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정신적인 동물의 왕국과 기만 또는 사상 자체
1) 노동의 두 측면
이제 시장에서의 교환관계를 모델로 해서, 우선 a 부분을 읽어보도록 하죠. 제목부터가 우선 심상치 않습니다. ‘정신의 동물왕국das geistige Tierreich’이라니? 그 의미가 모호합니다. 언뜻 듣기에 부정적인 의미로 생각됩니다만 사실 헤겔은 긍정적인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조금 뒤에 설명하도록 하죠.
솔직히 이 부분은 무척이나 난삽해서 정말 읽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나는 이 부분을 해석하는데 마르크스의 상품교환 관계의 모델에 비추어보려 합니다. 물론 헤겔의 설명이 그런 모델에 딱 들어맞지는 않지요. 하지만 그 모델은 난삽한 부분을 일정하게 정리해 주는데 약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절의 출발점은 개체Individualiatet입니다. 이 개체는 특정한 노동능력을 지닌 존재이므로 “개별적이고 특정한 존재”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농사를 잘 짓고, 어떤 사람은 가축을 잘 기릅니다. 그러나 이런 특정 노동능력은 동시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즉 사회적 가치가 있는 노동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노동을 헤겔은 ‘추상적인 일반성’이라고 규정합니다. 마르크스는 이런 사회적 노동을 ‘노동시간’으로 단순화했지요. 이런 단순화가 과연 옳은가는 철학적으로 성찰이 필요한 지점입니다만, 여기서는 헤겔의 독해를 돕기 위한 목적이니, 마르크스를 따라서 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단순히 ‘노동시간’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개체는 이런 두 측면을 지니고 있으므로, 헤겔은 이런 개체를 ‘근원적으로 규정된 본성’이라고 말합니다.
개인의 노동을 직접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눈에 나타나는 측면은 개별적이고 특정한 존재의 측면입니다. 반면 추상적인 일반성의 측면은 감추어져 있고, 이는 비로소 실제 상품을 교환하는 시장에서의 행위를 통해 실현됩니다. 이렇게 감추어진 것이기에 헤겔은 이 추상적 일반성을 ‘단순한 즉자 존재’라고 규정합니다. 여기서 즉자란 곧 가능성, 잠재성이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겠죠.
노동에서 이 두 측면은 항상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회적 노동은 특수한 노동을 통해서만 비로소 실현됩니다. 특수한 노동이 없이 노동의 일반성만이 실현되는 법은 없지요. 그런데 특수한 노동은 ‘특수하다’는 의미에서 ‘질적인 성격’을 지닙니다. 즉 다른 특수한 노동에 대해 구별되는 차이를 지니죠. 이런 차이의 측면 때문에 이 특수한 노동의 산물은 일정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되고, 어떤 때에는 이런 특수한 노동은 아무에게도 소용되지 않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운동성과 동일한 것을 의미하는 부정성은 단순한 즉자에서 규정성으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존재 또는 단순한 즉자는 특수한 범위로 된다.”(216쪽)
그러나 만일 시장에서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소용되는 것이 판명된다면, 이를 통해서 사회적 노동의 일반성이 실현될 수 있습니다. 헤겔은 노동이 지니는 두 측면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가 지니는 제한성은 의식의 행위를 제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의식의 행위는 여기서 완전한 자기 자신에 대한 관계이기 때문이다.”(216쪽)
2)정신적 동물의 왕국
여기서 ‘의식의 행위’는 노동의 행위와 구별되는 것 즉 상품 교환의 행위로 보아야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런 교환의 행위를 헤겔은 ‘자기 관계’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교환은 쌍방향적인 것이죠. 타인의 특정한 노동은 나에게 소용이 되고, 나의 특정한 노동은 타인에게 소용이 되는 경우 비로소 교환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관계에서 부정성이 교환되면서 결국 나의 일반성이 실현되죠. 그런 관계이니 자기 관계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수한 노동과 사회적 노동 사이의 이런 연관성은 상품교환의 관계를 모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만, 여기서 각자는 사회의 정의나 행복을 위해 헌신하는 도덕적 존재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특정한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사회적 정의나 행복에 기여할 수 있게 됩니다.
“자연의 근원적인 규정성은 따라서 다만 단순한 원리이며, 투명하게 존재하는 일반적인 지반이어서 이 속에서 개체성은 자유롭고 자기 자신과 동일하게 머무르면서 동시에 그 속에서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차이를 전개하며 자신을 실현하는 가운데 자기 자신과의 상호작용하게 된다.”(216쪽)
헤겔은 개체성이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사회 전체의 행복에 기여하는 상태를 동물적 삶과 비교합니다. 즉 동물이 자연 속에서 물을 먹고 공기를 숨쉬고, 지상에 거주하면서 이런 자연과 순환하면서 살아가면서 이런 삶이 제한적인 삶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듯이 개체성도 이런 사회적 정의 속에서는 규정된 삶 속에서 스스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헤겔의 이런 표현을 보면 시인 릴케가 동물이 성스러운 침묵 속에 살아간다고 말하고, 고갱이 타히티 주민의 삶을 고요한 어둠 속에 그렸던 것이 생각납니다. 결국 이런 사회적 규정이란 인간이 사회적 실체 속에서 살아가는 삶인데, 그런 삶이 동물적인 어둠과 고유의 삶이라는 게 헤겔의 주장입니다. a절의 제목 ‘동물의 왕국’ 앞에 ‘정신적’이라는 표현이 붙은 이유가 이제 짐작이 될 겁니다.
그런데 상품 교환 사회에서 개인의 삶이란 이처럼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행복이 항상 동시에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동물의 왕국’이라는 표현 속에는 부정적인 의미도 감추어져 있으나, 이런 부정적인 의미는 추후에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헤겔이 상품교환 사회에서 개인의 삶을 이루는 다양한 계기들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3)존재하는 측면과 행위하는 측면
우선 개인의 노동과 시장에서의 교환을 각각 분리해서 본다면, 개인은 특정한 내용을 목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특정한 노동을 통해 이것을 실현하죠. 반면 시장이란 그 속에서 일반적인 가치, 사회적 노동이 실현됩니다. 이 두 가지를 구별하면서 헤겔은 ‘규정성’과 ‘부정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특정한 노동의 측면이 ‘규정성’에 해당됩니다. 이런 규정성은 다른 규정성에 대립하는 것이므로, 교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규정성은 넘어서야 하는 것이죠. 만일 이런 ‘넘어섬’이 불가능하다면, 특수한 노동은 무가치한 것에 불과하게 되죠.
반면 교환의 행위에서 나타나는 ‘부정성’은 특수한 노동이 지닌 규정성(일차적 부정)을 다시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이런 부정의 부정 즉 자기 관계를 통해서 사회적 노동이 실현됩니다. 헤겔은 앞에서의 규정성을 ‘존재하는 것seiend으로서 현실’이라 말하고 뒤에 나온 부정성을 ‘행위하는 것tuend으로서 정립된 현실’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노동이 지닌 특수성, 규정성은 한편으로 본다면 사회적 노동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하는 측면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 노동의 특수성 때문에 오히려 서로 교환이 가능하게 되교, 노동의 사회적 가치가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위를 한편으로 본다면 규정성은 행위가 넘어가고 못하게 하는 제한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규정성은 존재하는 성질로 고찰되기는 하지만 행위 자체가 스스로 움직이는 지반이 지닌 단순한 색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본다면, 부정성은 다만 존재에 접해 있는 규정성이다. 그러나 행위는 그 자체 부정성과 다른 것이 아니다. 행위하는 개체성에서 규정성은 부정성 일반으로 해소된다. 또는 모든 규정성의 총괄 개념[일반성]으로 해소된다.”(217쪽)
이 두 가지 측면의 대립 즉 노동의 일반성과 특수성 사이의 대립과 조화의 두 측면이 벌이는 갈등이 이 장에서 헤겔이 전개하는 운동의 중심적인 축을 이룹니다.
4)목적과 수단 그리고 결과
특수한 노동과 사회적 노동, 상품의 생산과 교환을 좀 더 철저하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헤겔은 네 가지 측면을 검토합니다. 하나는 개인입니다. 개인은 특정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상품입니다. 상품은 두 측면을 갖습니다.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이죠. 세 번째는 교환입니다. 이 교환에서 사용가치를 매개로 해서, 일반적 가치를 실현합니다. 마지막으로 시장이죠. 이 시장은 개인과 대비됩니다. 이 시장은 일반적(사회적) 가치가 지배합니다만, 여기에 시장의 독특한 사정이 존재합니다.
이런 관계는 두 개의 축으로 나누어진다고 보겠습니다. 하나는 개인과 상품의 축이고 다른 하나는 교환과 시장의 축이죠. 이 관계는 다시 ‘의식에 속하는 대상’으로서 목적과 ‘목적이 전적으로 형식적인 현실 즉 상품과 관계하는 것으로서 이행 또는 수단(생산적 노동)과 마지막으로 ’행위하는 자의 의식으로부터 나와서 그에 대해 타자로서 존재하게 된 대상‘ 즉 최종적으로 교환을 통해 실현된 결과라는 3개의 축으로 나누어볼 수도 있겠죠.
여기서 우선 헤겔은 목적과 수단, 그리고 결과라는 축을 가지고 이 상품교환의 사회를 분석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그러나 이 상이한 측면들은 이 영역의 개념에 비추어 볼 때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확립되어야 한다. 즉 그 상이한 측면들 속에서 내용은 동일하며 어떤 구별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217쪽)
여기서 헤겔이 주장하려는 것은 이런 목적과 수단, 결과에서 일반성의 측면만 본다면 내용상 동일하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노동의 사회적 가치(목적), 상품의 교환 가치(수단), 시장에서 교환 가치의 실현(결과)이 내용상 같다는 거죠.
5)상품교환에 내재하는 모순들
이상에서 간단하게 규정한 상품교환의 모델을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서 헤겔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헤겔의 이야기를 순서대로 제가 번호를 매겨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우선 그는 ‘개체성의 규정된 본성’에서 시작합니다. 이 본성은 ‘특수한 것(능력, 재능, 성격)’으로 존재합니다. 상품교환 사회에서 개인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특수한 능력에 충실합니다. 이런 점에서 추상적 도덕을 목적으로 삼는 덕의 의식과 구별되죠. 인간이 자신의 특수한 능력을 넘어서 어떤 다른 내용(예를 들어 도덕적인 것)을 실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는 이미 앞에서 <세속과 덕의 싸움>에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헤겔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의식을 그(특수한 것) 너머 나가서 다른 내용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으로서 표상한다면, 이런 표상은 무를 무속으로 던져 넣는 일ein Nichts in das Nichts hinarbeitend과 같은 것에 불과하다.”(217쪽)
?이런 특수한 능력이 구현된 대상이 상품입니다. 이 상품은 교환을 통해 성립하는 것과 비교해 본다면 “즉자적인” 단계의 실현입니다. 이렇게 실현된 상품은 앞으로 교환이라는 행위의 소재가 되고, 이런 행위를 통해 새로이 형성되는 것이 됩니다.
이런 즉자적 실현의 단계에서 의식적인 목적과 그것의 실현으로서 상품은 의식과 현실이라는 대립 관계에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의식에 대해 현실이 지닌 자립성이란 하나의 가상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즉자적 단계의 실현은 “드러나지 않은 것이 드러난 존재로 순수하게 번역되는 것”(217쪽)에 불과합니다.
헤겔의 이런 주장을 통해서, 우리는 헤겔이 말하는 ‘행위’가 흔히 말하듯이 노동이나 도덕적 행위와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노동이나 도덕적 행위는 그것이 실현되는 대상이나 현실과 대립하죠. 그렇다면 상품의 생산은 노동이나 도덕적 행위와 달리 ‘순수한 이행’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생각해 보면, 이런 상품의 생산은 이미 상업적인 교환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런 교환을 통해서 노동의 특수성이 지양되고 일반적 가치가 실현되니까 말이죠.
그런데 여기서 상품의 생산은 다만 즉자적인 단계에 불과하죠. 아직 상품의 실제 교환인 대자적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런 특수성의 지양이 실제로 가능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즉자적 단계에서 즉 가능성의 한계 내에서 본다면 상품의 생산은 대립이 없는 순수한 이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의식은 행위handeln로 나아가게 되면, 현전하는 현실의 가상에 의해 미혹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공허한 사상이나 목적 주변을 방황하는 데서 벗어나서 본질의 근원적인 내용을 지켜나가야 한다.”(218쪽)
?노동의 사회적 가치는 즉자적으로 상품의 교환 가치 속에 실현됩니다만, 교환의 행위를 통해서 비로소 대자적으로 실현됩니다.
“이 근원적 내용은 의식이 그것을 실현한 다음에야 비로소 의식에 대해 존재하게 된다.”(218쪽)
이처럼 개인에게 내재하는 사회적 가치(즉자적)와 교환의 행위를 통해 실현된 가치(대자적) 사이에 구별이 발생합니다. 즉 즉자적 가치는 일반적 가치(사회적 노동)입니다만, 그 가치는 개체가 주관적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반면 실현된 가치는 객관화된 일반적 가치이죠.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하루 8시간 걸려서 어떤 상품을 만들었다 할 때 주관적으로는 그 상품의 교환가치는 8시간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동일한 상품이 4시간만에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의 객관적 교환가치는 4시간의 가치입니다.
이렇게 주관적 가치와 객관적 가치를 구분할 때, 개체는 미리부터 자신이 실현하는 가치 즉 대자적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교환의 행위를 통해 그 가치가 드러날 때야 비로소 그는 자신의 상품이 지닌 가치를 알게 되죠.
“의식이 즉자적으로 무엇인가가 의식에 대해 나타나기 위해서는 의식은 행위해야 하며, 행위는 정신을 의식으로 생성되도록 만든다. 의식이 본래 무엇인지를 의식은 그 현실로부터 안다. 따라서 개체는 자신이 무엇인지를 행위가 이를 실현하기 전에는 알지 못한다.”(218쪽)
?그런데 이런 행위를 통해 일반적 가치가 실현되므로, 의식은 미리부터 이런 교환의 행위를 전제로 하여 생산해야 합니다. 즉 먼저 자기의 능력에 따라서 또는 능력에 맞추어 어떤 물건을 생산하고 나중에 그것의 교환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미리부터 이런 교환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고, 이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자신의 특수한 노동을 투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개체의 노동은 물건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마, 상품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의식은 여기서 하나의 순환을 겪게 됩니다. 행위를 통해 내재적인 교환가치가 실현되며, 거꾸로 의식은 이런 교환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특정한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에 나선다 하겠습니다.
“따라서 여기에 어떤 출발점도 발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의식은 자신이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근원적인 본성을 행위로부터 비로소 알게 되지만 행위하기 위해서는 미리부터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218쪽)
?개체가 자신의 일반적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그 수단을 헤겔은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내적 수단’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적인 수단’입니다.
“마찬가지로 방법 또는 수단도 즉자 대자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능력은 특정한 근원적 개체성을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이것은 내적인 수단이나 목적의 현실로의 이행으로서 고찰된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수단 그리고 실재적인 이행은 능력과 관심 속에 들어 있는 사상의 본성[일반적 가치]의 통일이다. 전자는 수단에서 행위의 측면을 표상하며, 후자는 내용의 측면을 표상한다. 양자는 개체성 자체이며, 존재와 행위의 상호 침투이다.”(218쪽)
여기서 ‘내적 수단’은 상품 생산에서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특수한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현실적인 수단’은 시장 교환을 통해서 상품에 내재한 일반적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을 말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교환의 과정에서 헤겔은 두 가지 대립이 극복된다고 합니다. 하나는 시장이 처한 상황과 상품의 사용가치를 결정하는 개인의 관심 사이의 대립이죠. 개인은 시장이 처한 상황을 예측하여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주관적으로 생각했던 일반적 가치와 실제 시장을 통해 돌아오는 일반적 가치의 대립입니다. 예를 들자면 나는 시장 상황에 맞는 디자인을 지닌 구두를 만들어야 하며, 또 시장에서 정해진 가치에 맞추어서 생산해야 합니다. 만일 이 두 대립을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 생산은 시장에서 교환됨이 없이 잉여로 남게 되겠죠.
“이런 결합(상황과 관심)은 여전히 의식 내부에 속하며, 위에서 고찰한 전체는 이런 대립의 한 측면이다. 대립에 관해서 아직 남아 있는 가상은 이행 자체를 통해 또는 수단에 의해 지양된다. - 왜냐하면 이 수단은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통일이고, 내적인 수단으로서의 수단이 갖고 있는 규정성과 반대되는 것이며, 이 수단은 이런 규정성을 지양하고 자신을 정립하고 이런 행위와 존재의 통일을 외적인 것으로서, 현실화된 개체성 자체로서 정립하며 즉 개체성에 대해서 존재하는 것으로서 정립된 개체성이다.”(219쪽)
6)작품의 두 측면
헤겔은 이어서 작품과 관련해서 이 상품교환의 모델을 살펴봅니다. 우선 상품은 사용가치를 지니죠. 이것은 교환의 매개를 가능하게 하는 기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자체가 생산을 지배하는 목적은 아닙니다. 즉 어떤 상품이 시장에서 판매될만한 사용가치를 지녀야 하지만 생산자의 목적은 이 사용가치에 있지 않고 그것을 통해 실현할 교환가치에 있습니다.
“작품은 ... 규정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행위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있는 경우 그것은 존재하는 현실이므로 그 부정성은 작품이 가지고 있는 질적인 성격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의식은 자신을 그런 규정된 존재에 대립하여, 부정성 일반으로서 또는 행위로서 그런 작품에 부착되어 있는 규정성을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 일반적인 것을 말하여 다른 것과 비교될 수 있으며 이로부터 개체성을 ‘상이한 것’으로서 파악한다.”
작품에서 규정된 것이 사용가치의 측면이라면, 일반적인 것이 교환가치를 말하죠. 전자가 질적인 성격으로서 ‘부정성’이라면, 후자는 ‘부정성 일반’, 즉 자기 관계하는 부정성이며, 일반성을 의미하죠.
이런 일반성은 일정한 양적인 크기를 가지면서 각자 ‘상이한 것verschieden’으로 간주됩니다. 이런 양적인 크기는 선악과 같은 절대적 구별과는 다른 것입니다. 모든 작품은 어떤 개체가 가진 일반적 가치가 표현된 것이니 다소의 차이는 있다고 하더라도 좋다 나쁘다 하는 구별이 있을 수는 없게 됩니다.
“나쁜 작품으로 내던져진다면, 이는 비교하는 생각에 의한 것이지만, 이런 생각은 공허하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은 개체성 스스로의 표현이라는 작품의 본질을 넘어서 헛되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작품에서 찾고 요구하기 때문이다.”(219쪽)
그러므로 각 작품이 어떤 사용가치를 지니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각 작품이 지닌 일반적 가치이죠. 각 작품은 이런 일반적 가치의 크기에 따라서 서로 비교될 뿐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사용가치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용가치가 매개될 수 있어야만 비로소 그 일반적 가치가 실현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양자(작품의 개별성과 일반성)는 서로 상응한다. 근원적 본성을 통하지 않는 것은 개체성에 대해 존재하지 않는다. 또는 그 본성과 그 행위가 아닌 현실은 없으며, 현실적이지 않은 어떤 행위나 어떤 즉자는 없다. 다만 이런 계기들만이 비교될 수 있다.”(220쪽)
이상 상품교환의 관계를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해 보았습니다. 이 모든 측면에서 항상 개체적인 것과 일반적인 것이 대립하면서도 통일됩니다. 개체성과 일반성의 통일은 쉽게 말해서 각자가 자기의 특수한 능력을 발휘하면서, 주관적으로 활동하지만 사회적으로 규정된 것을 따르며, 사회 전체의 행복에 기여한다는 말이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개인의 행위는 ‘순수한 번역’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점은 앞에서 이미 말한 적 있지만 헤겔은 다시 한 번 이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은 단지 자기 자신의 순수한 번역을 의식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번역은 가능성의 밤으로부터 현재의 낮으로, 추상적 가능성으로부터 현실적 존재의 의미로의 번역이다. 또한 개인은 후자에서 그에게 출현한 것이 전자에서 남자고 있던 것과 다를 바 없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220쪽)
그러므로 개인은 사회적 삶 속에서 오직 기쁨만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는 현실 속에서 자기 자신과의 통일만을, “자기 자신의 확신이 진리가 되는 것”을 발견할 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