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자유게시판
북한 인권법이란?
이병창 2014.01.16 258
1) 새누리당의 북한 인권법

-북한 인권법 아닌 새누리당 산하 단체 지원법



박근혜의 기자회견 이후 새해 벽두부터 통일이 대박이라며 노심초사 북한이 붕괴하기만 기다리더니 이제 북한 인권법을 가지고 난리가 벌어졌다. 민주당 대표 김한길 때문이다. 그는 새누리당의 북한 인권법 안을 대폭 수용할 의사를 밝혔다. 그 때문에 국회에서 낮잠 자고 있던 새누리당의 북한 인권법(들)이 다시 좀비처럼 살아났다.



조선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하 조선)은 우리 민족이지만 독립된 국가이다. 그런 나라의 국민들에 대해 우리가 무슨 권리가 있어서 법을 만든다는 말인가? 아직 조선이 대한민국의 영토로 생각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 법안은 조선이라는 독립 국가를 반란단체로 규정하는 국가보안법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대체 무엇을 가지고 난리인가 싶어, 국회에 제출된 새누리당의 북한 인권법들을 찾아보았다.



그 동안 무려 5개의 안들이 제안되었던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제출한 심윤조 의원의 안을 빼놓고 나머지 제안들은(대표적으로 박근혜의 입이라는, 원내 부대표 윤상현 의원 안) 모두 북한 인권을 증진시키지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핵심은 ‘북한 인권재단’이라는 데 있었다. 역시 돈 문제였군! 북한에 믿을 수 없는 전단을 풍선에 매달아 퍼뜨리는 단체, 촛불 집회가 있으면 항상 맞은편에서 방해 집회를 여는 단체, 그런 단체들의 명색이 북한 인권 단체들이다. 그런 단체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북한 인권 재단을 만들자는 것인데, 이거야 말로 북한의 인권을 이용해 돈을 먹자는 게 아닌가? 북한 인권법이 아니라 새누리당 산하 단체 지원법이 정확한 이름이라 할 것이다.



그나마 최근 제출한 심윤조 의원 안의 경우에는 북한인권 재단 안이 빠졌으니 자기들도 약간 찔리기는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 안의 핵심은 이 안 속에 조선의 국민을 ‘북한 주민’이라고 표현하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역시 조선이 대한민국의 영토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구체적 내용들에는 별반 먹을거리가 없었다. 그저 북한의 인권의 개선을 위해 국가가 노력하자는 선언에 불과했다. 이런 선언이라면 자기들끼리 하면 되지 왜 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인가? 차라리 화성이나 금성이 우리 땅이라는 선언을 하는 게 더 멋진 일이 아닐까? 이해찬 전 총리가 북한 인권법이 외교적 결례라고 일갈한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사실 새누리당의 북한 인권법 속에 감추어진 것은 정치적인 것에 불과하다. 북한의 인권을 주장함으로써 야당을 종북으로 몰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작년 자칭 반북진보라는 진중권이 자기 손에는 종북을 가려내는 시볼레스(shibboleth; 암호)가 있다고 했다. 그 중의 하나가 북한에 인권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질문이라 한다. 바로 그렇다. 새누리당의 북한인권법의 진짜 목적은 종북의 시볼레스이다. 그러니 북한 인권법이 아니라 종북 몰이법이다.





2) 민주당의 북한 민생법

-북한 인권법이 된 북한 민생법



이런 사실들이야 이미 천하가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기에 민주당은 지금까지 새누리당의 북한 인권법에 반대했다.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북한 민생법 안(윤후덕 안)을 만들었다. 그 핵심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있었다. 일본에 해일이 일어나고 중국에 지진이 났을 때도 대한민국은 지원했으니 조선에 대해 지원을 하자고 법을 만드는 것이야 문제가 없다.



물론 남을 돕더라도 남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 무조건 돕겠다고, 왜 도움을 안 받느냐고 마구 화를 내는 것은 돕자는 게 아니라 조폭적인 태도에 불과하다. 민주당의 민생법이 인도적 지원에서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남북 간 상호신뢰의 원칙에 따르겠다고 선언한 일은 합당한 처사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혹시나 새누리당의 종북 몰이에 걸리지나 않을까 해서 뒤에 꼬리표를 달아놓았다. 그래서 이름이 북한 민생(인권)법이 된 것이다. 치사한 짓 같기는 하지만 민주당의 처지에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또 그렇게 싸우고 있는데, 이번 민주당의 김한길 대표가 덜컥 자살골을 넣고 말았다. 그래서 새누리당의 북한 인권법을 대폭 수용하여 이제는 북한인권(민생)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이제 강조점을 북한의 인권에 두겠다는 선언이다. 새누리당이야말로 호박이 넝쿨째로 떨어진 격이다. 민주당에 대해 종북 몰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작년 NLL논란에서부터 연속적으로 민주당을 종북 몰이했었는데, 이제야 드디어 미련한 곰을 잡게 된 것이다. 그 뿐 아니다. 아마도 이참에 새누리당은 북한인권재단 안을 부활 또는 강화할 것이다. 이왕 곰은 잡았으니 장사도 해야 하지 않는가? 국회의원들이 벌이는 이런 개콘 콘서트 때문에 우리의 탁월한 개그맨들이 굶어죽게 생겼다.



3) 국제적 개입법으로서 인권법

-독재이든 아니든 북과는 외교 관계



그런데 도대체 조선이라는 나라의 인권에 왜 대한민국이 야단법석인가? 조선의 인권을 문제 삼는 자들은 인권에 한해서는 국제적 개입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타국의 인권에 대한 국제적 개입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부시가 이라크의 후세인이 독재라는 명목으로 침입했던 이라크 침공의 역사를 그리고 그 결과를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설혹 있더라도 극히 제한된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은 국제기구를 통해야 하며, 일시적이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직접적이 아닌 간접적인 방식(예를 들어 타국 내부의 저항 세력에 대한 지원)만이 인정된다. 이 문제에 관해서라면 필자는 철학적 토론을 사양하지 않지만 지금 이 자리는 그런 자리가 아니라 생략하겠다. 그런데 북한인권법처럼 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항시적으로 직접적으로 국제기구를 통하지 않고 개입한다는 것은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인권을 운운하는 자를 보면 북한 주민의 인권을 말하면서 그들을 국가의 성원이 아니라 반란단체가 지배하는 지역의 주민으로 모욕하고 있다. 그런 모욕도 모자라는지 그들의 자주성 자체를 짓밟는다. 북한의 주민은 독재에 저항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부채질해야 그들이 살아난다고 한다. 더구나 그들은 북한 정권에 대해 도덕적 분노를 쏟아낸다. 마치 자신이 북한 주민의 보호자나 대변자가 되는 것인 양 말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제일 더러운 짓이 타인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일 서로의 권리를 침해한다면 그것은 법적으로 비판할 일이다. 그런데 타인의 도덕이 나와 다른데, 타인의 도덕이 나를 침해한 적이 없을 때 그래도 타인을 도덕적으로 비난한다면 그것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다. 불필요한 그런 분노를 멈출 수가 없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증거가 된다.







이참에 분명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다. 조선이 대한민국과 동등한 국가라면 대한민국이 조선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외교적인 관계이다. 다행히 조선과 대한민국은 같은 민족이다.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공동운명에 처해 있다. 그러므로 같은 민족으로서 단결하여 공동으로 민족 전체, 작게는 우리 자신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 그런 외교적 관계, 실용적이고 능동적인 관계가 우리가 취해야 할 일이 아닌가?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를 먹어치웠던 원수 일본과의 외교적 관계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조선과 관계해야 한다. 조선이 독재이든 말든 우리가 공동으로 우리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면 왜 협력을 마다하겠는가? 명나라에 대한 사대 때문에 청을 오랑캐라 부르고, 청을 공격하려다가 제풀에 넘어가 치욕을 당한 조선의 사대주의자들의 길을 다시 되풀이해야 할까?



4) 자치 국가로서 북한

-우리가 북한 인권법을 제정한다면 그들은 남조선 자주화법을 만들 것



마지막으로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러니, 저러니 간에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인권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 북한 인권법이야 말도 안 되는 허황한 일이지만 그래도 인권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만은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미국도 연구하는데 북한을 연구 못할 일은 없다. 학자로서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해서 명확한 근거 위에 판단을 내린다면 그것은 환영한다. 물론 나는 동의하지 못하지만 이해할 수는 있겠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나의 판단에 동의는 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해 줄 것이라 믿는다. 나는 학자이다. 그런 관점에서 나의 판단을 여기서 소개한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이다. 조선은 사회주의 국가이다. 민주란 시민의 합의로 법을 제정하지만 그 실행은 전문 관료들에게 맡긴다.(물론 일부 행정책임자는 선출한다. 이는 자치에 속한다) 반면 자치란 일단 민주적으로 법을 제정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그 실행은 스스로 관리한다. 그러므로 자치는 자주관리 체제이다. 여기에 전문 관료란 없다(자치국가라도 하급 관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이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주의와 자치주의는 서로 자랑거리가 있다. 물론 서로 비난거리도 있다. 내가 자랑하는 것은 상대의 약점이다. 상대가 자랑하는 것은 나의 약점이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자랑하듯이 그들은 자치를 자랑한다. 우리가 자유를 자랑하면 저들은 자주성을 자랑한다. 우리가 인권을 자랑하면 저들은 인간다움을 자랑한다.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는 시끄럽기만 하지 제대로 되는 일은 없다. 어떤 사람은 민주주의란 스포츠 경기와 같다고 한다. 이기면 천하를 얻을 듯 보이지만 실제는 그저 한때의 흥분에 불과한 것이다. 왜 그런가? 실제로는 관료들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 나라 어디에 우리가 참여해서 이루어지는 행정이 있는가? 우리는 노예처럼 관리되는 데 익숙하다. 민주주의 사회는 노예근성으로 가득 찬 사회가 아닌가? 물론 비판적으로 보면 그렇다. 그래도 나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자랑한다.



그러면 사회주의를 보자. 이 나라에서 모든 것은 자치이다. 사회는 모두 코뮌으로 구성된다. 코뮌 내에서 그리고 코뮌들 사이에서 모든 것이 참여자들의 자치이다. 여기서 생산과 정치는 따로 떨어지지 않는다. 생산이라는 일상적 삶 속에 이미 정치가 녹아들어가 있다. 그러므로 이런 자치국가에서는 정치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상적 삶 자체에서 분주한 생활정치가 일어나고 있다. 다만 외부의 관찰자는 그것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사회주의의 국가에서 정치의 영역에 남은 것은 의례, 제례뿐이라 한다. 비유하자면 종교적 단체와 같다. 가장 신앙심이 강한 자가 종교의 수장이 되듯 이 나라에서도 사회주의에 대한 신앙심이 강한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 그런데 이런 지도자는 이런 종교단체 전체를 상징적으로 대표할 뿐, 실제로 다스리지는 않는다. 실제로 모든 일은 자치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장점만 보면 그렇다. 그런 장점은 인정한다. 그래도 나는 자주성보다 자유가 좋다. 나는 인간답게 살기보다는 인권이 더 좋다는 걸 누가 어떻게 하겠는가?



모든 것은 서로 상대적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랑만 하지는 말자. 저들에게도 자랑거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북한 인권법을 제정한다면 그들은 남조선 자주화법을 만들 것이 아닐까? 제발 남과 북이 이런 식으로 싸우지는 말자. 서로 인정하고 서로 장점을 살려 민족 앞에 부딪힌 공동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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