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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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소연한다
이병창 2012.05.14 879
나는 하소연한다.



(이 글은 한철연 사이트에 올리지만 한철연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 글에 대해서는 오직 나 개인이 책임질 것이다.)



방안의 꽃병이 깨어졌다. 어머니는 아이를 야단친다. 너 꽃병을 깨뜨려놓고 미안하다는 말도 없니? 아이는 억울한 듯, 엄마 내가 안 그랫어.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화를 낸다. 이 방에 너 혼자 놀고 있었잖아. 너 아니면 누가 깨겠니. 아이는 정말 억울하다. 그래서 문을 팍 닫고 나가버린다. 그러면 어머니는 아이를 쫓아가서 혼을 낸다. 이 년이, 어른 한테 머르장 머리 없이 문을 닫고 가.



위의 예는 우리가 자주 보는 엄마와 아이의 싸움이다. 현재의 상황과 너무 유사해 제시해 보았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억울하다는 것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모두 너를 의심하니까 일단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다음 나중에 잘못인지 아닌지 철저히 알아보자.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아무리 그가 의심스럽고 시간이 다급하더라도 그럼 먼저 진상을 철저히 알아보고 그런 다음 처리하자.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일까? 법을 원리로 하는 사회라면 아마 후자가 당연한 길일 것이다. 만일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의 마음을 어떤 식으로 풀어주지 않는 한,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는 극단적인 경우 자살을 택하거나 아니면 자신에게 사과를 강요하는 자에 대한 폭력에 호소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비슷한 사건을 접한 적이 있다. 바로 영화 「부러진 화살」을 통해 널리 알려진 사건이다. 억울함을 호소해도 들어주지 않을 때, 그는 결국 폭력에 호소하지 않았던가? 폭력에 호소하는 것은 물론 정당하지 못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서 우리는 먼저 그가 그토록 호소하고 싶던 억울함을 들어주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통합진보당 당권파에 속하는 사람이 처한 입장이 바로 위와 같지 않을까? 물론 그들이 중앙위 석상에서 폭력행위를 저질렀다면 그것은 범죄적인 행위이다. 그런데 우리 시민사회는 그들을 그렇게 몰고간 원인에 대해 반성을 해 볼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그들이 그토록 억울하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들은 거짓말쟁이고, 사악한 사람이니 더 들어볼 것도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들 당권파는 이번에 문제가 된 비례대표 경선에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거듭거듭 호소해 왔다. 그런데 비당권파는 한결같이 사과하고 비례대표를 사퇴하기를 요구했다. 그리고 결국 이번 중앙위원회에서 당권파의 비례대표 사퇴를 당의 이름으로 강요하려 했다. 꼭 그렇게 했어야 했을까? 만일 사과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진상조사를 철저하게 한 다음 당 기율 위반으로 제명하면 되지 않을까? 왜 이렇게 악착같이 사과와 사퇴를 강요했을까? 그렇게 하면 억울한 사람이 극단적인 행위에 호소할 것을 몰랐던 것일까?



지금 진보 언론이나 진보적인 지식인은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당권파가 부정을 저질렀으며 당연히 사과 및 사퇴를 해야 하며, 더구나 이런 폭력까지 저질렀으니 이제 매장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나는 하소연하다. 왜 그렇게 서두르는가? 기다려 보자. 그들의 억울하다는 말을 들어보고 철저하게 진상조사를 해보자. 그런 다음 처리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선거부정에 대해 잘못이 있다면 거기에 맞게 응당하게 처리돼야 한다. 지금은 모두 도매금으로 처리되고 있다. 이미 우리 모두는 그들의 부정을 확인하기도 전에 확신한다. 이런 확신의 원천은 무엇인가? 우리의, 진보 언론과 진보 지식인의 선입견은 아닐까? 우리도 반성을 하자.



그런데 비당권파는 또 다시 중앙위원회를 열어 기어코 비례대표 사퇴를 관철하고자 한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적어도 이런 것 정도는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비당권파가 원하듯이 현재 당권파를 제거했을 때, 통합진보당는 계속될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그 이유는 비당권파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당권파의 힘이 필요하기에 합당했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당권파를 제거한다면 그들은 자기들이 가진 원래의 힘밖에 행사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장수의 목을 치는 것이다. 만일 그 장수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소문이 있으면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심적으로 공황상태에 빠진다. 그들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함께 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장수의 목을 치려면 철저한 명분이 필요하다. 그런데 내가 보이게 비당권파는 당권파의 수장들을 목 칠 힘은 있다. 그러나 그 힘을 행사하기 위한 명분을 마련하는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그 결과는 말하지 않더라도 잘 알 것이다. 이미 일어난 폭력이 그런 심적 공황상태를 잘 보여준다.



나는 하소연한다. 비당권파 사람들, 그리고 많은 진보 언론 및 지식인들에게. 물론 당권파의 폭력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먼저 당권파의 억울함부터 들어보기 바란다. 먼저 진상조사를 철저하게 하라. 사과니 사퇴니 하는 것 그 뒤에 처리해도 늦지 않다. 나머지 급한 일이라면 서로 협조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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