정한 일반성은 형식적 일반성에 대립하여 개체성의 측면에서 등장한다. 개체성은 이를 통하여 생동적인 것이 되며, 내적인 것을 통해서 류로서 규정성을 무시해 버린다.”(164쪽)

이런 생명체에게서 일반적 개체 즉 특수한 류는 어떻게 발견되는가? 헤겔은 여기서 하나의 추론을 제시합니다. 이 추론의 대 개념은 ‘일반적인 것으로서 일반적 생명’입니다. 매개념은 ‘류로서 규정된 일반성’이죠, 그리고 소개념은 ‘일반적 개체’입니다. 결국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특수성’ ‘류로서의 규정성’입니다. 예를 들자면 진돗개의 특수성이죠.

이제 이런 특수성을 살펴본다면, 예를 들어 진돗개의 특수성과 발바리의 특수성.. 등을 살펴본다면 이것은 일반적 생명이 출현하는 규정성들이죠. 이런 특수성의 차이는 일반적 생명이 전개되는 양적인 정도의 차이 곧 수적인 차이입니다. 따라서 진돗개, 발바리 등은 수적인 계열을 이루게 되죠.

지금까지 여러 번 헤겔은 <수적인 차이>에 대해 말해 왔습니다. 진돗개의 특수성에 비추어서 각 개별적인 개들이 진돗개에 들어가는지 또는 아닌지도 수적인 차이로 규정되었습니다. 더 나가서 진돗개, 발바리 등 특수성 역시 개의 일반성에 비추어서 수적인 차이로 파악되죠.

“그러므로 이제 일반적인 개체도 수적인 계열이다. 일반적 개체는 종의 모든 분절화와 무관한 것으로 고찰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런 구분을 지배하는 힘으로 규정되기도 한다.”(165쪽)

그 결과 종의 구분은 자의적인 구분이 됩니다. 개를 진돗개, 발바리로 나누는 것은 개의 객관적인 구분과는 무관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의적으로 어떤 특수성을 선택하고 그것에 따라 나눈 것에 불과하죠. 헤겔은 이런 식으로 구분하는 것은 ‘일반적 개체, 즉 대지의 측면에서 가해진 폭력’에 불과하다고 말합니4다.

여기서 ‘대지’라는 표현이 흥미롭습니다. 이 ‘대지’란 진화를 결정하는 자연계, 또는 생태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어떤 자연이나 생태계에서 우연히 분화된 것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해요. 그러므로 이런 대지를 헤겔은 ‘일반적인 부정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이 대지가 생명체의 토대가 되면서 생명체를 분화시키는 힘이기에 ‘일반적인 부정성’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헤겔은 이런 대지에 의한 분화는 ‘생명체가 속한 실체의 본성과는 무관한 것’이고, ‘종의 체계화에 대립하는 것’이라 합니다.

“종에게서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활동은 종이 대지라는 위력적인 지반 내부에서 추구할 수 있는 전적으로 한정된 과업에 속하며, 이 지반이 가하는 고삐 없는 폭력에 의해 도처에서 중단되고 균열되며 방해받는 것이다.”(165쪽)

7)생명체에 대한 이성적 관찰의 결론
이제 의식을 통해 개체에 내재하는 종적인 일반성이 구체적인 사회라는 존재로 출현합니다. 바로 이런 사회적 존재인 의식적 존재가 이성의 새로운 관찰대상이 되죠. 관찰하는 이성이 목표로 했던 것은 자기 자신과 동일한 것 즉 자체적인 존재입니다. 이성은 의식적 존재를 통해 자체적인 존재라는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되었습니다.

생명 일반Leben ueberhapt에서 의식적 존재, 즉 인간으로 이행하면서 종의 일반성과 개체 사이의 매개도 변화하게 됩니다. 생명 일반에서 류의 특수성(즉 일반적 개체)이 그런 매개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면 의식적 존재에서 특수성은 일반성 자체의 자기 구분이며 따라서 체계화된 구별로 나타나죠. 이런 특수성의 체계가 바로 사회가 발전하는 역사입니다.

“따라서 의식은 일반적인 정신과 그 개체성 또는 감각적 의식 사이에 의식의 형체화의 체계를, 전체로 질서정연하게 발전하는 정신의 생명성을 매개로 삼는다. 이 체계가 ..세계사로서 대상적으로 현존한다.”(165쪽)

지금까지 이야기를 종합하면서 헤겔은 ?관찰하는 이성 a)자연의 관찰?이라는 절을 마무리 짓습니다. 관찰하는 이성은 유기체적 자연을 일반적인 생명으로 관찰하는 데 이르렀으나, 여기서 관찰은 ‘전적으로 일반적으로 구별된 체계’에 불과했습니다. 여기서 ‘일반적으로 구별되었다’는 말은 그 구별이 유기체 자신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개체를 통해서 일어났다는 것을 말할 뿐입니다. 이 구별은 곧 ‘대지에 의한 구별’이며 ‘종이 시험 삼아 만들어낸 계열화Reihungen welche die Gattung versucht’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마치 관찰하는 이성이 생명체에 이르렀을 때에도 여전히 지각적이며 오성적인 태도에 머물러서, 생명의 진정한 개념에 이르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관찰하는 이성은 이런 인간의 의식조차도 그 개념에 따라 파악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그는 지각과 오성의 단계에서 이를 파악할 뿐이죠. 그러니 관찰하는 이성이 의식적인 존재에 이르렀을 때, 이성은 이런 의식을 지각적인 사물처럼 관찰하죠.

“이성이 이 사념Meinen을 관찰하는 데 쓸데없는 흥미를 느낄 때 이성은 그 본성에 대한 견해나 착상을 기술하거나 이야기하는데 한정된다. ”(166쪽)

그 결과 이성이 처음 얻는 것은 ‘멋진 언급’, ‘흥미로운 관련’, ‘개념화에 대한 우호적 태도’ 정도에 부딪힐 뿐이라고 헤겔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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