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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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1 아부 다비에서
이병창 2015.08.22 90
여행 일지 4월 21일

나는 지금부터 지난 4월 말에서 약 한 달에 걸친 유럽 여행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저 여름 휴가철이 되었어도 휴가도 얻지 못하고 일하는 페친들께 조그마한 즐거움을 주려고 할 뿐이다. 그저 눈요기나 심심풀이로 읽어 주기 바란다. 혹 나중에 유럽 여행갈 때 참고할 일이 있을지 모른다.

나는 동아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학생들에게 철학기행을 제안했다. 외국에만 철학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도 자랑스러운 철학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또한 이런 철학기행을 통해 난해한 철학적 내용을 철학자들이 살았던 삶과 문화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행히 학생회가 호응해주어서 내가 명예 퇴직하기 전까지 우리 대학 철학과에서는 매년 빠짐없이 철학기행을 다녔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나는 것이라면 동학사상 기행을 통해 경북 경주에서 전북 정읍까지 다녔던 기행이나, 충북과 충남에 집중되어 있었던 한국 사회주의자들(박헌영, 이현상 등)의 고향을 찾아다녔던 기행이었다.

그런 기행을 다니면서 외국 철학자들의 철학도 이렇게 기행을 통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언제 돈과 여유가 있다면 철학기행을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마침 나의 평생의 친구, 역사학 교수가 지난 해 연말 유럽 여행을 제안하자 (그는 올해 한 학기 안식년 휴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제안을 대뜸 받아들였다.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마음속에 품었던 유럽 철학기행을 이번에 실행해 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약속한 이후 지난 4월 21일 드디어 유럽으로 떠나게 되었다. 특별히 준비한 것이 없었다. 그저 비행기표와 자동차 렌트, 그리고 한 달 간 유럽에 머무를 레지던스였다. 레지던시는 결국 프랑스 중남부에 있는 고성도시 프와티에poitiers로 정하기로 했다. 코스는? 발가는대로!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저 떠났다.

쁘와띠에로 정한 것은 예약의 실수였다. 유럽에 레지던시를 찾다가, 세쥬르와 어페어(Sejour & Affairs)라는 레지던시 체인점을 발견했다. 그런데 원래는 유럽 중남부에 있는 스트라스부르크 지점을 예약하려 했으나, 마우스 체크의 실수로 프와티에 지점을 잡았는데, 이런 실수를 모르고서 예약을 마쳐버렸던 것이다. 나중에 실수를 발견했지만 규정상 예약을 변경할 수가 없었다. 유럽 중남부가 프랑스 중남부로 바뀌어서 자동차 운전 거리가 늘어나서 약간의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덕분에 레시던시 비용을 상당히 절약할 수 있었다. 스트라스부르크는 중부 유럽의 관문이 되는 대도시인 반면 프와티에는 중소도시로 경주와 같은 느낌이 드는 고도시(그러나 관광객은 별로 없는 대학도시)였기 때문이다.

이런 실수는 있었지만 “이 놈의 나라, 이민이나 갈까 보다” 하고 입버릇처럼 말했기에 유럽으로 떠나는 마음은 가벼웠다. 그런데 막상 비행기를 타고 보니,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남들이 열심히 일하고 투쟁하는 속에 나만 휴가를 즐긴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도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그저 더 크게 생각하기 위해 잠시 마음을 쉬도록 하자”는 걸 자기변명으로 삼았다.

비행기를 탄 시각은 22일 새벽 0시 40시 경이다. 비행기를 타자 말자, 피곤이 몰려들었다. 이런 저런 상념에 빠진 동안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 그리고 깨어보니, 밤새 잠들었던 모양이다. 비행기를 갈아타는 중간 기착지인 아부다비에 곧 도달한다고 한다. 아부다비라? 아라비아 해의 중심에 있는 부족국가 아랍 에레미트의 수도, 사막에 신기루처럼 솟아난 현대식 건물들, 이런 것들로만 알고 있을 뿐, 그에 대한 다른 지식이 없다.

그런데 내가 탄 비행기는 아랍 에레미트 국영 에티하드 항공이다. 나는 저가항공사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웬걸 타고 보니 비행기의 규모나 서비스의 수준이 정말 국영 항공 수준이었다.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공항에 내려 이리 저리 돌아보니 그 규모가 대단하다. 인천 공항에 비해 크면 컸지 결코 작지 않는 규모이고 시설도 현대화되어 있다.

함께 가는 역사교수에게 들은 바로는 아랍 에레미트가 석유로 돈을 버는데, 언젠가는 석유가 떨어지는 날을 대비하기 위해 산업을 키우기로 했다 한다. 그 많은 산업 가운데 항공 산업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지금 막대한 돈을 퍼부어 아부다비 공항을 건설하고, 국영 에티하드 항공사에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며 세계 지도를 머리속으로 그려보니, 아부다비야 말로 세계의 중심지라 할 수 있었다. 유럽과 남미를 연결하는 선과, 아프리카와 아시아, 또는 아프리카와 미국을 연결하는 선을 그으니, 아부다비가 중심이다. 거기에 소련과 인도, 북아프리카와 동남아가 모두 아부다비로 연결된다. 그렇다면 이게 새로운 실크로드가 아닌가? 하늘의 실크로드! 아랍 에레미트가 항공 산업을 키우는 것은 선견지명이 있는 판단이 아닐 수 없다.

중세 시대 실크로드 덕분에 아라비아가 융성하고 그 속에서 이슬람 문화가 발전했다. 이제 신 실크로드 체제가 되면, 다시 이슬람이 번성하게 된다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보니 우리는 아랍과 이슬람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과연 이래도 될까? 이참에 이슬람에 대해 내가 아는 것들을 모조리 적어 보았다.

70년대 초, 대학 시절 호메이니의 이란 혁명에 대해 무작정 열광했던 적이 있었다. 그 뒤 하마스를 중심으로 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보고, 마음속으로 응원해 왔다. 9.11 사건 이후 이슬람이라면 무조건 테러주의자로 낙인찍는 것이 몹시 안타까웠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보고는 세계 제국주의의 비정함에 대해 몸서리쳤다. 하마스와 같이 자비를 실천하는 행동적 종교가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했다. 이슬람을 모욕하는 서구 지식인들의 오만에 대해 구역질을 느꼈다.

그리고 몇 편의 영화들(예를 들어 윈터스립, 그리고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등에서), 그 영화들 속에서 이슬람인들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모랄을 세우기 위해 끝없이 토론하고 있다. 그들의 모랄은 무언가 새로운 것이 저 이슬람, 아랍 세계 속에 태동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것들이 내가 이슬람에 대해 알고 느끼는 전부이었다. 그저 단편적인 지식에 불과하다. 항상 지나치면서 생각한 것일 뿐 한 번도 진지하게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역시 나의 사유는 서구 아니면 아시아라는 이원론적 체제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아부다비를 떠나면서 나는 다짐했다. 귀국하면 이슬람을 본격적으로 연구해 보리라. 우선 코란부터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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