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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현상학 주석 (18)-양심과 영웅
이병창 2020.03.24 65
정신 현상학 주석 C 절 도덕성(18)-양심과 영웅


1) 양심과 영웅

순수한 양심은 심정의 순수성 속에 머무르려 하며, 결과적으로는 어떤 행동도 기피한 채 자신이 행동할 수 있는 이상적 세계에 대해 동경합니다. 이것이 앞의 절에서 설명된 내용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양심을 구체적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개체가 등장합니다. 이 양심은 구체적인 도덕법칙이고 또 그것을 실현하는 자아는 개체적 자아입니다. 여기서 개체적 자아는 순수 자아와 욕망이 구별되지 않는 상태입니다.


순수한 양심은 이런 행동하는 자아에 대해 대립합니다. 왜냐하면 순수한 양심에서 볼 때 자신의 구체적 도덕 법칙은 양심이고 반면 행동하는 자아의 구체적 도덕 법칙은 의심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행동하는 자아의 행동이란 구체적 현실에 개입하는 것이므로 항상 그의 행동은 그의 욕망이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이게 됩니다. 순수한 양심은 자신은 순수한 상태에 머무르므로 자신은 순수 자아라고 간주하죠.


여기서 순수 양심과 행동하는 자아의 대립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것은 양심의 내부에서 일어난 대립입니다. 양심의 한 측면은 자신의 순수성을 고집하며, 반면 양심의 또 한 측면은 행동을 추구하죠. 이런 양심이 지닌 두 측면의 대립이 현실에서는 순수 양심과 행동하는 자아의 대립으로 나타나게 되죠.


“그의 순수한 자아는 공허한 인식으로 내용과 규정을 결여한 것이다. 자아가 그런 인식에 부여하는 내용은 개별적이고 규정된 것으로서의 자아에서, 즉 자연적인 개체성으로서의 자신에서 나온 것이다.”


“자아는 그의 행동의 양심성에 대해 말할 때에는 사실 순수한 자아를 의식한다. 그런데 그의 행동이 추구하는 실제 내용 즉 목적 속에서는 자아는 이 개별적인 특수한 개체를 의식한다. 자아는 자신의 것과 타인의 것이 지닌 대립을 의식한다. 다시 말하자면 일반성 또는 의무와 의무로부터 반성된 것[자아]의 대립을 의식한다.”


2) 행동하는 자아와 역사적 영웅

여기서 다루어진 순수 양심과 행동하는 자아의 대립은 역사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가장 가깝게는 역사를 보는 지식인과 정치인의 대립이죠. 지식인은 항상 행위의 목적이 순수한가를 우선적으로 고려합니다. 반면 정치인은 실제로 행동하는 것을 강조하죠. 전자는 대체로 행위에 나가지 않고 말하는 것에 그칩니다. 반면 후자는 실제 행동을 위해 현실을 고려하며 그러다 보니 그의 행위가 개인적 욕망에서 나온 것인지 양심을 실현하기 위한 것인지 모호하게 되죠.


이런 정치인의 대표적인 예가 역사적 영웅입니다. 역사적 영웅은 행동하는 자아입니다. 그런데 그런 영웅의 행동은 자주 그 순수성이 의심받습니다. 그의 행위가 개인적 욕망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양심을 현실에 실현하기 위한 것인지 모호하죠. 그 결과 자주 순수 양심을 대변하는 지식인은 역사적 영웅을 오해하고 그를 비난합니다.


이에 대한 단적인 예가 베토벤과 나폴레옹의 관계입니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이 농민에게 토지를 분배하면서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교향곡 영웅을 작성했었죠. 하지만 나폴레옹이 황제에 등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교향곡을 찢어버립니다. 반면 헤겔은 이런 나폴레옹에 대해 마상의 세계정신이라고 평가하면서 그를 세계사적 영웅으로 간주했습니다. 베토벤과 헤겔은 나폴레옹의 행위가 가진 두 가지 측면을 서로 다르게 파악한 거죠.


3) 행동하는 자아, 역사적 영웅의 위선

이어서 헤겔은 순수 양심과 행동하는 자아, 영웅을 비판적으로 서술합니다. 먼저 헤겔은 역사적 영웅을 사이비 영웅으로 비판합니다. 이 사이비 영웅이란 곧 개인적 목적을 일반적 도덕 법칙 아래서 수행하는 자입니다. 실제 행위의 경우 대부분 행동하는 양심은 이런 개인적 목적을 수행하는 것에 지나지 않죠.


이 경우 그의 목적인 일반적 법칙과 그의 행위인 개별적 자아가 부등하기 때문에 헤겔은 이를 악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영웅은 자기는 의무를 즉 일반 도덕 법칙을 수행한 것으로 주장하니, 사실 이는 하나의 위선이죠.


헤겔은 이런 위선은 스스로 폭로되고 만다고 합니다. ①영웅이 의무를 존중한다는 가상을 취함으로써 “타인을 속일 뿐만 아니라 자신조차도 속이면서”, 자신이 도덕적이라고 증명한다면 그런 가운데 영웅은 자기가 내적인 동등성 즉 선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헤겔은 이런 영웅의 위선은 이미 그 자체로 난파된다고 말합니다.


“그는 오히려 즉자적인 것[의무]을 대타적 존재[마스크]로 사용하는 속에 오히려 그 즉자적인 것 대한 경멸이 포함되어 있고 자신의 비본질성을 모두에게 드러내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②영웅이 위와 같이 의식적으로 위장하지 않고 자신이 진정으로 일반적 도덕 법칙을 위해 행위 한 것으로 믿는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하다고 헤겔은 비판합니다. 왜냐하면 순수 양심은 영웅의 주장을 믿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수 양심이 볼 때 이런 영웅의 현실에 개입하면서 이미 오염되고 타락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의 의식이 의무의 의식을 부인하면서 의무 의식이 악으로 간주한 것을 내적인 법칙 또는 양심에 따른 행동으로 주장한다면, 이런 동등성에 대한 일방적인 단언 속에 여전히 의무의 의식과 부등성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이런 단언은 의무의 의식을 믿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③ 나가서 영웅은 자신을 악으로서 즉 자기의 목적인 개인적인 목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선을 회복한 것일까요? 이 경우 그는 적어도 자기를 솔직하게 고백했으니 자기 동등성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헤겔은 이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목적 자체가 불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선이라 할 수는 없는 거죠.


“자신의 법칙과 양심에 따라 타인에게 대립하는 행위를 한다고 누가 말한다면, 그는 사실상 이 타인을 괴롭힌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헤겔은 세 가지로 영웅의 의식을 비판합니다. 영웅은 자기의 목적을 위장하더라도, 자기 스스로 믿더라도, 그리고 솔직하게 고백하더라도, 결국 선을 행한 것은 아니라는 거죠.


4) 순수 양심의 위선

이어서 헤겔은 소위 순수 양심도 비판합니다. 순수 양심은 영웅의 위선을 폭로하고 해체했다고 하지만 그 스스로 위선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순수 양심으로서 믿고 있는 도덕 법칙 역시 구체적인 도덕 법칙이니, 실제 그가 양심적이라고 믿는 일반적 도덕 법칙은 아니죠. 따라서 영웅이 자신의 특정한 도덕 법칙을 일반적인 도덕 법칙이라 믿는 위선을 범한 것과 똑같은 위선을 범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일반적 의식[양심]이 위선에 반대하면서 악하고 비열한 것이라고 외칠 때, 그는 그의 판단에서 그 자신의 법칙에 의존한다. 그것은 악한 의식이 자신의 법칙에 의존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일반적 의식의 법칙은 이 악한 의식의 법칙에 대립하여 등장하므로 특수한 법칙으로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반적 의식은 다른 의식에 비해 우선적인 것은 없으며, 오히려 이 악한 의식을 정당화한다.”


순수 양심은 결국 스스로 위선을 범함으로써 영웅의 위선을 시인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헤겔은 순수 양심은 영웅적 의식보다 뛰어난 점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순수 양심은 자기 스스로 위선을 범함으로써 이런 양심과 영웅, 즉자적 도덕 법칙과 행동하는 자아 사이의 대립을 해소하기 때문입니다.


순수 양심은 행동하는 영웅에 대립하여 자신의 순수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행동에 개입하려 하지 않으려 하면서 결국 그의 일반적 도덕 법칙은 사유에 머무르고 말죠. 하지만 그는 이런 순수성 때문에 자신의 우월감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행동하는 양심 즉 영웅의 위선을 폭로하죠. 헤겔은 이런 순수 양심을 평가하는 의식이라 합니다.


“일반적 의식은 사상의 일반성에 머무르면서 파악하는 자[Auffassend]로서의 태도를 취한다. 그의 최초 행위는 다만 판단이다.”


하지만 그 스스로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위선을 범하게 됩니다. 즉 구체적인 특정 법칙을 일반적 법칙으로 주장하죠. 그러기에 그는 위선적 영웅과 같은 처지에 있게 됩니다. 순수 양심은 이를 통해 자기가 이 위선적 영웅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인식하기에 이르게 되죠. 그 결과 양심은 자기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일반적 의식은 비난되었던 자와 같은 상태에 있다. 즉 일반적 의식은 의무를 다만 말속에서만 설정한다는 것이다.


행동하는 영웅은 이기적인 목적을 일반적 목적으로 말로 기만하며, 순수 양심은 행동하지 않고 말하는 가운데 자신을 순수하다고 주장합니다.


“양자 모두에서 현실의 측면은 말로부터 똑같이 구분된다. 전자에게서는 행위의 이기적인 목적을 통해서 후자에서는 행위가 일반적으로 결여함에 의해서 구분된다. 이런 행위의 필연성은 의무의 언어 자체에 존재한다. 왜냐하면 의무란 행위가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이가 있죠. 행동하는 영웅은 자신의 위선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반면 순수 양심은 자기의 위선을 자각하게 되죠. 이런 자각으로부터 이제 새로운 정신이 출현하게 됩니다. 헤겔은 이어서 이 새로운 정신의 출현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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