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자유게시판
진보평론 31호(2007년 봄호) 발간
진보평론 2007.03.21 3020
진보평론 31호(2007년 봄호)

진보평론 31호는 특별호로 들뢰즈․가타리 특집만으로 구성하였다. 국내 들뢰즈․기타리 연구자 15명이 필자로 참여한 이번 특별호는 국내 들뢰즈․가타리 연구의 현 주소를 알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신국판 376쪽 가격 13,000원

목  차
우연한 마주침, 필연의 길(편집자의 글)
특집Ⅰ 철학  내재성과 생성의 존재론
질 들뢰즈의 ‘바깥의 존재론:‘존재-정치철학’의 모색을 위하여(김명주)
들뢰즈와 스피노자: 무한의 사유(박기순)
창조와 공간: 하나, 둘, 셋의 존재론(이지훈)
내재성의 편에 서겠는가, 아니면 화형당하는 편에 서겠는가?: 들뢰즈의 악몽(이정희)
들뢰즈, 웃음, 도가(신지영)

특집Ⅱ 이론  욕망이론과 분자혁명
󰡔안티-오이디푸스󰡕, 정신분석 비판을 위하여(박정수)
들뢰즈의 욕망이론:라깡적 관점에서의 비판적 고찰(홍준기)
분자혁명에서 생태철학으로:펠릭스 가타리의 사상 추이(윤수종)
특집Ⅲ 현실  현실과의 마주침
들뢰즈와 현실(유재홍)
개인들이 일제히 발포하기 위해서는 총사령관이 꼭 필요한가?(김재인)
맑스와 들뢰즈의 마주침(박영균)

특집Ⅳ 실천  욕망의 미시정치와 되기
노마디즘과 이동의 문제(이진경)
얼굴해체, 혹은 ‘사랑’(정명중)
들뢰즈․가타리의 욕망의 미시정치와 여성주의(연효숙)
여성이 될 것인가? 여성-되기를 할 것인가?(민진영)

보론
들뢰즈·가타리 문헌목록(윤수종)
들뢰즈·가타리 용어설명(윤수종)


1990년대 초중반 소련을 비롯한 현실 사회주의권이 몰락하던 그 시절, 맑스의 이름으로 행해졌던 한국의 좌파운동은 알튀세, 푸코를 거쳐 들뢰즈·가타리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우연한 마주침’은 프랑스적인 것과의 만남이 만들어낸 두 번의 결정적 계기를 통해 이루어졌다. 한 번은 한국의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알뛰세-발리바르로 대표되는 프랑스 맑스주의가 수행한 역할이며, 다른 한 번은 현실 사회주의권의 몰락 과정에서 리오타르와 푸코가 수행한 해체적 역할이다. 전자는 ‘자본주의’라는 보편성과 ‘신식민지’라는 특수성의 결합이라는 전통적인 맑스적 사회구성체를 한국에 적용하는 과정(‘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에서, 후자는 맑스주의를 거대 담론으로, 경제 환원론적인 이론으로 단죄하고 해체하는 과정(‘포스트모더니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맑스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이 두 번의 우연한 마주침과 그 마주침 속에서 이루어진 프랑스적인 것의 역할은, 그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제외하고 전혀 다른 효과를 낳았다.
이 두 번의 마주침은 한국의 맑스주의 역사로 볼 때 전혀 다른 사회․정치적 맥락 위에 놓여 있었으며, 그 전혀 다른 맥락은 그 두 번의 마주침을 아주 상반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첫 번째 마주침은 70년대의 관제화된 맑스주의에서 ‘혁명적인’ 맑스주의로, 이른바 그 혁명성이라는 것이 ‘정통’이라는 대표성에 의해 규정되었던 맑스주의 안에서 여타의 비맑스적 민족주의와 다양한 사회민주적 조류들을 세척하는 잣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신식민지성’과 관련하여 민족주의가 맺고 있는 은밀한 동맹을 해체하는 역할(‘독점강화 종속심화’ 테제)을 수행하였다. 따라서 이것은 맑스주의의 ‘정체성’=동일성을 확립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두 번째 마주침은 이와 같은 ‘정체성=동일성’ 안에서 규정되었던 맑스주의를 해체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두 번째 마주침은 ‘탈현대성’의 논의 지반 위에서 맑스주의의 근대성을 해체하고자 했으며 노동 중심성과 적대적 모순의 이론으로서의 맑스주의를 시효 만료된 이론으로 해체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이 두 번의 마주침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것은 겉으로 보이는 현상에 불과하다. 맑스주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 두 번의 ‘마주침’이 그려내는 궤적의 결과는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 두 번의 ‘마주침’이 만들어가는 향로는 ‘우연’적이지 않다. 그것은 마치 ‘필연’을 창출하듯이, 아니면 그럴 수밖에 없는 내적 필연성이 있기라도 하다는 듯이, 어느 한 방향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러했다. 하나는 ‘스탈린주의의 극복과 해체’라는 과제 위에서 움직여 왔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논의 지평의 변동, 즉 정치경제학에서 철학으로의 지반 변경을 함축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알뛰세-발리바르의 논의에서부터 스탈린주의는 이미 극복의 대상이 되어 있었으며 이런 측면에서 이후 소비에트적 철학 공식=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틀의 해체는 이런 ‘만남’이 불러일으키는 잠재적인 방향이었다. 따라서 정치경제학에서 철학으로의 지각 변동은 필연적이었다. 이 ‘우연한’ 마주침, 프랑스 국적이라는 점을 제외하고 그 어떤 공통점도 없어 보이는, 심지어 전혀 상반된 효과를 가졌던 두 번의 마주침―전자는 맑스주의의 정체성을 강고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후자는 맑스주의를 해체하는 마주침―은 어느 하나의 방향을 내재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달리 말하면 맑스주의적 정체성의 해체와 새로운 실천의 지평을 여는 것이었다.
맑스와 프랑스적인 것의 마주침은 맑스주의에 전혀 다른 지형을 창출하였다. 그 지형은 독일적인 것에서 프랑스적인 것으로, 헤겔-맑스에서 니체-스피노자-맑스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이런 전환은 단순히 이론적인 맥락에서만 진행된 것이 아니다. 이런 이론적 전환 뒤에는 우리가 호흡하고 살아가는 이 시대가 가진 특수한 성격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혁명의 퇴조’와 ‘자본의 공세’이다. 그것은 비단 한국만의 특징이 아니었다. 그것은 21세기 초엽에 놓여 있는 오늘날 세계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현실 사회주의권이 와해되었고 전지구적 자본의 공세가 본격화되었으며 한국 내적으로는 ‘위로부터의 수동혁명’이 진행되었다. 좌파 운동의 고립과 사상적 정체성의 와해가 잇따랐다. ‘정통’을 물질적으로 뒷받침했던 현실 사회주의권의 몰락은 맑스적 사상의 정체성 와해와 더불어 80년대식의 맑스주의가 강고하게 가두었던 공백과 균열의 틈을 열어놓았다. 그 벌어진 틈새에서 알뛰세-발리바르의 맑스주의와 라클라우와 무페식의 급진 민주적 전략과 리오타르를 비롯한 ‘해체’와 푸코의 근대성에 대한 탐구와 전복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캉 및 데리다와, 들뢰즈·가타리와 맑스의 마주침이 이루어졌다.
1980년대 운동의 트라우마(상흔)는 이런 틈새에서 이루어지는 맑스와 들뢰즈·가타리, 맑스와 라캉, 맑스와 데리다의 마주침을 가속화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맑스(주의)는 80년대 운동의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했다.(80년대의 ‘트라우마’는 지사적인 운동과 자기 헌신을 강요했던 조직 운동의 폐해가 낳은 결과이기도 했다. 80년대의 엄혹했던 군부독재와의 대립은 극한적 상황이 강요하는 극한적 투쟁을 낳았다. 극한적 투쟁은 ‘현장으로의 투신’과 대아를 위한 소아의 희생을 낳았으며 조직-‘지령체제’ 속에서 자기 스스로 억제해야 했거나 억압할 수밖에 없었던 욕망과 가치들에 대한 상처의 흔적을 남겼다. 어떤 정치적 자유도 없는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 비밀스런 조직 활동은 조직의 보위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런 조직 활동은 개인들을 지배하는 ‘전체적 권력’이 되었다.) 80년대 운동의 트라우마를 형성한 것은 이른바 ‘정통’ 맑스주의를 대표했던 ‘소비에트 철학=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거대한 지식 권력이었다. ‘이성의 화신으로서 당’이라는 스탈린주의는 ‘전체주의적’ 권력이 되어 우리의 운동을 지배했었다.
이론적으로 보면 80년대의 맑스, 아니 맑스주의 자체는 끊임없이 ‘과학적 사회주의’를 이야기하면서 재현의 철학에서, 현실적인 것에서 가능성을 찾았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소박한 경험론으로 퇴화하거나 모사론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 개념적인 동일성에 포착되지 않는 것을 배제하거나 부정하였다. 맑스주의는 노동자-자본가(노자) 모순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폭발과 자본의 외부를 모색하였다. 여기서 노자 모순은 상호 적대적으로 대립했지만 결국 자본의 동일성으로 환원되는 모순이었다. 자본은 노동력 없이 자본주의일 수 없으며 노동력은 자신을 자본에 팔지 않는 이상, 생존할 수 없다. 노자 모순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역동성과 반역의 가능성’을 찾아다녔던 맑스주의는 이렇게 동일성으로 귀환할 수밖에 없는, 그리하여 자본이 만들어내는 ‘등가적인 것으로 양화되어 등질화-상품화되는’ 노동자에게 과다한 혁명성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노동자 스스로 이 양화의 관계, 상품화되는 자본의 세계로 기어들어간다는 점이다. 노동자는 자본과의 관계에서 노동자로 호명된다! 서구에서 그것은 복지국가와 함께 왔으며 한국에서 그것은 ‘87년 민주혁명’ 이후 진행된 ‘위로부터의 수동혁명’과 함께 왔다. 게다가 소비 자본주의의 발전은 소비자(노동자)들의 욕망을 자본의 체계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들은 말한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8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가 본 맑스(맑스주의)는 이 수렴의 과정 속에서 무능했다. 그러면서도 맑스주의자는 언젠가 도래할 가능성으로서 혁명을 기다렸다. 현상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전도되거나 세뇌된 것일 뿐이며 그 본질에서는 노자간의 적대성이 살아 숨 쉬고 있다고 강변하였다. 노동자의 투쟁을 보라. 그들은 다시 일어난다. 그러나 이런 노자의 단순한 적대성은 다양하게 포섭되고 분절되며 자본의 등질화로 묶여 들어가면서 코드화되는 사태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맑스주의자들은 진보적인 역사의 진화 속에서 언젠가 도래할 ‘메시아’를 기다렸다. 미래의 그 순간은, 역사의 진화적 순간이 멈추어 서는 그 순간은 도래하지 않았다. 선형적인 시간으로서 미래는 영원히 지연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노동자들은 혁명을 생산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이기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노자간의 계약적 관계로 끊임없이 회귀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관료화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갈등, 어느새 지배계급을 닮아가는 노조관료들…….
‘정통’ 맑스주의에서 현실은 과학의 출발점이다. 그것도 토대 모순으로 포착된 정치경제학적 운동이 현실적인 것이며 유물론이며 ‘과학’이었다. 따라서 그것에 포착되지 않는 것들은 배제되었다. 좌파 운동은 이와 같은 모순의 철학 속에서 다른 모든 타자의 운동을, 노자 모순으로 환원되지 않는 타자의 운동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고 자본 주체의 노자 운동으로 환원하였다. 여기서 탈각된 것은 노자 간의 적대적 모순으로 포착되지 않는 타자들의 운동이었다. 그것은 긍정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부정’과 ‘결핍’의 대상이다. 자본의 동일성 안으로 포획되지 않는 다양한 투쟁은 그 타자의 시각 속에서도 주변화 되었다. 자본에 의해서, 그리고 또 혁명을 꿈꾸는 자에 의해서도 그 타자의 운동은 주변화 되었다.
이처럼 자본의 전일적 지배와 일상의 포획, 그리고 80년대의 맑스주의 운동이 낳았던 또 다른 동일성의 폭력, 이성의 전제적 지배! 그것은 전혀 다른 것이지만 이상하리만치 닮아 있다. 그것은 동시적이면서도 비동시적이었다. 유럽에서 유럽인이 접하는 자본주의와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자본주의는 ‘세계화’의 전체성 안에서 작동한다. 나치즘의 광기가 오늘날 우리에게는 박정희의 개발독재와 파시즘이라는 과거로, 그 광기에 대항했던 동일한 적대적 운동의 해체와 재편을, 유럽인이 60년대에 경험했던 그것을, 우리는 오늘날 경험하고 있다. 그때의 운동은 적이 분명했으며 그 적을 향한 가시적인 대항의 선이 그려졌고, 그 적대의 선을 향해 모든 운동이 모여들었다. 그것은 양항의 극단적인 대립이 분명했던 ‘모순’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과거였던 운동이자 우리의 과거였던 운동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그럼에도 더 전체적이고 다양하게 우리의 일상을 파고드는 총체적인 지배 안에서 흡수되고 있다.
더 이상 권력은 거시적이지 않으며 대립은 적대의 단일한 선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미시적인 생체권력으로 작동하는 이 일상의 흡수 속에서 과거의 운동은 무능했으며 이 무능의 배후에는 이성적 동일성으로 존재의 세계를 전체화했던 맑스주의적 억압이 있었다. 운동은 언제나 피곤하고 힘들었다! 출구가 없어 보이는 그곳에는 이성적 지배의 자기동일성과 전체성이 있었다. 80년대의 냉철한 이성은 독단적인 근대적 이성이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육체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감시와 통제를 내면화하였다. 그 이성은 우리의 욕망과 감정, 정서를 재단하고 우리의 삶을 일상이 아니라 노동과 자본의 적대적 모순이라는 거대 권력의 동일성 안으로 몰아넣었다. 푸코는 이 세계의 독단과 권력, 지식과 권력의 연계 효과를 폭로하면서 미시적으로 작동하는 생체 권력의 촉수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봉쇄된 출구! 그러나 그때 들뢰즈·가타리는 우리에게 어떤 길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전혀 다른 존재론 위에서 현재의 운동을 좀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사유하도록 만들었다.
한국의 90년대와 프랑스의 68혁명이 겹쳐지는 곳에서 드러나는 것은 한국 맑스주의 운동의 무능이며 이 무능을 생산하는 자기 동일성과 전체성의 구획이다. 무능과 억압은 동일한 근원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여기서 80년대가 남긴 트라우마가 함께 있었다. 들뢰즈·가타리는 이 틈새를 파고들면서 80년대의 트라우마에 기생하는 해체와 더불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우리의 ‘봄’을 틀어 놓았다. 그들은 이 무능과 억압을 ‘차이를 억압하는 동일성의 철학’-‘재현의 철학’에서 찾았고 차이를 가두는 동일성을 해체할 뿐만 아니라 차이를 역능의 생산, 잠재성의 분출로 바꾸어 놓았다. ‘해체’는 ‘차이’에 대한 긍정, 무-의미에 대한 긍정, 카오스에 대한 긍정으로 전환되었다!
맑스와 들뢰즈·가타리의 ‘우연적 마주침’은, 그 마주침을 통해서 새로운 ‘생성’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생성’되기 위해서는 되돌아오는 ‘메아리’가 아니라 서로의 울림이 부딪쳐 함께 서로를 향해 울어주는 ‘공명’이 되어야 한다. 80년대의 트라우마는 이 공명의 시작이었으며 들뢰즈·가타리가 제시하는 차이와 횡단의 철학이 지닌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개방’은 서로를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되었다. 그것은 80년대의 맑스주의가 자신의 정체성 안에서 박탈하거나 배제했던 다른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나아가 들뢰즈·가타리가 제시한 새로운 실천방식은 80년대 ‘정통’ 맑스주의가 억압하거나 은폐해 왔던 ‘차이들’, 다양한 소수자의 탈주, 대중의 보이지 않는 은밀한 되기들, 색다른 운동의 등장과 연결망을 주목하도록 한다. 이른바 대립과 부정을 통해서 파악해 왔던 변증법적 마술, 동일성으로 환원시키는 그 숨 막히는 반타자성을 벗어나, 모든 존재자가 아우성치는 존재의 함성을 우리에게 들려주도록 했다.
여기에 실린 15편의 글들은 우연한 마주침의 실존적 결과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노동자들이, 살아있는 ‘맑스들’이 읽기에는 난해한 글들이 많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라도 시작해야 할 것을. 물론 이미 시작되었고 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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