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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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2 몽마르뜨 거리
이병창 2015.08.22 78
유럽여행 2; 4월 21일 화요일
(지난 번 글에서 ‘22일 0시 40분 인천공항 출발’은 나의 착각이다. 출발 날자는 21일 화요일이다.)

아부다비 공항에서 네 시간 정도 기다렸던 것 같다. 마침내 비행기는 아부다비를 떠나 파리로 향했다. 파리에 오후 2시 30분 도착 예정이다. 밤새 잠을 잤던 탓인지 다시 잠이 오지 않는다.

비행기에 설치된 네트워크 서비스를 뒤져서 ‘국제시장’이라는 한국영화를 발견했다. 국내에서 천만이 넘자 오기로 보지 않았는데, 비행기 안이니 꼼짝없이 볼 수밖에 없다. 정말 엉터리 영화이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눈에 과거는 늘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감독이 관객에게 아첨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거짓말 하는 것일까? 대중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을 내뿜는 정치가와 꼭 닮은 영화이다.

영화를 보는 것에 지쳐 다시 비행기 창문을 바라보니, 비행기가 눈 덮인 알프스 산맥 위를 날고 있다. 흰 눈이 만든 장엄한 광경에 잠시 넉 놓고 있다 사진을 찍어 보려 했으나 각도가 나오지 않는다. 아쉽다. 페친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삼아 할 말이 있었는데...

“난 알프스를 넘었어!”

파리 샤를르 드골 공항에 내려 렌트를 예약한 곳으로 갔다. 아프리카 계의 흑인이 친절하게 맞아 준다. 예약한 대로 독일 오펠사의 자동차 코르사가 단아한 몸짓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자동차를 끌고 나오니 약간 겁이 난다. 1998년 우리가 IMF 의 지배로 신음을 당할 때 독일에 1년 안식년으로 가 있었을 때 차를 몰고 그 이후로는 처음이니, 자동차 운전의 환경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길이 없다.

길을 찾기 위해 GPS를 함께 렌트했지만 크기가 꼭 핸드폰 크기만 하니, 어쩐지 미덥지 않다. 내 눈으로 저 걸 어떻게 보라구! 하는 수 없이 GPS를 거치대에서 빼서, 옆 좌석에 앉은 홍 교수에게 부탁했다. 인간 GPS가 되어, 방향 표시를 보면서 좌, 우를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GPS에서 음성으로 안내를 하기는 하지만 홍 교수나 나나 불어를 잘 모르니, 도움이 되지 않았다. 드디어 GPS를 파리 몽마르트에 있는 작은 호텔로 맞추고 파리로 가는 도로로 나섰다.

프와티에로 가기 전에 우선 파리에서 사흘간 머무르면서 파리를 돌아보기로 했다. 레지던시가 따로 있는데 다시 호텔을 잡았으니, 이중적으로 돈이 들긴 했지만 레지던시 가격이 워낙 쌌기에 부담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파리에 호텔을 잡으면서 인터넷 예약 사이트에서 추천되는 호텔 가운데 굳이 몽마르트 언덕 아래, 호슈슈아르가에 있는 호텔을 택했다.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 몽마르트가 20세기 초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니, 그쪽에 가서 거리와 집들, 바람 그리고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말하자면 당시 예술가들이 느꼈던 그 분위기를 나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이 단순한 생각 때문에 어떤 혹독한 결과에 부딪힐지는 드골공항을 떠날 때는 알지 못했다.

GPS가 안내한 대로 차는 파리 북쪽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대로를 따라갔다. 그 사이 파리 외곽순환도로에서 방향을 몰라 몇 번 반대쪽으로 돌기도 했다. 시내로 다가가자 점차 차들이 막히기 시작했으나, 다행히 파리 북Nord 역까지는 무사히 도착했다. GPS상 여기서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호슈슈아르 길이다. 그런데 몽마르트로 가는 길은 좁고, 차들이 뒤엉켜 있어 빠져나가기 힘들다. 간신히 앞의 차 뒤꽁무니를 따라 서다 가다를 반복하는데, 한 순간 뒷좌석의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뒷좌석에 놓인 내 백을 들고튀는 것이었다.

홍교수가 따라 갔지만 젊은이의 뛰는 걸음을 쫓아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백을 잃었다. 그 백에는 다른 것은 없었고 안경과 칫솔 핸드폰 충전기 등과 카메라를 집어넣었는데, 그걸 도착하자 말자 잃어버렸으니, 정말 난감했다. 나머지는 값싼 것이니 쉽게 대체가능하지만, 카메라는 손에 익고 상당히 고가이니 아까웠다. 우선 호텔을 찾아 짐을 풀고, 곧장 경찰서로 가기로 했다. 떠나기 전에 여행자 보험에 들었으니, 도난 신고서를 가지고 온다면 보험처리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저녁 5시 경, 호텔 앞 거리를 걸어서 경찰서를 찾으려 했다. 그러면서 몽마르트를 찬찬히 살펴보니, 여기는 아랍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인 모양이었다. 거리에 우글거리며 서성이는 아랍인들은 대개 젊은이들이었으며 또 실업자인 듯 보였다. 우리가 지나가니 그들 중에 누군가가 다가와서 핸드폰을 사라고 한다. 그 핸드폰 역시 누군가로부터 훔쳐낸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차의 뒷문을 열어 내 카메라를 훔쳐간 사람도 이 중에 있을 것 같았다.

간신히 몽마르트 언덕 오른쪽 끝에 있는 경찰서를 찾아 서툰 영어로 사정을 설명했다. 카메라를 잊었는데 찾아달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도난신고서가 필요하니, 만들어 줄 수 있느냐 하고 부탁했다. 젊은 경찰은 내 말의 뜻을 이해했다. 그런데 그걸 작성하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찰서 안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얼마쯤 기다려야 해요? 아마 두 시간쯤. 경찰서를 찾는 가운데 벌써 6시쯤이 되었는데, 배도 고프고 유럽 여행 첫날을 거기서 쭈그리고 앉아 기다리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함께 온 홍 교수한테도 미안했다.

순간적으로 나는 카메라를 포기하기로 했다. 파리, 그리고 유럽에 입장료를 낸 셈치자. 나는 가난한 나라의 교수 출신으로는 무척이나 통 큰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돌아서 나오면서 일단 저녁을 먹기로 했다.

마침 파리 북역 근처에 한국 음심점이 있어 들어갔다. 마음도 진정할 겸 소주를 몇 잔 연거푸 들이키니,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파리에 내려 처음 간 속이 경찰서니, 좀 웃기지 않은가? 나중에 몽마르트라는 곳을 인터넷을 찾아 알아보니 이곳은 이제 주로 아랍계 프랑스인들의 주요 거주지가 되었다 한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아랍계 청년들이 프랑스에서 벌였던 격렬한 저항이 생각났다. 나는 뉴스를 통해 이들의 저항을 유심하게 살펴보았다. 이들 청년들은 대체로 유럽 이민 1세대의 아이들이다. 그들은 부모를 따라 유럽에 와서 주로 유럽식 교육을 받았다. 이제 자기 모국어도 거의 상실하고 문화적으로도 유럽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유럽은 제도상 이들을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 그들은 성인이 되는 나이가 되면 자기들의 모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들이 유럽에 들어오려면 자기들의 부모와 똑 같이 유럽에 들어오는 노동이민의 절차를 다시 밟아야 했다. 하지만 이미 모국어도, 문화도 잃어버린 그들이 어떻게 다시 돌아가는가? 그들은 불법체류를 택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수많은 아랍 계 청년들이 불법으로 체류 중이다. 이들은 불법이므로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는다 했다. 거의 반 수 이상이 실업자가 되었다. 그들 청년들의 불만이 마침내 터진 것이 몇 년 전에 벌어진 저항운동이었다. 지금 몽마르트에 우글거리는 청년들을 보니, 그들의 근본적인 문제가 풀린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술을 마시면서 이런 생각을 되살리니, 내 마음이 누그러졌다. 까짓 것, 벌써 카메라를 사서 10년 넘어 썼으니, 게다가 디지털(DLSR 1세대 기종)이라서 이미 노후 기종이니, 잃어버린들 별 아까운 것은 아니다. 좋은 렌즈는 서울에 남겨놓고 제일 값싼 렌즈만 끼고 왔으니, 그래도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 마음이 다시 날아갈 듯하다. 역시 소주가 좋기는 좋다.

우리는 저녁 7시쯤 식당을 나왔다. 아직도 유럽의 저녁은 환하게 밝다. 저녁 9시가 되어야 어둑해 진다고 한다. 약간 취한 발걸음으로 여행자의 기분으로 다시 돌아온 우리는 몽마르트 언덕을 걸어올라 가기로 했다. 방향은 첫날 여행의 목표지, 몽마르트 언덕 꼭대기에 있는 ‘성스러운 심장’ 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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