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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세상읽기] 큰 도둑이 작은 도둑을 나무라면
이순웅 2010.01.18 1234
* {미디어스} 25번째 글, 전호근 선생님의 글입니다.

큰 도둑이 작은 도둑을 나무라면  
[철학으로 세상읽기]

2010년 01월 17일 (일) 21:40:44 전호근(민족의학연구원 상임연구원)  webmaster@mediaus.co.kr  


너나 잘 하세요

노나라의 실질적인 통치자였던 계강자가 어느 날 공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백성들이 도둑질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도둑질하지 않으면 설사 상을 준다 해도 백성들이 도둑질하지 않을 게요.”

계강자로서는 참으로 어이없었겠지만 공자가 이렇게 불친절하게 대답한 데는 까닭이 있다.

계강자는 본디 계환자의 아들로 후계자의 자리를 이어 받았지만 그 방법이 정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자가 보기에 계강자는 부정한 방법으로 남의 자리를 빼앗은 큰 도둑이었다. 그런 그가 백성들의 작은 도둑질을 다스리려고 하니 백성들이 따를 리 없다.

결국 공자는 정통성이 없는 권력은 백성들의 승복을 얻어낼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는 이웃 위나라의 임금이 공자를 초빙하여 정치를 맡기려 했을 때 도리어 그 임금의 잘못된 처사를 바로잡으려 한 데서도 드러난다. 이야기의 처음과 끝은 이렇다.

위나라 영공의 부인은 남자라는 여자였는데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것을 부끄러워한 태자 괴외는 자신의 어머니였던 그녀를 죽이려 하다가 아버지 영공에게 발각되어 다른 나라로 도망했다. 영공이 죽은 뒤 괴외의 아들이었던 첩이 임금이 되었는데 도망했던 아버지 괴외가 위나라로 돌아오려고 하자 그것을 막았다.

이 때 마침 공자의 제자 자로가 첩의 신하로 있었다. 첩은 자로를 통해 공자에게 위나라의 정치를 담당하게 되면 먼저 무엇부터 할 것인지를 물었다. 공자의 대답은 ‘반드시 명분부터 바로 잡겠다’는 것이었다. 자로는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하려다가는 위나라 임금의 초빙이 취소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선생님, 참 답답하십니다. 그런 건 무엇 하러 바로 잡으려 하십니까?”

“자로야. 모르면 잠자코 있어라. 명분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예악이 일어나지 않고 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꼭 맞게 시행되지 못하고 형벌이 꼭 맞게 시행되지 못하면 백성들은 손발 둘 곳이 없게 된다.”

군주의 말은 단지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마디 한마디가 국정을 판단하는 결정적인 지표다. 예악과 형벌도 나라를 다스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통치수단이다. 그런데 공자는 명분이 바로서지 않으면 이런 통치수단이 모두 제 기능을 잃어버리는 부정적인 연쇄반응이 일어난다고 본 것이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면

도대체 명분이 뭐길래 그것이 바로 서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 둘 곳이 없어진다고 했을까?

명분의 명(名)은 ‘명칭’이고, 분(分)은 그 명칭이 담고 있는 ‘몫’이다. 곧 명분이란 어떤 명칭을 가진 존재가 그 존재의 몫에 걸맞게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공자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임금이 되어서는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가 되어서는 신하다워야 하며 어버이가 되어서는 어버이다워야 하고 자식이 되어서는 자식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

흔히 이 대목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각자 자기 할 일을 잘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경우가 많지만 맥락을 제대로 알고 보면 사실상 한 사람을 두고 한 말이다. 곧 사람들이 관계 속에서 각자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는 상대적 의미가 아니라 한 사람이 어떤 자리에 있건 그 자리에서 자기가 해야 할 마땅한 도리를 실천해야 한다는 절대적이고도 강력한 도덕적 요청이다.

실제로 이렇게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주나라 문왕이다. 《대학》에는 문왕을 두고 “군주가 되었을 때에는 백성들을 사랑했고, 신하의 처지에서는 군주를 공경했고, 자식으로서는 어버이에게 효도했고, 부모가 되어서는 자식에게 인자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맹자에 따르면 문왕은 천하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었으면서도 무력을 사용하여 천하를 통일하려고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용 사냥터를 백성들에게 개방하여 백성들과 이익을 함께 나누었다고 한다. 문왕은 이런 공적 때문에 백성들에게 ‘죽어서도 잊혀지지 않는 임금’으로 칭송받는다. 문왕의 시호인 문은 문덕(文德)을 의미한다. 문덕은 말할 것도 없이 무력(武力)의 반대말이다.

이처럼 문왕은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힘에 의존하지 않고 덕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올바른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명분은 통치자 자신이 군주답기도 하고, 신하답기도 하며, 어버이답기도 하고 자식답기도 할 때 얻어진다.

그런데 노나라의 계강자는 그런 사람이 못되었다. 그런 그가 나라를 다스리면서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노나라의 부용국이었던 전유가 명령에 따르지 않자 정벌하려 했다. 공자는 그런 처사를 두고 “멀리 있는 이가 복종하지 않으면 덕을 닦아서 오게 해야지 전쟁을 일으키려 해서는 안 된다.”고 질책했다.

사실 계강자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사용하려 했던 것은 올바른 명분을 잃어버린 처지로서는 백성들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물리적 강제력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밖으로는 전쟁을 일으키고 안으로는 백성들을 가혹하게 처벌하는 강압 통치는 예부터 명분을 잃은 폭군들이 상투적으로 이용하는 수단이었다.

어머니를 죽이려 했던 위나라의 괴외나 아버지의 입국을 막은 첩은 모두 임금 자격이 없는 자들임은 분명하다. 또 남의 자리를 빼앗은 계강자 또한 통치자로서 올바른 명분을 잃은 자들이다.

명분을 잃은 자들은 정치적 의사를 결정할 때 설득이나 타협을 하려하지 않는다. 설득이나 타협을 하려해도 상대가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큰 도둑이 작은 도둑을 나무란다고 해서 작은 도둑이 수긍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런 자들은 대체로 형벌과 강제 따위의 물리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강압 통치를 자행한다. 물론 나라의 번영을 위해서라는 그럴싸한 포장도 빠뜨리지 않는다.

촛불 폭력 진압과 용산 살인 진압을 저지르고도 반성이라곤 전연 하지 않고 신년 국정연설에서 선진국 운운하면서 장밋빛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지금 이 나라 정권의 모습과 어쩌면 그리도 닮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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