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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근대정신 장 B 절 주석(23)-상실의 언어와 교양 세계의 몰락
이병창 2019.10.21 58
정신현상학 근대정신 장 B 절 주석(23)-상실의 언어와 교양 세계의 몰락

1) 분열의 언어

앞에서 설명을 다시 간략하게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신하는 자신이 군주의 변덕에 희생된다는 것을 알고, 격분합니다. 이 격분은 한편으로는 자기의 개별 자아를 인정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의 개별 자아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격분을 통해 신하는 자기를 넘어서면서 마침내 새로운 통일에 이르게 되죠.

앞에서 헤겔은 아첨의 언어를 다루었습니다. 신하는 국가를 이용하기 위해 아첨하죠. 아첨의 경우, 봉사를 통해 이기심을 버리고 순수 자아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국가의 보편성과 일치합니다.

그러나 신하가 격분을 통해 자기를 벗어나면서 상실하면서 이제 그에게 새로운 언어가 출현합니다. 그 언어를 헤겔은 분열[zerrissene Sprache]의 언어가 됩니다. 헤겔은 신하에게서 등장한 분열의 언어에 대해 주목합니다. 신하는 이 분열의 언어를 통해 마침내 자기의 개별성을 지양하게 되면서 교양의 세계 자체를 극복할 가능성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나 분열의 언어는 완전한 언어이며 교양 세계 전체의 진정으로 현존하는 정신이다. 자신이 내던져져 있음을 다시 내던지는 격분[반역]이 등장하면서 이 자기의식[신하]는 절대적 상실 속에서 절대적인 자기 동일성을 얻는다.”

처음 자기 동일성이 자기를 부정하게 됐는데, 그리고 자기 부정을 다시 부정하면서 자기 동일성에 이르게 되었다는 거죠. 그래서 헤겔은 이를 “순수한 자기의식이 자기 자신과 순수한 매개”라고 말합니다.

2) 전체적 소묘

이상에서 절대군주 시대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서술했습니다. 양자는 서로 매개적인 역할을 하죠. 그 결과는 헤겔이 말한 대로 “현실과 동시에 사상의 절대적이고 일반적인 전도이며 소외”입니다. 이제 그 과정을 다시 한번 간략하게 서술하자면 이렇습니다.

신하의 봉사를 통해 군주가 등장하며, 그 앞에서 신하는 군주를 이용하는 아첨하는 존재로 전락하죠. 신하의 전락을 통해 군주는 진정한 절대군주, 오만한 군주가 되며, 신하는 오히려 이런 군주의 변덕에 의해 자신을 분열하게 됩니다. 그게 신하의 격분[반역]이죠. 이 격분은 신하가 자기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 앞에서 군주는 두려움에 떨면서 마침내 군주 역시 몰락합니다.

이 전체 과정에 대한 헤겔 자신의 표현을 들어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일반적 권력은 일반적 실체이지만 개인성의 원리를 통해 고유한 정신성에 이른다. 이런 일반적 권력은 고유한 자아를 다만 이름으로만 수용한 것이다. 일반적 실체가 실제로 권력이 되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무기력한 본질이 된다. 그러나 이런 희생된 자아를 결여한 본질, 또는 사물로 전락한 자아는 오히려 본질의 자기 내로의 복귀이다. 그것은 대자적으로 존재하는 대자 존재이며, 정신의 현존이다.”

여기서 ‘일반적 실체’가 ‘실제의 권력’[국가권력]으로 되었다가, 다시 ‘무기력한 본질’[부를 분배하는 군주]로 되고, 마침내 자기 내로 복귀하여 ‘대자 존재’[오만한 절대 군주]가 된다고 말합니다. 이런 변화를 매개하는 것이 신하의 규정이죠.

헤겔이 여기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이에 따라 신하의 규정도 변화합니다. 우선 ‘봉사하는 영웅’이었다가, ‘아첨’하는 신하가 됩니다. 이어서 군주의 변덕에 종속하면서 마침내 ‘자기 분열’에 이르죠.

이런 과정 속에서 헤겔은 권력과 부라는 대상적 존재도 상호 이행하며, 의식이 이런 대상에 대한 관계인 선악의 판단 자체도 상호 이행하며, 고귀한 의식과 비열한 의식이라는 관계 자체도 상호 이행한다고 합니다.

2) 성실한 의식과 분열된 의식

이런 계기들의 상호 이행의 관계를 헤겔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그 뜻은 전부 동일하다고 하겠습니다.

①“모든 것은 외면적으로는 그가 자기에 대해 가진 규정을 전도한다. ...대 자존 재는 자기의 상실이며, 자기의 소원화는 오히려 자기 유지이다.”

②“모든 계기는 상호 일반적인 정의를 행사하며 각각은 그 자체서 자기를 소외시키며, 스스로를 자기의 반대로 구상하면서 이런 방식으로 전도한다.”

여기서 헤겔은 성실한 의식과 분열된 의식을 대비합니다. 성실한 의식은 고귀한 의식이나 비열한 의식 자체를 말합니다. 이런 의식은 자기가 믿는 것을 고집할 뿐 그것이 전도된다는 사실을 모르죠.

반면 분열된 의식은 자기가 스스로 전도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고귀한 의식은 자신의 비열함을 인식하고 비열한 의식은 다시 자신이 고귀함을 깨닫게 됩니다.

“성실한 의식은 각 계기를 지속하는 본질로 간주하며, 이런 교양을 갖추지 못해 사상이 결여된 상태는 각 계기가 전도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분열된 의식은 이런 전도를 의식한다. 그것도 절대적 전도로 의식한다. 그런 상실된 의식 속에 개념이 지배하며, 성실한 의식이 분열했던 사상을 결합하며 그 언어는 따라서 정신적으로 풍요한 언어가 된다.”

3) 교양의 정신

이런 점에서 헤겔은 교양의 정신은 결국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일반적 기만이며 창피한 줄도 모르고 이런 기만을 떠드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분열, 자기 기만이 곧 새로운 정신적 진리를 배태하게 됩니다.

교양의 정신은 우리 주변에서 많은 예를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주로 지식인 가운데 많은데 그런 지식인은 세상사에 대해 그 배후까지 훤하게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타인을 속이고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속여가면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죠. 그는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면서 세상으로부터 초탈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죠.

영화 배후 가운데 로버트 레드포드라는 미국 배우가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 등장했을 때는 할리우드식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을 맡았습니다. 미모와 귀여운 모습이 그런 배역을 맡게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노년이 되어 그는 자주 세상을 초탈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대표적으로 아프리카 탈출이라는 영화에서 등장한 그의 모습이죠.

그 영화에서 주인공 카렌의 이미지 역시 이런 교양의 정신을 잘 보여줍니다. 카렌 역시 아프리카 케냐에서 커피농장을 개척하면서 신산한 삶을 살아가죠. 결국 커피 기계에 불이 나서 농장이 불탄 다음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돌아옵니다. 그게 바로 교양의 정신이죠.

4) 단순한 의식과 교양의 정신

헤겔은 이런 교양의 세계를 ‘음악가의 도착성’에 비유합니다. 그는 이런 음악을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서른 개의 아리아를, 이탈리아적이든, 프랑스적이든, 비극적이든, 희극적이든 간에, 그리고 모든 종류의 인물을 쌓아놓고 뒤섞는다. 한 번은 깊이 있는 저음으로 공중으로까지 올라가며, 이어서 목구멍을 수축하여 가성을 내서 허공을 가르며, 질주하고 부드러워지며, 강압적이며 조롱적이기를 교대한다.”

단조로운 멜로디만 연주할 줄 아는 고요한 의식에게는 이런 음악은 온갖 것의 혼합에 불과하게 여겨집니다. 단조로운 음악과 도착적 음악의 비교는 단순한 의식과 교양의 정신의 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이어지는 쪽에서 헤겔은 단순한 의식과 교양의 정신 사이의 대립을 설명합니다. 헤겔은 이 관계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서 설명합니다.

① 단순한 의식이 하는 말 가운데 교양이 모르거나 말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② 설혹 단순한 의식이 단조로운 말 이상을 할 때 그는 새롭다고 생각하지만 교양의 정신은 이를 웃기는 일로 간주한다.

③ 단순한 의식이 교양의 정신을 창피하다든지 비열하다든지 하고 말하더라도 교양의 정신은 자기 자신의 그런 모습을 이미 알고 있다.

④ 단순한 의식은 선악이 뒤섞여 나타나거나 선악의 원인이 그 반대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것은 우연에 불과하고 여전히 선악은 나누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양의 정신은 이런 사실은 선악이 이미 그 자체 내에서 전도되어 있다는 사실로 설명된다고 본다.

4) 선악의 구별이 존재하는가?

단순한 의식은 교양의 정신에 대항하여 탁월한 것(선, 고귀함)의 존재를 옹호하면서, 구체적 예나 일화를 근거로 제시합니다. 하지만 교양의 정신은 이런 예는 전도된 활동이 일반화된 현실에서 그런 예는 고립적인 경우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개별적인 예를 가지고 증명하려는 시도 자체는 아주 어리석은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통속의 디오게네스는 전도된 세계에 의해 제약되어 있으니”, 개별적인 구원은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구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교양의 정신은 일반적인 구원이 가능해야 하며, 개별적 구원은 의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결국 헤겔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양 정신이 단순한 의식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동물적 의식의 줘야 함과 협소함으로 전락” 할 수는 없으며, “정신으로서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며, 더 높은 의식을 획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해서 교양의 정신을 대신하여 새로운 정신이 등장합니다.

5) 비웃음의 소리

교양의 정신은 자기의 전도를 자각하면서, 분열됩니다. 이런 분열을 자각하면서 이를 넘어서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비웃음[Hohngelaecht]로 나타나죠. 이 비웃음은 세계의 공허함을 인정하는 것이며 동시에 자신의 공허함도 인정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공허한 것이죠.

그러므로 이 비웃음은 이중적 의미를 지닙니다. 한편으로 이 전도된 세계가 인간의 운명 즉 살아가기 위해 벗어날 수 없는 세계라는 생각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속으로는 이미 스스로 이런 전도의 세계를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하죠. 여기서 이중적인 반성이 일어납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현실적인 개체적 자아를 인정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사유 속에서 순수한 일반성을 찾는 것이죠.

“전자의 측면을 통해 자기를 회복한 정신은 시선을 현실 속의 세계로 향하며 이 세계를 여전히 그의 목적과 내용으로 삼는다. 후자의 측면에서 그의 시선은 부분적으로는 자기 내부로, 세계에 대해 부정적으로 되며, 부분적으로는 이 세계로부터 나와서 하늘을 향하며 현실의 피안을 그의 대상으로 삼는다.”

전자의 측면에서 모든 사물이 공허하며, 그러기에 자신도 공허합니다. 그에게서 현실의 모든 것이 지닌 고정된 본질은 사라지고 모든 것은 모순 속에 있습니다.

“의식은 모든 계기가 다른 계기에 대립하며, 모든 것이 전도되어 있다는 사실을 올바르게 표현할 줄을 알며, 각각이 어떻게 규정되든 간에 그렇게 규정된 것보다 그 각각의 본질을 더 잘 안다.”

비웃음, 냉소하는 지성의 모습이 교양의 모습입니다. 그는 세계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갑니다만 이 세계를 허망하다 생각합니다. 이런 이중적인 인간의 모습을 나는 살아가면서 몇 번 부딪혔던 같습니다. 내 친구 중 한 사람이 그렇습니다.

그는 한편으로 세상을 개혁하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악과 대결하면서 고투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는 이 세상의 허망함에 대해 한탄하고 했습니다. 허무주의자이면서 동시에 개혁주의자인 이 모순된 존재를 나는 헤겔을 통해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교양인의 진정한 모습이기도 하죠.

그런 교양인을 상징하는 것이 소위 광대가 아닐까요? 광대는 바보입니다만 세상의 이면을 알고 있는 현자입니다. 광대는 자신이 비웃음의 대상이면서 곧 스스로 세상을 비웃고 있죠. 그는 웃고 있습니다만 동시에 울고 있습니다.

6) 순수 신앙의 정신

그러나 헤겔은 이런 교양의 정신이 지닌 한계를 정확하게 지적합니다. 그는 “모든 것을 평가할 줄은 있지만 그것을 파악하지는 못한다"라는 겁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과 파악한다는 것을 헤겔은 구별했는데 그 구별의 의미는 이렇게 드러납니다.

“그 의식[교양의 의식]은 실체적인 것을 이 합일 성과 모순의 측면에서 알지만 합일의 측면에 따라 알지 못한다.”

사실 교양의 정신은 분열된 정신입니다. 어떤 것을 제시하면 그는 그 이면을 제시하면서 이를 비웃습니다. 그러나 사실 사물이 이 두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하는 거죠. 더 나아가서 헤겔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공허성은 모든 사물의 공허성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이 사물의 공허성으로부터 자아의 의식을 얻기 위해서이다.”

즉 이런 자아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데, 심지어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데서 자기 자신의 우월성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결국 이런 부정하는 자아가 그에게는 그의 유일한 자아인 셈이죠. 헤겔은 이런 자아는 비판만 할 줄 알지 그것을 진정으로 넘어서는 긍정성을 제시할 줄 모른다고 비판한 겁니다.

“그것은 거부와 희생을 통해 자기를 일반자료 형성하면서 부와 권력에 대한 소유에 이르고 이런 소유 속에서 일반적 인정을 얻는다. .. 그러나 이런 인정은 그 자체 공허하다. 그것은 이것을 정복한 것이기에 이것이 자체 존재[Selbstwesen]가 아니라는 것을 알며 오히려 자신이 그것을 지배하는 힘이고 그런 대상은 공허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그런 의식은 그런 것들을 소유하는 가운데 자기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정신적 언어로 서술한다.”

그러나 이런 분열 속에서 이미 그는 마음속으로 벗어나 있으니 이 마음속에 출현한 것이 곧 신앙입니다. 그의 몸은 여전히 개별성을 추구하니, 몸과 마음의 분열은 이제 분리되어 표현됩니다. 전자는 순수 신앙이고 후자는 계몽정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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