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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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6; 노르트담 드 파리
이병창 2015.08.22 94
4월 22일 오전 노트르담 성당

아침을 마치자 8시 경, 우리는 바로 앞에 있는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갔다. 파리의 지하철은 우리 1호선처럼 비좁고 지저분하고 축축했다. 어떤 식으로 표를 끊나, 어디서 내려야 하나, 몇 호선을 타야 하나, 한참이나 어리둥절한 끝에 우리는 10장짜리 표를 사서 5장씩 나누어가졌다. 하루 종일 파리를 돌아다니려면 그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전철 안에 보이는 모습은 서울이나 파리나 유사했다. 여자들의 머리칼에서 샴푸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노선표를 한참 들여다 본다. 이 전철을 타고 우리는 노트르담 성당으로 갈 예정이었다. 우리가 있었던 몽마르트 지역이 19세기 말에 해당된다면, 우리는 프랑스가 형성되던 시기 12-16세기로 이동한다. 누추한 파리 지하철은 과거로 가는 시간 여행을 위해서 안성맞춤이다.

지하철은 빛의 속도로 우리를 16세기로 옮겨 놓았다. 하지만 지하철이 우리를 노트르담 성당으로 바로 내려놓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탄 지하철은 우리의 인내를 시험해 보는 듯 루브르 박물관과 두 블록이 떨어진 상젤리제 클레망소 역에 내려주었다. 어디선가 지하철을 갈아타야 했지만 그걸 놓친 우리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세느 강 근처만 가면 된다고 해서 내린 역이 바로 이 역이다. 거기서 우리는 세느 강을 따라서 루브르 박물관까지 걸어가려 했다.

우리는 상젤리제 클레망소 역에서 내려 세느 강을 따라 걸었다. 세느 강 변에는 아름드리 나무들로 강변 숲을 조성해 놓았다. 4월 말 파리의 아침 공기는 차갑고 가벼웠다. 우리는 콩코드 광장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고 한 숨 쉬기로 했다. 광장은 마치 여의도 광장처럼 넓었지만 텅 비어 있었다. 한 가운데 이집트 왕이 프랑스 왕에게 선물했다는 그 유명한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내가 홍 교수에게 물었다. 왜 하필이면 이름이 ‘콩코드’이지? ‘콩코드(concord)’란 화합을 의미한다. 이 광장이 프랑스 혁명 때에 시민이 모여들었던 광장이다. 이 광장에 기요틴이 설치되었고,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가 처단되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혁명 광장’이라고 해야 하지 않았을까? 내가 말하자, 홍 교수가 이렇게 답한다.

“무릇 모든 이름은 그 반대로 이해하면 된다네! 이름에 ‘원조’가 들어가면 원조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지. 이름에 ‘좌파’가 많이 들어간 정당일수록 사실은 우파라나! 가장 독재적이고 가장 부패한 정당이 이름은 ‘민주정의당’이라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반대로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진짜 의미가 ‘혁명’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한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 무엇이겠나? 이 광장을 ‘화합’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함께 시시덕거리며 웃다가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노트르담 성당의 탑이 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그까지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멀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다행히 지하철 표는 버스 표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버스는 한강 가운데 있는 여의도 섬처럼 세느 강 가운데 있는 시테 섬으로 건너가는 퐁네프 다리를 거쳐 갔다.

드디어 우리가 목표로 한 노트르담 성당에 이르렀다. 버스에서 내려 노트르담 성당으로 다가가자 심장이 두근거린다. 성당 앞의 작은 광장에 서니, 영화 <노트르담의 곱추>의 첫 장면이 떠오른다. 이 광장에서 붉은 집시의 옷을 입은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육감적인 춤을 추었다. 나는 혹시나 하고 광장을 둘러보았으나, 광장에는 수학여행을 온 초등학생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직 아침이라 관광객도 뜸했다.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은 최근 <노트르담 드 파리>라는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나는 이 뮤지컬을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마침 유투브에 올린 프랑스공연 녹화물이 있기에 본 적이 있다. 이 뮤지컬은 원작을 현대화 했다. 원작에 나오는 거지와 집시를 현재 이주민으로 변형시켰다.

전체 줄거리는 영화와 유사했지만(유감스럽게도 나는 아직까지 소설을 직접 읽지는 못했다),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영화에서는 성당에 숨은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를 거지와 집시 집단이 공격하고, 이들의 공격이 성공해 에스메랄다가 죽자, 피버스가 이끄는 왕의 군대가 거지와 집시 집단을 학살한다. 반면 뮤지컬에서는 거지와 집시가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를 옹호하면서 피버스의 왕의 군대에 대항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나로서는 영화의 설정이 현실을 더 리얼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성당을 바라보았다. 두 개의 탑을 받치고 있는 아름다운 세 개의 아치, 탑과 탑 사이의 장미창을 보면 너무나 아름답다. 사람들은 왜 이 아름다운 성당을 고딕 성당으로 규정하는지 알 수 없다. ‘고딕’이란 로마를 침범하여 문명 세계를 불 지른 고트족의 야만성을 암시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성당의 주변을 돌아보면, 왜 고딕이라고 하는지 금방 이해된다. 십자가처럼 긴 성당의 좌우 벽에는 벽을 받치는 날개(플라잉 버트레스)가 뻗어 있어 그 모습만 본다면 무슨 흉측한 괴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마침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선생님을 따라 성당에 들어가기에 우리도 꽁무니에 붙어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고딕 성당의 아름다움은 안에 들어가 보아야 한다. 고딕 성당은 밖의 플라잉 버트레스 덕분에 벽체에 창문을 낼 수 있어, 커다란 창문을 가지고 있다. 이 창문에는 색유리로 성화가 그려져 있다. 밖에서 들어오는 빛에 비추면 이 창문 위로 아름다운 빛의 오케스트라가 펼쳐진다.

고딕 성당의 핵심은 바로 이 빛이다. 노트르담 성당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12세기 후반이다. 이 시기 유럽에는 로마 멸망 후 암흑기를 지나 지중해 무역이 다시 살아났다. 이를 바탕으로 상인 자본이 발전하고, 왕은 상인에게 특혜를 베풀면서 왕권이 성장하기 시작한다. 이런 왕권을 뒷받침해준 것이 바로 성당이다. 이들은 힘을 합쳐 로마 가톨릭을 배경으로 하는 신성로마제국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힘으로 건설한 것이 바로 고딕성당이다.

이 시기 이슬람을 통해 유럽에 아리스토텔레스의 합리적인 철학이 도입된다. 역사는 이를 제1의 르네상스라고 말한다. 우리가 아는 15세기의 르네상스는 제2의 르네상스이다. 바로 이런 합리적 철학을 상징하는 것이 빛이다.

나는 성당 안에서 두리번거렸다. 영화를 보면(아마 위고의 원작에도 나오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성당의 어느 벽에 ‘ananke’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리스어로 숙명이라는 뜻이다. 나는 궁금했다. 정말 이 글자가 새겨져 있는 걸까? 아니면 위고가 소설을 위해 만든 허구일까?

그렇다면 에스메랄다와 콰지모도의 이야기 자체도 위고의 상상력의 산물이란 말일까? 위고는 이 노트르담 성당을 보고 어떻게 해서 콰지모도라는 인물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우리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노트르담 성당을 소개하는 사진첩을 보면 노트르담 사원의 지붕 곳곳에는 짐승의 형상을 한 괴물의 조각상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위고는 이 조각상을 보고 콰지모도라는 인물을 창조한 것일까?

생각해 보니 이상하다. 신을 섬기는 성당에 왜 괴물이 올라 앉아 있는 것일까? 이 괴물은 신을 지키는 무서운 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신이 정복한 게르만족의 우상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괴물 역시 콰지모도처럼 비록 추한 모습이지만 마음만은 신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존재일까? 아니면 플로로 대주교의 비틀어진 추한 마음을 상징하는 것일까? 이 많은 의문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답도 내릴 수 없었다.

영화를 보면 마녀로 화형 당하게 된 에스메랄다를 콰지모도가 구해 데리고 온 곳이 종탑이다. 거기서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가 자신의 진심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것에 절망해서 머리를 종에 부딪친다. 이 소리가 음악이 되어 성당 안에 울린다. 에스메랄다는 이 종소리를 들으면서 비로소 콰지모도의 진심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성당의 종탑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는데, 성당 안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런 길은 보이지도 않는다. 어떤 여행기를 보면 종탑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고도 했는데, 이상하게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폐쇄해 버린 것일까? 노트르담 성당을 나오니, 이제 밖은 따뜻한 봄기운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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