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자유게시판
졸역 <한글사서-대학, 논어..>의 옮긴이의 말입니다.
석동신 2005.06.22 3078
# 다음은 제가 올 2월에 출간한 <한글로 읽는 사서>에 실린 <옮긴이의 말>입니다.

<한글 사서>를 출판하게 된 이유와 특히 기독교 비판의 의도가 잘 서술되었다고 여겨져서 올리니 한번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중국 송대의 주희가『사서』 운동을 편 지 약 천여 년 만에『사서』가 순 우리말로 처음으로 번역된 것은 새 천 년을 맞은 한국인들에게 큰 의미를 지닌 일이라 하겠다. 이것은 신화적 상상력을 중심으로 하는 서양의 기독교가 이 땅에 전래된 지 이백여 년 만에 크게 번성하여 한국인의 정신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오늘날, 우리 민족 정체성의 한 부분을 차지해 온 유교가 새로운 발전을 모색하는 과정에 있어 본서가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는 신념에 근거한 것이다.

옮긴이의 눈에는, 송대의 주희가『사서』 운동을 일으킬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나 오늘날 한국의 시대적 상황은 별로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많은 한국인들은 여전히 합리적 이성과 건전한 상식에 바탕한 건강한 삶보다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고달프고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 생의 위안을 얻기 위해 기독교가 제공해 주는 초월적 상상력에 전적으로 자신들의 삶을 내맡기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옮긴이는 기독교, 불교 등의 종교적 삶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신화적 환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근거하여 사유를 전개한 유교에 주목하게 되었다. 즉 신화적 상상력이 끝나는 바로 그 지점을 출발점으로 하여, 비록 봉건적 세계관에 안주하고 있긴 하지만, 신이 아닌 인간을 중심으로 한 인본주의적 세계관의 대광맥이 유교에 녹아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이백여 년 전 서양에서 새로 수입된 종교인 기독교는 봉건시대의 통치 이념으로서의 사명을 담당한 유교의 새로운 대안으로서 한국 민중들에게는 열렬한 환영의 대상이었다. 기독교와 함께 자유, 평등, 인권, 민주주의, 개인주의 등 서양의 보편적 가치가 잇달아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원래 무지와 맹신에 기반한 신화론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는 바, 한국사회에 수입되자마자 곧바로 그 역기능을 드러내게 되었는데 이를 적어 보면 다음과 같은 점들이 될 것이다.

첫째, 이스라엘의 신 야베(여호와)가 우주 만물을 육 일 만에 말로 창조하였으며, 인간의 생사화복은 물론 인류의 역사를 섭리한다고 믿는다.

둘째, 유대 땅에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가 인생의 교훈을 주고 온갖 기적을 행하며 살다가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었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였으며, 승천한 예수가 하늘 보좌의 신 오른 편에 앉아 있다가 종말에 인류를 심판하러 재림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하여 예수를 메시아로 믿은 이들은 천국에 가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모두 지옥에 가서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셋째, 인간 및 세계의 구원은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고 하며, 예수를 완전한 신인 동시에 완전한 인간으로 믿는다.

넷째, 기독교의 소위『성서』(히브리신화)만이 진리라고 믿으면서 일체의 다른 종교나 사상을 배척한다.

다섯째, 현실을 긍정하기보다는 부정 내지 죄악시하면서 맹목적으로 내세를 추구하며, 인간을 오로지 신의 은총만을 바라는 신의 종속물로 여긴다.

이러한 반이성적 신화론적 세계관에 근거한 기독교의 기본교리는 그 독단성, 배타성, 분파성으로 인해 한국사회를 크게 분열・퇴보시키고, 현실을 도외시한 채 저 세상에만 인생의 희망을 걸도록 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옮긴이는 유교의 중심 경전인『사서』의 ‘비판적 읽기’를 통해 역으로 기독교의 대안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는 참으로 역사의 진전에 따른 역설적이면서도 필연적인 시대의 요청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에는 세 가지의 걸림돌이 있었다. 즉『사서』가 어려운 한문으로 되어 있어, 한문을 그대로 둔 채로는 아무리 훌륭한 해석 및 해설을 덧붙인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대중화할 수 없다는 점, 각 권으로 분산 출간되어 한꺼번에 보기가 어렵다는 점, 그리고 유교가 봉건시대의 지배이념으로 고착되면서 공자의 기본사상이 일정 부분 왜곡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먼저 옮긴이는『사서』를 한문을 배제한 채, 순 한글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아울러 어려운 편명 대신 숫자를 사용하여 찾아보기 쉽게 하였고, 문단마다 소제목을 붙여 그 문단을 이해하기 편리하도록 하였으며, 주석도 최대한 짧게 하여 독자가 직접 본문을 읽고 본문에 대하여 스스로 사고하도록 유도하였다. 또『사서』 각 권을 한 권으로 묶어 전체를 보기 쉽게 하였다. 그리고 예컨대 ‘충’(忠)을 문맥에 따라 ‘진실・성심・성실・충성’ 등으로 번역하는 등 공자 본래의 마음을 좇아, 특히『논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초등학교 아동이든 칠순 할머니이든지 간에 누구든 한글만 깨우친 사람이면, 기독교의『성서』처럼『사서』를 쉽게 읽도록 하자. 그래서 고매했던 우리 조상들의 삶의 태도를 되새겨보고 이를 발전적으로 계승할 수 있도록,『사서』에서 시대를 초월한 삶의 지침이 될 만한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재발견해 보자.’ 이것이 옮긴이의 진정한 바람이다. 뜻하지 않는 수많은 도전이 예상되는 21세기를 살아갈 한국의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어, 그들이 정신적 자양분을 풍요롭게 살찌우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본 역서가 원본으로 삼은 책은 다음과 같다.
『사서집주』(주희, 강동서국, 타이완, 1913)
『십삼경주소』(정현 외, 국제문화출판공사, 타이완, 1996)

번역의 원칙은 축자적 번역이나 형식적인 일치를 피하고, 내용의 동등성을 취하여 원문을 읽는 사람과 같은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문을 현대의 한국어로 옮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번역은 그 동안의 노력의 결과를 우선 발표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정도로 불완전하고 미비한 점이 많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일반 독자들과 학계의 비판을 충분히 받아들여 가며 더 깎고 다듬어 더 훌륭한 번역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

빠른 시일 내에 대역본은 물론『오경』부분도 합본하여 한 권으로 출간할 것을 약속하면서,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지도와 성원을 부탁드린다.

본 역서는 국내 선배 학자들의 치열하고도 성실한 학문적 성과가 없었다면, 결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옮긴이는 국내의 여러『사서』 각 권 주석서들을 두루 참조했음을 밝혀 둔다(참고문헌은 지면관계상 생략했으니 양해를 바랍니다). 그리고 본서의 감수를 흔쾌히 허락하신 <사단법인 충효례문화연구소>의 유덕조 박사님께서 옮긴이의 번역 원고를 직접 읽어 보시고, 오역을 많이 바로잡아 주셨다. 특히『논어』의 공부에 있어, 옮긴이가 먼저 의미나 구문이 의심나는 구절에 대해 이러저러한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해 박사님께서 대답하시는 방식으로 강의가 진행되었는데, 이는 옮긴이에게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격으로 크나큰 행운이었다고 여겨진다. 또 번역의 원칙과 유교의 사상사적 큰 흐름에 대해 말씀해 주셔서, 천학비재인 옮긴이가 본서를 번역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음을 밝힌다. 박사님께 진심으로 엎드려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성균관 대학교 유학과의 이기동 교수님께서도 본서에 큰 관심을 가져 주시고, 사진 자료 및 연표 등을 제공해 주셨다.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끝으로 국내의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출판을 흔쾌히 허락해 주신 도서출판 ‘다시’의 전윤호 대표님과 편집부의 심상미 과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단기 4337(2004). 10. 25.

한밭 궁동에서

옮긴이 석동신(昔東信
0 개의 댓글
(댓글을 남기시려면 사이트에 로그인 해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