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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춘 <노자 강의> 비판 7편 / 애매한 한자는 모두 ‘민중’과 관계된다?
‘제(除)’ / 또, 한자 한 글자가 문제다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조심제. 전심무, 창심허.
服文綵, 帶利劍, 厭飮食, 財貨有餘. 복문채, 대리검, 염음식, 재화유여.
是謂 盜夸. 非道也哉! 시위도과. 비도야재!
[기세춘]: 셋째, “조심제朝甚除”의 ‘제除’는 ‘몰아붙이다’는 뜻이므로 ‘조정이 백성을 심히 닦달한다’로 풀이해야 옳다. 그런데 왕필은 ‘제除’를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潔好也)”로 왜곡했다. 우리 학자들은 모두 왕필의 왜곡을 답습하고 있다.
한비자 해로편에서는 “조심제”를 “옥송번獄訟繁”으로 풀이했다. 옥송이 번다하면 전답이 황폐해진다는 것이다. 한비는 노자를 전제專制주의적 정치사상의 기원으로 이용했으므로 억지 해석이 많지만 이 해석은 비슷하다. 감옥과 쟁송이 많다는 것은 조정이 민중을 닦달하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진秦나라 이전 시대의 문서에서 ‘제除’를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로 풀이한 사례는 없다. 이것은 노자의 본의가 아니라 왕필이 의도적으로 지어낸 왜곡이다. ‘제除’라는 글자는 폐陛(섬돌)→거去(제거)→치治(다스림)→구축驅逐(몰아붙이다)→주誅(주벌하다)로 뜻이 확대된 것인데 왕필이 왜곡한 이후부터 ‘결호潔好’의 뜻이 더해졌고 이후 중화대자전中華大字典에도 수록됐다. 그러므로 우리 학자들이 무심코 답습하게 된 것이다. (<노자 강의> p90)
[노바당]: 위에 인용한 <노자> 원문은 <노자> 53장 하단부입니다. 내용은 권력층의 사치와 방탕으로 생산력이 저하되고 결국 나라 재정이 고갈된다는 비판입니다. 여기서도 문제는 ‘제除’ 자, 한 글자입니다. 기씨는 “‘조심제朝甚除’의 ‘제除’는 ‘몰아붙이다”라는 뜻으로, ‘조심제朝甚除’는 ‘조정은 민중을 심히 닦달하니’라고 번역합니다.
기씨 말대로 왕필은 이 ‘제’ 자를 ‘결호야(潔好也)’라고 간단하게 주를 달았습니다. 저는 기씨의 해석도 결과적으로 왕필의 해석과 권력자의 행위를 비판한다는 면에서는 큰 뜻의 차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씨의 해석은 해석의 정도 차이를 넘어선 것이고, 저는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朝, 宮室也. 除, 潔好也. 조, 궁실야. 제, 결호야. (<노자 왕필 주>)
‘조’는 대궐이다. ‘제’는 깨끗하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노바당 역)
기씨는 왕필이 이 ‘제’ 자를 ‘결호야(潔好也)’라고 주를 달은 것을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潔好也)로 왜곡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증거로 한비자의 ‘조심제’ 주석과 <순자>, <주례>에서 단 두 가지의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고전을 살펴본 것처럼 단정지어 말하는 기씨의 글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물론 기씨가 증거로 내세운 문헌의 번역도 실제로 기씨가 번역한대로 그러한 뜻인지 확인해 봐야 합니다.
[기세춘]: “이처럼 진秦나라 이전 시대의 문서에서 ‘제除’를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로 풀이한 사례는 없다. 이것은 노자의 본의가 아니라 왕필이 의도적으로 지어낸 왜곡이다.”
여기서 잠깐 <노자> 19장에 나오는 ‘엮을 속(屬)’ 자를 살펴봅시다. ‘속(屬)’자는 ‘무리’라는 뜻도 있습니다. 기씨는 <노자>에서 ‘속(屬)’자의 의미로 ‘무리’라는 뜻을 택하여 ‘지역 공동체’라고 번역합니다. 저는 기씨의 생각을 코메디로 봅니다. 문법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데다, 기씨 자신의 말이 그런 번역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기씨는 <노자 강의> 4부 ‘유토피아’의 13장 ‘원시 공산사회’라는 장의 각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기세춘]: “속(屬)=지역 공동체. 우리 학자들은 屬이란 글자가 3향 또는 10현을 묶는 지역 공동체의 단위임을 모르고 있다.” (<노자 강의> p218)
기씨는 ‘유토피아’라는 제목 아래 노자가 ‘무위자연’, ‘반문명’, ‘원시 공산사회’, ‘무경쟁 사회’, ‘상벌이 없는 무치 사회’를 지향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위의 기씨 말대로 ‘속(屬)’은 실제로 제나라의 행정단위였습니다. 기씨는 ‘소규모 공동체’라는 제목 아래 ‘제나라의 속(屬)’에 대해 설명하면서, ‘1속의 인구는 약 5만~10만이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노자 강의> p229) 춘추전국시대에 이 정도 인구에 복잡한 행정 단위를 갖춘 도시 국가 규모의 공동체가 노자가 말하는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개짓는 소리와 닭 울음소리가 들리는(<노자> 80장 기세춘 번역)’ 지역 생활공동체일 수는 없습니다.
기씨는 <관자(管子)/ 소광(小匡)> 편에 나오는 제나라의 행정단위의 하나인 ‘속(屬)’ 자의 의미로 <노자>를 설명하는 것인데, 기씨 말대로라면 ‘무정부적 원시 공산사회’를 지향하는 노자가 전제국가인 제나라의 관제(官制)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빌어서 자기 사상을 설명했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노자>에는 사람 이름이나, 지명, 관직과 같은 고유명사가 없다는 것이 다른 고전과는 다른 특징입니다.
저는 한문책을 번역없이 보지 못합니다. 그래도 번역이 이상하거나, 잘 이해되지 않을 때 원문을 찾아 확인해 볼 정도의 능력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원문을 찾으면 그 부분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그 장 전체를 읽어 봅니다. 그래서 기씨가 말한 ‘속(屬)’의 의미도 기씨 말이 맞는가 <관자(管子)/ 소광(小匡)> 편에서 확인해 보고, 기왕 원문을 찾은 김에 <소광(小匡)> 편 전체를 읽어 봤습니다.
<관자(管子)/ 소광(小匡)> 편은 제나라의 환공(齊桓公)이 관자에게 정치를 묻고 답을 듣는 형식의 글입니다. 제환공의 질문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관자(管子)/ 소광(小匡)>
昔先君襄公, 高臺廣池, 湛樂飮酒, 田獵必弋, 不聽國政,
석선군양공, 고대광지, 감락음주, 전렵필익, 불청국정,
卑聖侮士, 唯女是崇, 九妃六嬪, 陳妾數千, 食必梁肉, 衣必文繡, 而戎士冬飢.
비성모사, 유녀시숭, 구비육빈, 진처수천, 식필양육, 의필문수, 이융사동기.
戎馬待游車之弊, 戎士待陳妾之餘. 倡優侏儒在前, 而賢大夫在後.
융마대유거지폐, 융사대진처지여. 창우주유재전, 이현대부재후.
是以國家不日益, 不月長. 吾恐宗廟之不掃除, 社稷之不血食, 敢問爲之奈何?
시이국가불일익, 불월장. 오공종묘지불소제, 사직지불혈식, 감문위지나하?
옛날에 선군이신 양공께서는 높은 대를 쌓고 넓은 못을 만들어 지나치게 술을 마시고 즐겼습니다. 또 갖가지 사냥에 몰두하여 정무를 다스리지 않았습니다.
성인을 비하하고 선비를 무시하며, 오직 여인들만 소중히 여겨 아홉 명의 비와 여섯 명의 빈을 위시하여 늘어선 첩만 수천이었습니다. 늘 고량진미를 먹고 무늬 있는 비단옷을 입었지만, 군사들은 추위에 떨고 굶주렸습니다.
군대의 말은 사냥하고 노닐다가 수레가 부서지기를 기다리고, 군사들은 늘어선 첩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기다렸다가 먹었습니다. 광대와 난장이들이 앞에 서고, 현명한 대부들은 뒤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국가는 나날이 이익을 얻지 못하고, 다달이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과인은 종묘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직에 희생을 드리는 제사를 지내지 못할까 우려되니, 감히 묻건대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야 합니까? (<관자(管子) p318 / 김필수 등 / 소나무)
저는 이 부분이 위에 인용한 <노자> 53장 하단부에 대한 해설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조심제(朝甚除)’의 ‘제(除)’ 자가 나옵니다. 기씨는 ‘제(除)’ 자의 용례를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가 <관자>에서 인용한 ‘속(屬)’ 자의 바로 앞 문장에서 찾아야 했습니다.
吾恐宗廟之不掃除, 社稷之不血食, 오공종묘지불소제, 사직지불혈식,
과인은 종묘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직에 희생을 드리는 제사를 지내지 못할까 우려되니
종묘는 왕의 조상신을 모시는 사당이고, 사직은 땅의 신과 곡물의 신을 모시는 제단을 말합니다. 종묘사직은 국가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여기에 요즘 말로 청소(cleaning)와 비슷한 말인 ‘소제(掃除)/ 쓸 소, 깨끗할 제 ’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직접적 의미는 청소를 잘 해서 깨끗하게 한다는 것이지만 당시에는 궁궐이나 사당을 호화롭게 신축하거나 수리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제환공이 종묘를 깨끗하게 청소할 비용이 없을까봐 관중에게 나라를 부강하게 할 방도를 물은 게 아닙니다.
이렇게 보면‘제(除)’ 자에 대한 왕필의 ‘결호야(潔好也/ 깨끗하고 좋다)’라는 주(注)가 문자 그대로 ‘청소를 잘 해서 깨끗하고 좋다’는 의미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기씨는 “진秦나라 이전 시대의 문서에서 ‘제除’를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로 풀이한 사례는 없다. 이것은 노자의 본의가 아니라 왕필이 의도적으로 지어낸 왜곡이다”라고 말하는데, 보시다시피 <관자>에 그런 용례도 있고, 왕필이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도 아닙니다.
특히 기씨는 왕필에 대해 엄청난 반감을 가지고 있는데 기씨는 왕필에 대해서도, 초기 도교의 성립 과정에 대해서도, <노자>에 대해서도 잘 모르면서 그런 왜곡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씨는 이 뒤의 해설에서 ‘어찌 이런 일이?’라는 제목으로 왕필에 대해 ‘곡학아세의 전형’이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 틀린 얘기입니다.
[기세춘]: “그러나 왕필의 경우는 글자의 뜻을 왜곡하여 전체의 뜻을 반대로 해석한 경우이므로 용납할 수 없다. ‘조심제朝甚除’라는 글을 해석하면서 ‘조정은 심히 백성을 닦달한다’는 본래의 뜻을 버리고, ‘궁궐은 심히 깨끗하다’는 해석을 취한 것은 곡학아세의 전형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왕필의 왜곡이 승리하여 질기고 오랜 수명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노예적 봉건제의 수명이 질기고 길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러나 왕필처럼 해석하면 글 전체의 뜻이 통하지 않는다. 착취가 일반적이던 봉건시대에는 그런 미신과 같은 이야기가 통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궁궐이 깨끗한 것(除)’ 때문에 ‘농민의 논밭이 묵고, 창고가 텅텅 비었다’는 해석은 말이 되지 않는다.” (<노자 강의> p94)
[노바당]: 참고로, 제환공의 말 중에 번역이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원문에서 찾아 확인하다보면 한문 고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부수적으로 약간의 한문 독해 능력도 생깁니다. 물론 한문을 제대로 읽으려면 상당 기간의 전문적 공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이런 전문가들의 고증이나 번역을 바탕으로 고전 자체의 사상을 알고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문적 한문 지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戎馬待游車之弊, 戎士待陳妾之餘.
융마대유거지폐, 융사대진처지여.
군대의 말은 사냥하고 노닐다가 수레가 부서지기를 기다리고, 군사들은 늘어선 첩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기다렸다가 먹었습니다. (<관자> p319)
뒷 문장은 번역이 잘 되어 있는데, 앞 문장의 번역은 잘못된 것으로 대비되어 있는 뒤 문장과 같은 형식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군마는 놀이마차가 부서지기를 기다리고, 군사들은 왕의 첩들이 먹다 남길 것을 기다렸다. (노바당 역)
‘융마(戎馬)’는 직역하면 ‘오랑캐의 말’이지만 ‘군마(軍馬), 병마(兵馬)’를 말합니다. 전선에 나가있어야 할 군마가 놀이마차를 끄는 데 쓰이고 있어서 그 마차가 부서져야 다시 전선으로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선왕의 호색과 방탕한 유희를 비판한 말입니다. <노자> 46장에도 ‘융마(戎馬)’라는 같은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장 맨 끝의 ‘남길 여(餘)’ 자도 <노자> 24장에 ‘여식(餘食/ 남은 음식)’이라는 표현으로 나옵니다.
그건 그렇고 다시 ‘제(除)’ 자로 돌아가 봅시다.
‘제(除)’ 자는, 보통 2가지로 해석합니다. 한 가지는 왕필 식으로 ‘깨끗하다’라고 보는 것입니다. 왕필의 주대로 ‘궁궐이 깨끗하고 좋다’는 말은 백성을 착취하여 ‘궁궐을 호화롭게 신축하고 꾸미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더러울 오(汚)’ 자의 의미로 보는 것이고 앞에서 기씨가 말한 한비자의 해석과 비슷하게 ‘조정이 부패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도 문헌적 근거가 있습니다.
여기 고명, 진고응, 헨릭스의 고증과 번역을 소개합니다.
고명(高明): ‘除’爲‘汚’. ‘제’위‘오’. ‘제(除)’는 ‘더러울 오(汚)’의 뜻이다.
진고응(陳鼓應): 朝政腐敗極了 조정부패극료 나라의 정치가 극히 부패하여
로버트 헨릭스(R. Henricks): The courts are swept very clean.
여기서 보면 중국학자 두 사람은 ‘제(除)’ 자를 ‘더럽다, 부패하다’로, 미국학자인 헨드릭스는 ‘깨끗하다(소제/ 掃除)’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의 한자를 반대되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지만, 전체적인 뜻으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한문 해석의 폭이 넓은 것은 한자 자체의 의미가 중의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로 ‘가차자’로 쓰인 글자가 많고, 빌려 쓴 글자의 뜻이 원래 글자와 차이가 크지 않거나, 문맥상 그 글자의 뜻대로도 의미 연결이 가능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세춘은 그런 가능성은 접어두고 부족한 증거를 가지고 ‘제(除)’ 자는 ‘몰아붙이다’라고 절대적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씨는 “‘제除’라는 글자는 폐陛(섬돌)→거去(제거)→치治(다스림)→구축驅逐(몰아붙이다)→주誅(주벌하다)로 뜻이 확대된 것”이라고 말하는데, \뜻이 확대된 것\이라는 말은 자기의 추측일 뿐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제除’ 자가 ‘가차자(假借字)’로 쓰인 경우가 많아 의미의 차이가 큰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기씨는 ‘구축(驅逐)’이라는 말을 ‘몰아붙이다’라고 번역하는데 ‘구축’은 ‘몰아서 쫓아낸다’는 의미로, ‘몬다’라는 뜻보다 ‘쫓아낸다’는 뜻이 강합니다. 기씨 말대로 ‘제(除)’ 자가 ‘구축(驅逐)’의 의미라면 ‘민중을 닦달’하여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자기 나라에서 쫓아내는 것입니다.
아래에 인용한 글들은 기세춘이 왕필을 비난하는 대표적인 것입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기씨의 말을 평가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노자> 53장이 ‘<노자>가 민중의 저항 사상’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긴 기씨의 엉뚱한 해석이 아니었다면 이해고 오해고 간에 문제가 될 것도 없는 문제였습니다.
[기세춘]: ‘어찌 이런 일이? / 앞부분은 재인용합니다.
“그러나 왕필의 경우는 글자의 뜻을 왜곡하여 전체의 뜻을 반대로 해석한 경우이므로 용납할 수 없다. ‘조심제朝甚除’라는 글을 해석하면서 ‘조정은 심히 백성을 닦달한다’는 본래의 뜻을 버리고, ‘궁궐은 심히 깨끗하다’는 해석을 취한 것은 곡학아세의 전형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왕필의 왜곡이 승리하여 질기고 오랜 수명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노예적 봉건제의 수명이 질기고 길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러나 왕필처럼 해석하면 글 전체의 뜻이 통하지 않는다. 착취가 일반적이던 봉건시대에는 그런 미신과 같은 이야기가 통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궁궐이 깨끗한 것(除)’ 때문에 ‘농민의 논밭이 묵고, 창고가 텅텅 비었다’는 해석은 말이 되지 않는다.
혹자는 나의 해석을 믿지 못하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온 국민이 읽는 『삼국지』에 의하면 유비劉備(161~223)와 조조는 황건적을 토벌하는 정의의 용사요, 영웅이다. 반면 황건적은 나쁜 도둑 떼로 묘사되어 있다.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는데, 그 황건적이 농민군이었으며 그들의 주력은 노자를 따르는 도교 세력이었다는 사실도 새롭거니와 『노자』해석의 전범典範이라 칭송받는 왕필이 조조의 권력을 등에 업고 『노자』를 계획적으로 변질 ․ 왜곡시켰다는 말은 쉽게 믿을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러한 왜곡을 고염무 같은 중국의 저명한 학자가 일찍이 폭로했는데도 우리나라 학자들은 지금까지 왕필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다. 또한 도올이 왕필의 왜곡을 따르면서도 거기에 자본주의식 오역까지 더해 왜곡 ․ 변질시켰다고 하면 도올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믿기지 않을 것이다.” (<노자 강의> p94)
[기세춘]: 저항을 순종으로 왜곡
“조조는 한漢 말 도교 세력이 주축이 된 농민 반란군인 황건적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내 천하를 차지한 사람이다. 그는 일찍이 황건적의 일파로 한중에 정권을 세운 천사도(속칭 오두미교)의 제2교주인의 장로를 높은 관직을 주는 조건으로 투항시켜 정권 쟁탈전에서 그의 지원을 받은 바 있다. 그러므로 도교 세력의 위력을 잘 아는 조조는 정권을 잡은 이후 노장의 반체제적 민중성과 반문명적 저항성을 제거하려고 했다. 한편 도교 지도자들도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는 종교 단체로서 살아남을 수 없음을 알았으므로 이해가 일치했다.
그러나 『노자』를 학문적으로 왜곡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노자의 정통을 이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장자를 능가할 만한 인재가 필요했다. 이때 임무를 받은 이가 하안이다. 그런데 그는 자기의 신분과 천재성만으로는 역부족임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신비스럽고 새로운 천재를 발굴하려 했다. 이에 선택된 것이 왕필이다. 20세기의 천재 왕필은 이에 고무되어 저항적이고 민중적인 노자를 권력 친화적인 내용으로 왜곡하는 데 앞장서게 된 것이다.” (<노자 강의> p 85)
[노바당]: 기씨가 왕필을 증오하는 이유는 왕필이 조조의 지시를 받아 의도적으로 <노자>를 유학화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왕필이 조조의 권력을 등에 업고 『노자』를 계획적으로 변질 ․ 왜곡시켰다’는 말은 기본적 역사적 사실을, 왜곡을 넘어서 자기가 맘대로 지어 내는 것입니다.
앞 편에서도 말했지만 조조는 220년에 죽었고, 왕필은 226년에 태어났습니다. 왕필이 하안을 만난 것은 <노자 주>를 쓴 다음이고, 조조가 죽은 후 20 몇 년이 지났을 때의 일입니다. 기씨는 책 속에서 조조, 하안, 왕필이 출연하는 같은 얘기를 수십 번 합니다. 제가 300페이지 까지 20회 정도 세어 보다 말았지만, 사실도 아닌 이야기를 사람 세뇌시키는 것도 아니고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2008.08.17)
기세춘 <노자 강의> 비판 8편 / 기씨의 <노자> 이해는 모르는 것보다 나쁘다
기세춘이 <노자 강의> 2부에서 <노자>가 ‘민중의 저항 사상’이며, 민란의 성전(聖典)’이라는 주장에 대해 <노자>를 인용한 것이 현행본 53장과 75장, 76장 3개장입니다. 기씨는 제가 앞에서 비판한대로 <노자> 53장에 대해 상당한 분량의 설명을 했지만, 그 핵심은 ‘유시시외(唯施是畏)’의 ‘시(施)’ 자의 의미가 무언가 하는 점입니다. 다시 한 번 기세춘과 도올의 번역을 인용합니다. 이 두 번역은 해석의 차이라고 할 수 없는 간격이 있습니다.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唯施是畏. 사아개연유지, 행어대도, 유시시외.
기세춘: 만일 나에게 조그만 지혜가 있다면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대도大道를 행해 오직 (묶인 것들을) 풀어주는 해방을 공경할 것이다.
김용옥: 나에게 조금만큼의 지혜가 있어서
하늘 아래 큰 길을 행하라고 한다면, 오로지 샛길로 빠질까봐 두려울 뿐이다.
여기에서의 ‘시(施)’ 자를 누구도 100% 확실하게 무슨 뜻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씨의 ‘풀어주다’라는 해석이 ‘<노자>는 민중의 저항사상’이라는 자기의 정의에 맞추기 위한 억지라는 점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세춘은 <노자> 75장과 76장을 인용했지만, 이 장들은 번역만 있고 해설이 없습니다. 이 장들이 기씨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살펴봅시다. 기씨가 자세히 설명한 53장도 사정이 그런 정도인데, 설명도 없는 75장과 76장이 <노자>가 ‘민중의 저항 사상’이라는 증거가 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기세춘과 도올의 번역을 비교해 봅시다.
<노자> 75장
1. 民之飢 以其上食稅之多 是以飢 민지기 이기상식세지다 시이기
2. 民之難治 以其上之有爲 是以難治 민지난치 이기상지유위 시이난치
3. 民之輕死 以其求生之厚 是以輕死 민지경사 이기구생지후 시이경사
4. 夫唯無以生爲者 是賢於貴生 부유무이생위자 시현어귀생
기세춘:
1. 백성이 굶주린다. 윗사람의 봉록과 세금이 많기 때문에 굶주리는 것이다.
2. 백성을 다스리기 어렵다. 윗사람이 반자연적 작위作爲를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3. 백성이 죽음을 가벼이 한다.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기 때문에 죽음을 가벼이 하는 것이다.
4. 무릇 삶을 작위하지 않는 것이 삶을 귀히 하는 것보다 현명하다.
김용옥:
1. 백성이 굶주리는 것은 그 윗사람들이 세금을 너무 받어 쳐먹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굶주리는 것이다.
2. 백성이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 윗사람들이 너무 꾀를 부리기 때문이다.
그러하므로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다.
3. 백성이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그 윗사람들이 너무 그 사는 것을 후하게 구하기 때문이다.
그러하므로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것이다.
4. 대저 오로지 사는 것에 매달려 있지 아니하는 자가 사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자보다 슬기로운 것이다.
위 두 가지 번역은 부분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장 전체의 뜻은 비슷하고 이해하기 어렵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 글의 뜻이 기씨의 번역대로라도 정치를 잘못하고 백성을 착취하는 위정자에 대해 하는 말이지, 어떻게 백성들에게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말이 됩니까? 이 <노자> 75장에는 ‘백성 민(民)’ 자가 3회 나옵니다. 그래서 기씨 본인은 이 글을 읽고 위정자에 대한 저항의식이 생겨났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75장의 결어인 마지막 구절 ‘夫唯無以生爲者 是賢於貴生(부유무이생위자 시현어귀생)’을 보면서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고전에서 ‘백성(민/ 民)이 살기 어렵다‘는 내용만 나오면 자동적으로 ‘민중의 저항’이 연상되는 ‘민중병’입니다.
제 말이 민중에 대한 반동적인 발언입니까? 기씨 번역대로라도 ‘무릇 삶을 작위하지 않는 것이 삶을 귀히 하는 것보다 현명하다’는 말에서 ‘민중의 저항’이라는 냄새가 조금이라도 납니까? 이 말이 ‘그 위사람(기상/ 其上)’에게 한 것이 아니라, ‘그 위사람’에게 착취당하는 백성들에게 한 말입니까?
<노자>는 누구를 대상으로 한 글인가?
저는 <노자>를 누가 읽어보라고 쓰거나 편집한 글인가 하는 문제가 <노자>를 전체적으로 보는 핵심이라고 봅니다. 저는 <노자>를 전통적인 시각, 즉 ‘왕이 정치를 하는 방법 (군인남면지술/君人南面之術)’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일반화하여 얘기 하자면 <노자>는 하나의 사회 시스템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진 자의 권력 사용‘에 대한 책입니다. 그러나 저는 <노자>가 왕의 정치에 대한 조언을 한 책이라는 것은 옳으나, ‘술(術)’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 ‘술(術)’이라는 용어는 <노자> 자체의 의미가 아니라, ‘군은 무위하고, 신은 유위한다’는 한초 황로도가의 정치적 견해에 의한 것입니다.
‘술(術)’이라는 말은 그 ‘술’을 사용하는 사람의 인격적인 면에는 무관하게 어떤 구체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노자>에서는 통치 행위자가 올바른 인격적 태도를 갖추는 것이 기본적 전제입니다. 이러한 인격을 갖춘 이상적 통치자를 노자는 ‘성인(聖人)’이라고 부르고, 그 행위 방식을 ‘무위(無爲)’라고 하는 것입니다. <노자>에 ‘성인’이라는 말이 30회 이상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과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노자>는 ‘제왕학(帝王學)’이라고 부르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노자>의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점은 곽점 <노자>(기원전 300년 경)와 백서 <노자>(기원전 200년 경)가 누구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는가 하는 데에서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곽점 <노자>는 초나라 귀족들의 묘지군에서 발견되었고 ‘동궁지사(東宮之師)’라는 글이 쓰여 있는 술잔도 같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묻힌 사람을 왕자의 선생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백서 <노자>의 경우는 더 확실합니다. 한나라 초 장사지역을 다스리던 대후(軑侯) 이창의 아들 무덤에서 발굴된 것입니다. 마왕퇴 한묘 3호분으로 부르는 이 무덤은 기원전 168년(한문제 12년) 4월 4일 매장되었지만, 여기서 발견된 백서 <노자> 갑, 을본은 이보다 10년에서 30년 이상 이전에 쓰여진 것입니다.
<노자>가 ‘민중의 집단 창작’ 이라구?
게다가 <노자>가 ‘민중의 집단 창작’이며 ‘민중의 저항 사상’이라는 기씨는 이렇게 따질 수 있습니다. 당시 민중들도 <노자>를 봤는데 무덤에 넣지 않았거나, 그 무덤들이 다 없어져서 <노자>를 발견할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또 민중들은 책이 없어서 구전된 <노자>를 일부라도 암송하고 다녔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유머 한번 해본 겁니다. 그런데 기씨는 이렇게 말 합니다.
[기세춘]: <노자>가 기록된 춘추 전국시대는 노예제 사회였다. 당시 민民은 전쟁에 끌려가 죽거나, 부역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하다가 죽거나, 추위에 얼어 죽는 비참한 노예로 사역됐다. 백성들은 하늘을 우러러 원망할 뿐 그들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이러한 때 그들의 절망적 외침을 대변한 것이 <노자>였다.
한마디로 기씨는 노예들이 <노자>의 구절들을 창작했고, 그 구절들을 구전이 되었던, 글로 쓰여 졌던 간에 나중에 노예들 중 어느 누가 모아서 현재 우리가 보는 <노자>의 원 형태를 구성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걸 기씨는 <노자>가 ‘민중들의 집단 창작’이라고 부릅니다. 당시 노예들은 의무 교육도 안 받았을텐데 참으로 똑똑했나 봅니다. 당시 사회가 노예제인지 어땠는지는 각자의 정의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노자>는 민중의 삶을 개선하고, 안정된 사회를 희망하는 책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기씨의 말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노자는 최고 권력자(성인, 후왕, 왕공)의 권력 행사 방법을 바꾸는 것이 민중의 삶을 개선하고, 그 사회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위의 <노자> 53장과 75장이 기씨 말대로 ‘민중의 절망적 외침을 대변한 것’이라고 한다 쳐도, 그것이 바로 ‘민중의 저항사상’이라는 증명이 되는 것입니까? 또 아래에 인용한 <노자> 76장이 ‘민중의 저항 사상’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노자> 76장
1. 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强 인지생야유약 기사야견강
2. 萬物草木之生也柔脆 其死也枯槁 만물초목지생야유취 기사야고고
3. 故堅强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 고견강자사지도 유약자생지도
4. 是以兵强則不勝 木强則兵 시이병강칙불승 목강즉병
5. 强大處下 柔弱處上 강대처하 유약처상
기세춘:
1. 사람의 삶은 부드럽고 여림이요, 죽음은 굳고 강함이다.
2. 만물과 초목도 산 것은 부드럽고 무르며 죽은 것은 굳고 마른다.
3. 그러므로 굳고 강함은 죽음의 무리요, 부드럽고 여린 것은 삶의 무리다.
4. 그러므로 병사가 강하면 이기지 못하고 나무가 강하면 도끼를 맞는다.
5. 뿌리처럼 강대한 것은 아래에 있고 잎새처럼 부드럽고 여린 것은 위에 있다.
김용옥:
1. 사람의 생명은 부드럽고 약하며, 사람의 죽음은 단단하고 강하다.
2. 만가지 것, 풀과 나무는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연한데, 죽으며는 마르고 딱딱해진다.
3. 그러므로 딱딱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다.
4. 그러하므로 군대로써 강하게 하려하면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나무도 강하기만 하면 꺾이는 것이다.
5. 나무에서 딱딱하고 커다란 것은 밑으로 내려가기 마련이고,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위로 올라가게 마련이다.
‘가차자’와 ‘이체자’가 많이 쓰인 고전 한문의 경우 사회적 비판내용을 담은 글이라면 해석의 폭을 넓힌다든지,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민중의 저항’뿐 아니라, ‘민중의 성전’으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노자>에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는 이런 장들이 왕의 억압과 착취가 ‘농민 반란’과 같은 난리를 일으킬 수 있다고 노자가 경고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자>72장
1. 民不畏威 則大威至 민불외위 즉대위지
2. 無狎其所居 無厭其所生 무압기소거 무염기소생
김용옥:
1. 백성들이 다스리는 자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결국 가장 두려운 것이 오고야 만다.
2. 백성이 사는 곳을 들들 볶지 마라! 백성이 사는 것을 지겹게 느끼지 않게 하라!
위 원문에서 ‘위엄 위(威)’ 자는 지금은 ‘권위(權威)’, ‘위엄(威嚴)’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지만, 고전에서는 ‘두려워할 외(畏)’ 자와 같은 뜻으로도 씁니다. 그래서 도올의 번역 중 뒤 구절의 ‘위(威)’ 자가 ‘두려운 것’이라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현행본 <노자> 72장에 나오는 2개의 ‘위(威)’ 자가 마왕퇴 백서 <노자>에는 아예 ‘외(畏)\ 자로 돼 있습니다. (일부 현대한자로 바꾼 것임)
1. 民之不畏畏 則大畏將至矣 민지불외외 즉대외장지의 (백서 <노자>)
1. 백성들이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크게 두려운 것이 올 것이다. (노바당 직역)
전제 왕국에서 통치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대체로 자기의 죽음, 권세있는 신하들의 하극상, 농민 반란과 같은 것입니다. 백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이 지나치면 굶어 죽으나 맞아죽으나 마찬가지인 백성들이 통치자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통치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농민 반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진(秦)나라 말의 진승, 오광의 농민반란이나, 한나라 말의 황건적의 난 등이 대표적입니다. 위 구절에서 도올이 ‘가장 두려운 것’이라고 번역한 ‘대위(大威)’가 바로 ‘민’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농민 반란’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진고응과 헨드릭스의 번역을 소개합니다.
진고응:
1. 人民不畏懼統治者的威壓, 則更大的禍亂就要發生了.
인민불외구통치자적위압, 즉갱대적화란취요발생료.
1. 백성들이 통치자의 권위와 억압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엄청난 재난이나 반란이 일어날 수 있다. (노바당 역)
로버트 헨릭스:
1. When the people don\t respect those in power, then what they greatly fear is about to arrive.
1. 민중들이 권세있는 자들을 존경하지 않게 되면, 그들이 크게 두려워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노바당 역)
제가 위에서 도올의 번역만 소개하고 기세춘의 번역을 쓰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대위(大威)’의 ‘위(威)’ 자를 ‘권위’라고만 알고 있는 기씨는 도올이나 위의 학자들과 전혀 다른 의미로 번역을 했기 때문입니다.
기세춘:
1. 민民이 상벌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그제야 위대한 권위를 이룬 것이니
2. 세속의 생활을 홀대하지도 않고, 생령을 억압하지도 않는다.
기씨의 번역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는 분이 있습니까? ‘상벌’이니, ‘위대한 권위’니, ‘생령’이니 하는 말들이 이 간단한 문장의 번역에 동원되는 것이 온당합니까? 기씨는 ‘위대한 권위’가 바로 ‘농민 반란’이나 ‘노예 반란’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씨가 72장의 이 구절을 ‘<노자>는 민중의 저항사상’이라는 <노자 강의> 2부에 인용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렇게 주장할 수 없을 겁니다.
또 다른 예인 <노자> 74장를 봅시다. 특히 이 장은 ‘단장취의’하면 의미가 정반대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먼저 도올과 기세춘의 번역을 비교해 봅시다.
<노자> 74장
1. 民不畏死 奈何以死懼之 민불외사 나하이사구지
2. 若使民常畏死而爲奇者 吾得執而殺之 孰敢 약사민상외사이위기자 오득집이살지 숙감
3. 常有司殺者殺 상유사살자살
김용옥:
1. 백성들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죽음으로 그들을 두렵게 할 수 있겠는가?
2. 만약 백성으로 하여금 죽음을 두려워하게 하는데도 이상한 짓을 하는 놈이 있다면 나는 그놈을 붙잡어서 죽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누가 그를 죽일 수 있을 것인가?
3. 항상 죽임을 관장하는 자가 있으니 죽인다면 그가 죽여야 할 것이다.
기세춘:
1. 민民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죽인다 한들 어찌 민民을 두렵게 하겠는가?
2. 만약 민民이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도록 한다면 그래서 우리와 다른 자들을 잡아 죽인다면 누가 감히 우리를 범할 수 있겠는가?
3. 그러나 자연의 상도만이 죽음을 맡은 자이므로 죽일 수 있다.
2번 구절에 대한 도올의 번역은 맞고 틀리고를 떠나 의미가 명료한 데, 기세춘의 번역은 ‘우리’가 누군지, ‘다른 자’는 왜 나온 건지, 그리고 뭘 말하려는 건지 통 알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봐 왔지만 이런 한글 문장들이 ‘의미가 통하고 말이 된다’는 기씨 번역의 실태입니다.
‘吾得執而殺之(오득집이살지) 孰敢(숙감)’의 문장에서 ‘오득집이살지’까지만 인용하면 ‘내가 잡아 죽일 것이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숙감’까지 연결하여 인용하면 ‘내가 죽일 수 없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고전 한문을 인용하여 설명하는 글의 뜻이 애매하거나, 이상하면 시간이 걸려도 전체 원문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노자> 72장과 74장은 기세춘의 <노자 강의> 4부 ‘유토피아’, 15장 ‘상벌이 없는 무치사회’에 인용된 것입니다. 저는 이 장들이 왜 이런 제목 아래에 인용된 것인지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기의 번역에다 원문에 있지도 않은 ‘상벌’이니 ‘반상벌’이니 하는 말만 많이 적어 넣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72장과 74장 전문에 대한 두 사람 번역을 비교해 보십시오.
<노자>72장
1. 民不畏威 則大威至 민불외위 즉대위지
2. 無狎其所居 無厭其所生 무압기소거 무염기소생
3. 夫唯不厭 是以不厭 부유불염 시이불염
4. 是以聖人 自知不自見 自愛不自貴 시이성인 자지불자현 자애불자귀
5. 故去彼取此 고거피취차
기세춘:
1. 민民이 상벌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그제야 위대한 권위를 이룬 것이니
2. 세속의 생활을 홀대하지도 않고, 생령을 억압하지도 않는다.
3. 순순히 억압받지 않으므로 억압하지 못한다(저항).
4. 이로써 무위자연의 성인은 자기를 알고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며(반상벌)
자기를 아끼지만 스스로를 높이지 않는다(반상벌).
5. 그러므로 상벌의 구속을 버리고, 자유로운 생명을 취하는 것이다.
김용옥:
1. 백성들이 다스리는 자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결국 가장 두려운 것이 오고야 만다.
2. 백성이 사는 곳을 들들 볶지 마라! 백성이 사는 것을 지겹게 느끼지 않게 하라!
3. 다스리는 자들이 자기삶을 지겹게 느끼지 말아야 백성들도 자기삶을 지겹게 느끼지 않는 법이다.
4. 그러하므로 성스러운 사람은 자기를 알면서도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자기를 아끼면서도 스스로를 높이지 않는다.
5.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노자> 74장
1. 民不畏死 奈何以死懼之 민불외사 나하이사구지
2. 若使民常畏死而爲奇者 吾得執而殺之 孰敢 약사민상외사이위기자 오득집이살지 숙감
3. 常有司殺者殺 夫代司殺者殺 是謂代大匠? 상유사살자살 부대사살자살 시위대대장착
4. 夫代大匠?者 希有不傷其手矣 부대대장착자 희유불상기수의
기세춘:
1. 민民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죽인다 한들 어찌 민民을 두렵게 하겠는가?
2. 만약 민民이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도록 한다면 그래서 우리와 다른 자들을 잡아 죽인다면 누가 감히 우리를 범할 수 있겠는가?
3. 그러나 자연의 상도만이 죽음을 맡은 자이므로 죽일 수 있다.
사람이 자연을 대신해서 죽인다면 이는 목수를 대신하여 깎는 격이다.
4. 대저 목수를 대신해서 깎는다면 자기 손을 상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
[김용옥]:
1. 백성들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죽음으로 그들을 두렵게 할 수 있겠는가?
2. 만약 백성으로 하여금 죽음을 두려워하게 하는데도 이상한 짓을 하는 놈이 있다면 나는 그놈을 붙잡어서 죽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누가 그를 죽일 수 있을 것인가?
3. 항상 죽임을 관장하는 자가 있으니 죽인다면 그가 죽어야 할 것이다.
대저 죽임을 관장하는 자를 대신해서 죽이는 것을 일컬어 목수를 대신해서 자귀질을 한다고 한다.
4. 목수를 대신해서 자귀질을 하는 사람치고 그 손을 다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
(2008.08.24)
기세춘 <노자 강의> 비판(1편~8편) /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