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성의 개념
우선 ‘이성의 개념’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해 보죠. 이성의 개념은 상호 인정이라는 개념에서 나옵니다. 이런 상호 인정은 다만 형식적인 차원에서 인정일 뿐, 내용적으로는 서로 대립하죠. 법적인 인격의 개념이 이성의 출발점입니다. 이성의 경우 형식적인 일반성과 내용적인 개별성 사이에 대립이 일어납니다. 형식과 내용, 일반성(사회)과 개별성(개인)의 일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이성이 발전하는 방향입니다.
이성의 운동 자연에 대한 관찰로부터 시작합니다. 이성은 타인을 인격적인 주체로 인정하므로 자연 역시 동일한 주체로 인정합니다. 헤겔은 이런 자연을 그 자체적 존재라고 규정합니다. 이성적인 자연 관찰의 경우, 자연을 경험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주어지는 구체적 내용과 이성이 전제하고 있는 자연의 그 자체성이라는 형식 사이의 대립이 나타납니다.
이성적 관찰을 통한 경험이란 단순한 경험과는 구별됩니다. 이미 의식의 차원에서도 의식은 감각, 지각, 오성의 단계를 거치면서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을 받아들여 왔죠. 의식의 차원에서 경험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겪는 주관적인 경험입니다. 그러나 이성의 단계에 이르면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을 받아들이더라도 그 경험은 객관적이어야 하죠. 즉 나뿐만 아니라 우리가 모두 인정하는 한에서만 주어지는 경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객관적 관찰이라 합니다.
이와 같은 이성이 객관적으로 관찰한 것은 자연 그 자체에서 주어진 것, 즉 객관적 실재이어야 합니다. 즉 그것은 인간의 주관성이 개입하기 이전에 주어지는 것이어야 하죠. 이성은 자신이 관찰하는 객관적 경험이 곧 이런 객관적 실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두 가지는 같은 것이 아니죠. 전자는 모든 사람이 인정한다는 의미이고, 후자는 주관을 넘어선 존재라는 뜻이니까요. 그 자체적 존재(객관적 실재)와 객관적 경험 사이의 대립이 거듭 반복되어 나타나는 이성적 관찰의 추진력입니다. 이성은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곧 그 자체적 존재에서 주어지는 것이라는 보장을 얻을 때까지 전진하게 됩니다.
2)이성적 관찰의 발전
지금까지 이성적 관찰의 발전과정을 요약해 본다면, 우선 이성적 관찰은 비유기적 자연사물 속에서 발견된 법칙을 그 자체적 존재로서 간주합니다만 이런 법칙이 결국 주관적인 것(“ 추상적인 것으로서 관계 맺는 사물들이 계기를 이루는 법칙”(167쪽))에 그친다는 것 때문에 좌절합니다. 그러 가운데 이성적 관찰은 그 자체적 존재의 새로운 후보로서 생물체에 대한 관찰에 이르게 되죠.
그러나 이성적 관찰은 생물체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생물체 역시 자연사물처럼 파악합니다. 이때 오성은 생물체의 법칙을 파악하려 하는데, <생물체와 그 환경 사이의 법칙>, <생물체의 내적 성질과 외적인 조직 사이의 법칙>, <외적인 형태와 부분적인 기관 사이의 법칙>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성적 관찰이 발견한 여러 법칙은 공통적으로 말하자면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사이의 법칙>이죠. 헤겔은 이런 법칙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논증하면서 마침내 이성적 관찰은 생물체의 개념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존재(“자기 내 반성된 단순성”)입니다.
이런 생물체의 개념이 이미 그 자체적 존재의 단서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생물체에서는 아직 종적인 존재가 개체로부터 분리되어 나오지 않으므로, 그 자체적 존재는 감추어져 있을 뿐입니다. 비로소 인간이라는 자기의식적 존재에 이르러 종적인 존재가 개체로부터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사회이죠. 여기서 사회와 개인 사이의 관계는 헤겔에 따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종적인 존재가 분리되지 않은 지반[즉 개체] 속에서 자기를 분리하여 운동하면서 이렇게 그 지반에 대립하는 가운데 스스로 자립적으로 되면서도 동시에 구분되지 않을 것이다.”(167쪽)
따라서 헤겔은 자기의식적 존재를 “개념으로서 현존하는 개념 속에서만, 또는 자기의식 속에서만 발견한다”(167쪽)고 말합니다. 여기서 개념이란 추상적인 관념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것은 일반적인 것이면서도 동시에 자립하는 것이고, 이런 ‘개념’에 해당하는 것은 자기의식이 이루는 사회입니다. 헤겔은 개념은 자기 내부에서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내적 규정성’ 때문에 이것은 ‘자유로운 개념’이 되죠. 개인이 사회를 이루지만 헤겔은 사회는 실체적 지반이므로, 개체를 규정한다고 설명합니다.
3)자기의식에 대한 지각
그럼 이제 이런 자기의식에 대한 이성적 관찰이 어떻게 발전하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죠. 우선 이성은 이런 ‘자유로운 개념으로서 현실적인 개념’을 개념적으로 규정합니다. 그것이 곧 사유의 법칙이죠. 이 사유의 법칙은 동일율, 모순율, 가언추리 등과 같은 논리적 법칙을 의미합니다.
이런 논리적 법칙은 자기의식이라는 관념 속에 내포하는 법칙입니다. 이는 반성적으로 얻어지는 것이고, 아직 이성적인 관찰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죠. 헤겔은 이런 반성적 법칙을 ‘형식적인 진리’, ‘머리속의 사물Gedankending’에 불과하며 ‘그 자체에서 분열을 갖지 않는 공허한 추상’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분열’이란 구체적 내용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유법칙은 형식에 불과하고 내용을 갖지 않는다는 말이 되죠.
그러데 논리적 법칙은 사태를 파악하는 일반적인 형식이지만, 그 형식 자체로 고유한 내용을 갖고 있습니다. 즉 논리적 내용이죠. 동일율은 동일율대로 모순율은 모순율대로 고유한 내용을 지닙니다. 이 논리적 내용은 이런 논리적 형식 속에 들어오는 구체적인 내용인 개별적인 사태와 구별됩니다. 이런 논리적 내용을 헤겔은 “직접적으로 존재하고 그 속에서 그 자체에서 모든 실재성을 지닌 지Wissen”라든가, “형식과 모순되지 않고 형식으로부터 분리되지도 않으며 오히려 본질적으로 형식 그 자체라고 할 내용”(167쪽)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자면 “A는 A이다”는 동일율을 표현한 말입니다. 이때 A는 구체적 사물을 가리키지 않고 모든 사물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에 불과하죠. 반면 “책상은 책상이다”라고 한다면, 여기서 동일율의 형식은 구체적 내용 ‘책상’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동일율이라는 논리적 내용은 구체적인 내용인 책상의 동일성과 구별되죠.
객관적 실재를 추구하는 이성은 자기의식에 대해 주관적 반성을 넘어서 지각적인 관찰을 통하여 자기의식 자체에 속하는 것을 발견하려 합니다. 이런 관찰이 자기의식 속에 발견하는 것은 여러 가지 필연적인 성질들(“다수의 구별된 필연성eine Menge absonderter Notwendigkeiten”)입니다. 그것들은 각자 특정한 내용을 지니고 있죠. 이런 것들은 다양한 심리적 내용들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내용과 비교해 본다면 자기의식은 이런 내용들을 담고 있는 담지자에 불과하게 되죠. 다른 한편, 자기의식은 하나의 통일체(“자기 반성적 통일체; ein in sich refelctierenden Einheit”)이고, 그런 통일체에 비해서 본다면, 여러 심리적 내용들은 자기의식의 우연적인 성질(“사라지는 크기eine verschwindende Groesse”)들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지각의 단계에서 사물이 한편으로는 여러 자립적인 성질들과 그 담지자로 다른 한편으로는 우연적인 성질들과 그것의 통일체로 규정되었던 것과 유사합니다. 자립적인 심리적 내용들에게는 내용만 있고 형식이 결여됩니다. 관찰된 내용들은 지각을 통해 얻은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개별적인 것이고, 본질적인 법칙에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자기의식이라는 통일체에는 형식만 있고 내용이 없죠. 이런 점에서 통일적인 자기의식은 관찰하는 행위가 됩니다. 이것은 지각된 지식을 대상적인 존재로 파악하면서 자기 자신은 이런 지식을 넘어서서 부정하는 힘으로 규정합니다. 헤겔은 이런 ‘부정적으로 통일하는negative Einheit’ 힘으로서 자기의식을 ‘자기자신을 위한 존재Fuesr sichselbst sein’, 또는 ‘활동하는 의식das tuende Bewusstsein’이라 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본다면 이런 법칙들은 사유의 통일 속에 사라지는 계기이므로, 지식으로 .... 받아들여져야 하지만, 사유의 법칙으로서 받아들여질 수는 없다. 그러나 관찰하는 행위는 지식 자체가 아니며, .... 오히려 그런 지식의 본성을 존재의 형태로 전도시키고 따라서 자신의 부정성을 단지 그런 존재의 법칙으로서 파악한다.” (168쪽)
4)심리학의 영역
지각적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심적 내용과 활동하는 의식 사이의 상관관계>가 심리학의 영역입니다.
“한편으로 사유는 다양한 법칙들 속에 머물러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유는 그에게 이제 대상이 되는 것에서 타재성을 획득한다. 그것이 활동하는 의식이다. 이 활동하는 의식은 스스로 대자적인 것이므로, 타자존재를 지양하고, 자기 자신을 부정태로 직관하는 가운데 현실성을 얻게 된다.”(168쪽)
이런 관계에서 문제가 되는 심리적 내용은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의 측면은 이 심리적 내용이 외적인 현실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는 측면이죠. 그것은 현존하는 사회의 습관이거나, 관습이거나, 사유방식(문화)일 수 있습니다. 활동하는 의식은 이를 현실로서 수용하죠. 또는 활동하는 의식은 “그런 현실에 대립하여 스스로 활동하면서 자기를 인식하고, 내적인 경향성이나 열정에 영향을 받아 현실로부터 특별히 자기 자신에게 맞는 것만을 끄집어 낼 수”(169쪽)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활동하는 의식은 주어지는 내용에 의식이라는 형식을 부여할 뿐이며 후자의 경우 내용 자체를 일정하게 변용시키게 됩니다. 이런 변용은 주어지는 것의 본질적 내용에 모순되지 않는 것이거나, 아니면 주어지는 것에 대립하는 것일 겁니다. 이런 대립의 경우도 다시 단지 개별적인 방식으로만 대립하거나(범법의 경우와 같이) 아니면 일반적으로 대립하여, 법의 내용 자체를 변화시키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활동하는 의식이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사이에 개입하는 다양한 방식이 심리학이 다루는 영역입니다.
“관찰하는 심리학은 다양한 능력과 경향성, 열정을 발견한다. 이런 집합들을 열거하는 데서 자기의식의 통일성에 대한 기억이 억압되는 것은 아니므로, 정신이 무슨 자루인 냥 그 속에 이렇게나 다양하고 이질적인 서로 우연적인 것들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특히 거기서 그런 것들은 죽은 움직이지 않는 사물들처럼 보이지 않고, 부단한 움직임으로 보인다는 데 대해서 관찰 심리학은 놀라게 됨에 틀림없다.”(169쪽)
5)개체와 상황의 상응관계
이런 다양한 심리적 내용들은 하나의 개체적 자기의식 속에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마다 차이가 나타나겠죠. 어떤 개체는 어떤 심리적 내용 예를 들어서 경향성에 있어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을 것이며, 다른 심리 내용에서는 예를 들어 지성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보다 부족할 것입니다. 헤겔은 이런 개체적 차이를 열거하는 것은 학문적으로 곤충이나 이끼를 열거하는 것보다 더 흥미가 없는 것이라 합니다. 왜냐하면 곤충이나 이끼와 같은 자연은 본래 ‘우연적인 개별화zufaellig Vereinzelung’에 속하는 것이니 그런 열거가 당연하지만 반면 심리적 내용을 열거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헤겔은 “심리적 내용의 본질은 정신이 지닌 일반성ihr Wesen das Allgemeinheit des Geistes” 이라 합니다. 정신이란 본래 법칙적 관련을 지닌 것이니, 심리적 내용은 그런 법칙적인 관련 속에서 파악되어야 마땅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개체적인 차이를 열거하는 가운데서 마침내 어떤 심리적 내용 사이에 법칙적 관계가 발견됩니다. 이런 법칙의 발견과 더불어서 이성적 관찰은 지각의 단계를 넘어서 오성의 단계로 이행하게 됩니다. 심리적 법칙의 발견과 관련하여 처음 나타나는 법칙적 관계는 <개체와 그 상황 사이의 관계>입니다. 즉 개체는 특정한 상황(상황, 처지, 습관, 관습, 종교 등을 포함)에 따라서 특정한 심리적 내용을 가집니다. 이때 상황이 지배적이기도 하고, 거꾸로 개체에게 고유성이 지배적이기도 합니다. 전자의 경우는 개체는 상황에 적응하며 후자의 경우 상황에 무관심하거나 아니면 상황을 변화시키려 하겠죠.
“그러나 개체성은 일반적인 것이며 따라서 고정되어 있으면서 직접적인 방식으로 현존하는 일반자, 관습이나 습관 등과 합일하며, 그것들에 적합하게 되는 동시에 그런 일반적인 것들에 대립하면서 자신을 유지하고 오히려 그런 것들을 전도시키거나 아니면 개별적으로 그런 것들에 대해 전적으로 무관심하다.”(170쪽)
그러나 어느 편으로 보더라도 결국 특정한 개체성과 특정한 상황은 서로 상응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상황이 영향을 미치더라도 개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 받아들일 뿐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개체가 상황을 변화시키더라도, 상황이 이미 개체에게 속하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상황은 개체의 영향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반자[즉 상황]이 개체성에게 무슨 영향, 어떤 영향을 주는가는 개체성 자체에 달려 있다. 상황, 처지, 습속 등은 ...개체성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무규정적인 본질을 표현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등이 없다면 개체는 현재 그 개체의 규정으로 되지 않는다.”(170쪽)
헤겔은 상황과 개체의 심리적 특성 사이의 관계를 마치 ‘서로 닮은 그림들이 마주보는 것(eine gedoppelte Gallerie von Bildern)“과 같다고 합니다.
5)개체와 상황의 대립
이런 상응관계는 거꾸로 정반대의 의미를 지닐 수가 있습니다. 상황이 영향을 미치더라도 개체가 그 영향을 거부할 수가 있고, 거꾸로 개체가 상황을 변화시키더라도 상황이 이를 거부할 수가 있죠. 그러므로 상황과 심리적 내용 사이의 상관성은 반대로 비상관성을 동시에 지니게 됩니다.
“개체의 이런 자유 때문에 현실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기에 개체의 세계는 단지 개체로부터만 파악될 수 있다. 즉자 대자적으로 표상되는 현실의 개체에 대한 영향은 단지 개체를 통해서 절대적으로 대립된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즉 개체는 영향을 미치는 현실의 흐름을 그 자신에게서 보존되도록 만들거나 아니면 그것을 단절시키고 전도시킨다.”(171쪽)
이처럼 “마땅히 이렇게 영향을 받아야 하는 것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절대적 가능성을 가지고”(171쪽) 있으므로 결국 <상황과 개체의 심리적 내용 사이의 이런 상응관계를 나타내는 심리적 법칙>이란 의미를 상실하게 됩니다.
결국 이 관계를 단순화한다면, 개체가 중심이 됩니다. 개체는 자신을 상황에 표현하고 거꾸로 이 현실로부터 영향을 받죠. 결국 개체와 상황 사이의 법칙이 무너진다는 말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