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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현상학 주석 (19)-냉담한 양심
이병창 2020.03.24 89
정신 현상학 주석 C 절 도덕성(19)-냉담한 양심


1) 절대정신으로

앞에서 순수 양심과 행동하는 자아, 지식인과 역사적 영웅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위선이 설명되었습니다. 헤겔은 둘 다 말에 머문다고 했습니다. 영웅은 행동하지만, 개인적인 목적을 일반적인 목적으로 말로 위장합니다. 반면 순수 양심은 일반적 의무를 고집하지만, 수행하고자 하지 않고 그저 말하는 것에 그칩니다.


헤겔은 양자의 상호 관계를 더욱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이런 상호 비판을 통해 헤겔은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는 관계에 이른다고 봅니다. 이런 상호 용서의 관계가 곧 정신을 넘어서 절대정신으로 나가는 통로가 됩니다.


2) 양심의 위선

앞에서도 말했듯이 순수 양심[평가하는 의식]은 영웅[행동하는 자아]의 행위가 가진 두 측면 가운데 우선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특수한 측면만 봅니다. 그래서 그것을 ① 그의 어떤 내면적 욕망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지요.


그래서 그런 행위는 명성에 대한 욕망에서 나오거나, 명예에 대한 추구이거나 행복을 향한 충동으로 평가됩니다. 영웅의 행위는 이런 순수 양심의 평가를 피할 수 없죠. 왜냐하면 순수 의무란 현실에 실현될 수 없고 활동은 현실 속에서 일어나니 “그의 행위는 그 자체에서 특수성의 측면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을 헤겔은 “시종의 눈에는 영웅이 없다” 속담으로 설명합니다.


“영웅은 영웅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거나, 옷을 입는 자로서 개별적인 욕망이나 표상을 통해 시정과 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가하는 의식이 개인의 개별성의 측면을 ... 도덕의 시종을 산출할 수 없는 행위는 하나도 없다. ”


②그런데 헤겔은 순수 양심의 이런 평가는 이를 통해 순수 양심 자신이 비열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말합니다. 왜냐하면 순수 양심은 마치 시종이 영웅을 알아보지 못하듯이 역사적 영웅의 행위가 지닌 일반적 측면을 보지 못하고 개별적인 측면, 현실적인 측면만을 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평가하는 의식은 행위를 나누어서 행위가 행위 자신과 관계하여 드러내는 부등성을 산출하고 확립하기 때문이다.”


헤겔은 심지어 이런 순수 양심을 위선이라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자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영웅을 비판하는 것을 자신의 탁월한 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비현실적인지 알지 못하고 행동하는 자아, 역사적 영웅 위에 오만하게 군림하죠.


이렇게 해서 그 자신이 욕망에서 행동하는 자아와 동등한 인물로 전락하게 됩니다. 역사적 영웅은 순수 양심의 이런 측면을 간파합니다.


“평가하는 의식은 행위 하는 자아에 의해 자기와 동일한 존재로 인식된다. 이 행위 하는 자아는 평가하는 의식은 이 행위 하는 자아에 의해 낯선 존재 그와 부등한 존재로 파악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평가하는 의식은 자기에게 고유한 속성에 따라 그 행위 하는 자아와 동일한 존재로 파악된다.”


3) 영웅의 고백

③그러므로 행위 하는 자아는 그런 순수 양심에게 고백을 요구합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현실적 욕망을 지닌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순수 양심 역시 자신의 비열성을 인정하기를 기대하죠.


“이런 동등성을 직관하고 언표 하면서 행위 하는 자아는 평가하는 의식에게 자신을 고백한다. 그리고 행위 하는 자아는 이 타자가 자신의 처지를 사실상 행위 하는 자아와 동등하게 놓았으니 그와 마찬가지로 말로도 응답하여 앞으로 말로 자신의 동등함을 언표 하며, 인정하는 현존에 들어서기를 기대한다.”


행동하는 자아의 이런 기대는 결코 순수 양심을 “비하하거나, 모욕하거나 적대적으로 관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나하면 이런 고백은 먼저 자기 자신을 고백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언표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며... 타자가 자신과 동등하다는 것일 직관하기 때문에 행동하는 자아는 자신을 언표하고 이런 고백 속에서 자기 자신도 그와 동등하다는 것을 언표 하기 때문이다.”


행동하는 자아가 그런 고백을 말로 한 것은 말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게 자신의 내면을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순수 양심과 마찬가지입니다. 순수 양심 자신도 말이 가장 순수하다고 보고 있으니 그래서 행동하는 자아도 말로 자기를 고백했던 것이죠. 행동하는 자아가 기대하는 것 역시 순수 양심의 순수한 말입니다.


“행동하는 자아는 그러므로 이 타자가 그 자신의 것을 이런 현존[언어적 현존]에 기여하기를 기대하였다.”


3) 순수 양심의 오만

그러나 ⑤순수 양심은 자신의 순수성에 관해 오만하기에 역사적 영웅의 이런 기대에 대해 응답하지 않습니다. 즉 스스로의 위선을 고백하지 않는 거죠. 그는 “이런 공동체[영웅의 손]를 뿌리치고 냉담한 심장[das harte Herz]이” 됩니다. 영웅은 이런 양심의 오만 앞에서 물러나서 양심의 부당성을 간파하게 되죠.


“이 타자[순수 양심]는... 악[행동하는 자아]에 대하여 자신의 영혼이 지닌 아름다움을 고백에 대하여... 자신의 뻣뻣한 목을 또한 옹졸하게 자기를 지키며 타인에게 자신을 던지지 않는 침묵을 대립시킨다.”


순수 양심의 이런 행동은 행동하는 자아, 역사적 영웅의 내적인 격분을 불러일으킵니다. 왜냐하면 순수 양심이 지키는 것은 자신의 순수성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그의 오만과 타자에 대한 경멸이 담겨 있죠. 더구나 이 순수성이란 역사적 영웅의 눈으로 볼 때는 말과 사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타자의 외적인 형태는 부에서와 같은 비본질적인 것, 사물이 아니며 오히려 그에게 대립한 것은 사상, 인식 자체이며, 그와의 관여하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순수한 인식의 절대적으로 유동적인 연속성이다.”


4) 영웅의 내적 전환

⑥ 그에 반해서 영웅은 이런 자기 고백을 통해서 자신의 위선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깨달음은 결국 그런 위선을 벗어나게 하죠.


“행동하는 자아는 이미 이런 고백 속에서 고립된 대자 존재를 거부하며 자신이 특수성이 지양된 존재로 따라서 타자와 연속된 존재로 일반적 존재로 정립한다.”


반면 순수 양심은 “ 신을 전달하지 않으려는 대자성을 그 자신에게서 우선”합니다. 그러니 순수 양심은 “자기를 고백한 영웅이 이미 내던져 버린 것[대자 존재]을 고백하는 자에게서 주어 간직합니다”.


순수 양심은 그 자신의 모순을 인식하지 못하죠. 그는 자신의 순수성을 말로 고백하면서 “개별성을 말로는 내던졌지만, 진정으로 내던진 것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순수 양심의 이런 차가운 태도는 행동하는 자아의 자기 고백을 오히려 막고 양자의 통일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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