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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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헤겔로 이성의 방랑
이병창 2015.09.09 94
다시 헤겔로 5 9월 8일; 방랑하는 이성

1)이성의 모험
이성이란 나와 타자의 일치로서 보편적인 자기의식입니다. 나와 타자의 이런 일치는 나와 대상 사이의 관계에도 반영됩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헤겔에게서 주체와 타자 사이의 이런 관계는 거꾸로 대상과 나 사이의 관계에서도 투영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할 수 있죠. 내가 자기의식(주체)인 것과 마찬가지로 대상도 자기의식적인 존재(실체)입니다. 나의 배후에 있는 주체가 보편적인 자기의식(보편적 주체)인 것과 마찬가지로 대상의 배후에 있는 존재도 보편적인 자기의식(보편적인 실체)입니다.


물론 이런 자기의식은 형식적인 측면에 한정되죠. 이성의 단계에서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나와 타자는 대립하고 따라서 나와 대상도 서로 대립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어요. 여기서 나 자신에게 있어서 두 측면, 다시 말해서 보편적인 주체(형식)와 나 자신의 구체적 의식(내용으로서 자의적인 욕망) 사이의 관계는 직접적입니다. 즉 보편적 주체는 나 자신의 구체적인 의식의 배후에 감추어져 있을 뿐이거나, 공허한 내용이 없는 형식으로서만 출현하게 되죠. 마찬가지로 이성의 눈에는 대상의 구체적 내용은 그것의 배후에 있는 대상의 보편적인 실체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죠. 즉 일반적 실체는 대상의 배후에 감추어져 있거나 대상의 공허한 형식으로서만 출현한다는 말입니다.

이성의 운동은 우선 ‘관찰하는 이성’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 이성은 자연을 관찰하죠. 그런데 이성에게 자연이란 자기에게 외적인 것입니다. 경험적으로 출현하는 것에 불과하죠. 이성에게 이 자연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낯선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성은 이런 외적인 것에서 그 배후에 있는 보편적인 실체를 발견하려 하죠. 이성의 관심은 단순히 경험적으로 주어지는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라 이런 일반적 실체를 파악한다는 사실 때문에 경험(감각, 지각)으로부터 시작하더라도 그런 경험 자체에 만족을 얻으려는 의식의 단계(감각, 지각)와는 구분됩니다.

이성이 경험으로부터 시작하지만 일반적 실체를 지향한다는 헤겔의 주장은 근대 자연과학의 입장을 연상시킵니다. 근대 자연과학자들이 자연을 관찰할 때 단순히 자연의 구체적 대상들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자연과학자들은 자연 속에서 오히려 신의 존재를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신의 존재는 자연을 지배하는 보편적인 실체라고 하겠습니다.

2)기억과 서술 및 지각 그리고 오성
자연을 지배하는 일반적 실체를 파악하려는 자연과학자의 방법론은 간단합니다. 그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것을 찾아내는 것이죠. 이런 객관성은 한편으로는 자기의 주관적인 경험을 부정하면서 객관적 실재에 도달했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이런 객관성 자체는 결국 인정으로서의 객관성에 불과하죠. 이런 인정은 일정한 사회에 제약된 사람들의 인정에 불과합니다. 이런 인정을 통해서는 경험의 주관성을 결코 넘어설 수 없죠. 이런 인정으로서 객관성을 넘어서 자연 자체의 객관성 즉 자연의 실체성이 확인되는 경우에야 비로소 이성은 자기의 목표인 객관적 실재, 일반적 실체에 도달하게 되죠.

관찰하는 이성은 처음 감각에 충실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런 감각이 “이미 스스로 규정된 것”(sich schon bestimmt) 즉 주관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죠. 그러므로 이런 감각적인 것은 관찰로서 간주되지 않죠. 관찰된 것이 되려면 적어도 ‘일반적인 것Allgemeines’ 즉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관찰은 감각적 경험에서 지각으로 이행하죠. 이런 지각은 여러 단계를 걸쳐서 전개됩니다. 우선은 단순한 ‘기억’이죠. 이 기억은 일회적인 것을 의식 속에서 반복하는 겁니다. 그 다음 단계는 ‘서술’입니다. 이런 서술은 언어 속에서 일회적인 것을 고정시키죠. 이 언어는 일반성을 지니므로, 서술은 이미 감각을 넘어서 지각으로 이행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서술은 두 가지 상반된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한편으로는 여러 대상을 하나로 묶는 일반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하나의 대상을 그 성질에 따라서 무수하게 구별하는 개별화가 일어나죠. 이런 서술을 통해 한편으로 자연의 무한한 풍요가 드러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연은 혼란 그 자체가 되고 맙니다.

이처럼 어떤 대상, 어떤 측면에 서술이 머무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런 서술을 통해서는 아무리 해도 자연이 감추고 있는 일반적 실체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서술은 본격적으로 오성의 단계로 이행합니다. 이런 오성의 단계에서 지각적인 일반성 가운데 사물 자체의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이 구별됩니다. 비본질적인 것은 주관적인 것에 그치고 본질적인 것이 사물 자체에 속하는 것이 됩니다.

이런 본질적인 것은 한편으로 사물에 대해 우리가 인식하는 징표가 되죠. 동시에 그 징표는 사물 자체가 지니는 고유한(fuer sich) 것이 되니, 사물 자체의 일반적 실체, 객관적 실재에 이르려는 이성으로서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3)비유기체적 존재의 본성
그러나 헤겔은 사물의 고유한 징표, 본질을 찾아내려는 운동이 불가피하게 실패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원래 사물 자체(비유기체적인 사물)에 그런 고유한 본질이란 상대적으로만 존재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적인 사물 속에서 본성이란 자연의 끝없이 변화의 힘 앞에서 소멸하기 마련입니다. 그 결과 비유기체적인 사물은 서로 분명하게 구별되지 않죠. 사물과 사물 사이에는 수많은 중간단계의 사물들이 존재합니다. 사물과 사물을 구분하는 것은 우리의 주관적인 구분에 지나지 않죠.

“고정된 존재(ruhende Sein; 본성)와 관계 속의 존재(Sein im Verhaltnisse; 가변성)는 서로 갈등Streit하며, 사물의 고정된 존재는 사물의 관계 속의 존재와 서로 다르다. 이때 그에 반해서 개체는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다.”(141쪽)

(헤겔은 개체란 이처럼 자기동일성을 가질 수 있는 존재에게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유기체만 개체라 할 수 있어요. 반면 비유기체적인 존재는 고정된 존재가 지속하지 않으므로 개체화도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여기 있는 돌멩이는 저기 있는 돌멩이와 비교해서 수적으로 구별되기는 하지만 결코 개체는 아닙니다.)

이 구절에서 헤겔은 유기체적 개체만이 고정된 존재를 지속적으로 가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고유한 본질이 지속적으로 존재하게 될 때 헤겔은 실체라고 합니다. 헤겔에게서 이런 실체는 생명체의 단계에 와서 가능합니다. 이렇게 생명체가 실체성을 가지게 되면서 생명체에게서 본성(곧 종차)이란 이제 단순히 대상을 인식하기 위한 징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상 자체의 본성으로 규정됩니다. 여기서 대상의 일반적 실체를 인식하려는 이성은 자신의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되죠.

이런 유기체에 비해 볼 때 비유기체적 사물은 ‘일반성’과 ‘규정성’ 을 동시에 갖는다 합니다. 여기서 규정성이란 사물이 가진 고유성을 의미합니다. 일반성이란 사물이 사물로서 일반적으로 가지는 것이고 따라서 다른 사물과 공통된 것을 말합니다. 이런 일반성은 규정성의 뒤섞임을 야기하죠. 그러므로 헤겔은 이렇게 말하죠.

“왜냐하면 징표 즉 일반적 규정성이란 대립된 것, 즉 규정성과 즉자적인 일반성의 통일이다. 그러므로 이런 통일은 이런 대립 속에서 서로 대립되어야 한다. 이제 한편으로 규정성이 일반적인 것을 이기게 된다면, 반면 다른 한편으로 일반적인 것은 규정성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반적인 것은 규정성을 그 한계로까지 밀고 나가서 그곳에서 그 구별된 것들과 본성적인 것들을 뒤섞어 버린다.”(141쪽)

그 결과 비유기체의 구분 원리는 주관적인 것으로 그칩니다. 하나의 원리에 따라 서로 구분되거나 결합된 것은 다른 원리에 따르면 이와 다르게 서로 결합되거나 구분되게 되죠. 비유기체적 사물이 어떤 원리에 따라 구분되면 반드시 그것을 혼란시키는 중간적인 예가 등장하게 되죠.

4)오성의 힘의 법칙
자연의 보편적 실체를 찾으려는 이성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제 이성은 오성의 단계에서 힘의 법칙을 발견하게 됩니다.

헤겔은 사물을 규정하는 하나의 본성적 규정이 무너지는 것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파악합니다. 헤겔은 이 의미를 이렇게 이해합니다. 하나의 본성적 규정이 다른 반대의 규정으로 이행한다는 것이죠. 즉 “P이면 Q이고, 거꾸로 Q이면 P라는 관계”가 성립한다는 겁니다. 이런 관계, 이행의 관계, 나아가서 상호 이행의 관계가 곧 자연의 법칙적 관계입니다. 헤겔은 이 경우 ‘고정된 존재’가 ‘자기내로 반성하는 운동의 소멸하는 계기’로 된다거나, ‘대자적fuer sich’가 ‘대립된 것’으로 이행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이행, 상호이행이 일어나면 그것이 곧 자연의 법칙이 되죠.

헤겔은 이런 법칙의 단계에서 이미 보편적 실체가 암시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런 보편적 실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성은 탐구를 멈추지 말아야 하죠. 이성에게서 이 법칙은 주관적인 것이거나 자의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성은 객관적인 경험, 누구나 인정하는 것을 요구하니까요. 이 객관적 경험을 통해 내용을 채우고자 하는 것이 이성의 운동입니다. 그래서 이성은 이 법칙을 자연 속에서 발견하려 합니다. 그 법칙은 의식에 대해서 ‘현재적인 것gegenwaertige이고 현실적인 것Wirkliche’ 으로서 나타나야 합니다. 즉 ‘사물성이나 감각적 존재의 방식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거죠.

“일반적으로 타당한 것은 또한 일반적으로 존립해야 한다. 있어야 하는 것은 또한 사실상 있다.”(142쪽) “여기서 이성의 본능은...관념속의 사물에 의해서나, ...가설적인 것에 의해서나 영원히 당위에 머무르는 모든 다른 비가시적인 것에 의해서 오류에 빠지면 안 된다.”(142쪽)

그러나 경험을 통해 법칙을 발견하면서 이런 경험을 확장하면 할수록 법칙 자체는 경험적인 사물에 의존하는 것을 떠나서 순수한 법칙이 됩니다. 헤겔은 순수한 법칙의 출현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선 예를 들어 낙하의 법칙을 보죠.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자연 속에 이런 저런 돌멩이가 지상으로 낙하하는 것을 보죠. 그래서 낙하의 법칙을 세웁니다. 그러나 이성은 이런 낙하의 법칙이 경험적으로 발견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이성은 자연 자체의 보편적 실체를 발견하려는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필연성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서는 아무리 많은 실험을 거치더라도 개연성이나 유추밖에는 얻을 수가 없죠. 유추나 개연성은 법칙의 필연성과 대립됩니다. 개연성이 많다고 해서 개연성이 적다는 것보다 낫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필연성 앞에서는 ‘오십 보 백 보’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그러므로 이런 개연성이나 유추를 통해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법칙에 도달할 수가 없죠.

“그러나 이성의 법칙은 사실상 그런 법칙(경험을 통한 개연적 법칙)을 진리로 간주하며 ..사상 자체의 진리를 개연성으로 격하시킨다.”(143쪽)

5)일반 법칙에서 힘으로

이런 필연적 법칙에 도달하기 위해 이성은 이제 하나의 법칙을 근본적인 원리로터 즉 더 일반적인 법칙으로부터 도출하게 되죠. 예를 들어 낙하법칙은 이제 만유인력의 법칙으로부터 도출됩니다. 이렇게 이성은 경험의 법칙에서 더 일반적인 법칙으로 마침내 순수한 법칙에 이르게 되죠. 이 순수한 법칙은 가장 일반적인 물체에 성립하는 법칙이죠. 일반적 법칙이 의존하는 일반적인 물체는 자연적 사물의 경계 선상에 있는 순수한 물체가 됩니다. 이미 관념으로 이행하기 직전의 물체이죠. 예를 들자면 에테르와 같은 물체를 들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일반적 물체에 의존하는 법칙은 순전한 대립과 순전한 통일성을 동시에 갖는 법칙이 되죠. 헤겔은 경험적인 법칙이 순화되면 될수록 그 법칙은 대립과 통일이라는 모든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만을 표현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성립하는 법칙이 인력과 척력의 관계를 말하는 만유인력의 법칙이고, 플러스 전기와 마이너스 전기의 대립과 통일을 의미하는 전기의 법칙, 산과 알칼리의 결합과 분리의 법칙 등입니다. 이런 인력과 척력, 플러스 전기와 마이너스 전기, 산과 알칼리는 여전히 일반적인 물체에 의존하므로 원소materie입니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제 물체라는 존재를 넘어선 순수한 힘이죠. 일반법칙을 넘어서 자연적 세계를 이루는 힘의 관계, 대립된 힘, 확산하는 힘과 수축하는 힘의 대립과 통일의 관계가 출현합니다. 그게 바로 오성이 도달한 힘의 개념이죠. 경험법칙에서 순수 일반법칙으로, 순수법칙에서 힘의 개념에 이르는 과정을 헤겔이 어떻게 설명하는지 직접 들어보기 바랍니다.

“법칙이 처음 나타났을 때, 법칙은 자신을 불순하게 즉 어떤 감각적 존재에 둘러싸인 채로 ,.. 경험적 소재에 함몰된 채로 나타낸다. ..(이런 저런 실험 끝에) ...이 실험은 개념의 형태 속으로 법칙을 전적으로 고양하며, 그 계기가 일정한 존재에 대해 전적인 구속성을 제거하는 것 외 다른 것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143쪽)

“실험의 결과는 이런 방식으로 특정한 사물의 성질로서 존재하는 계기나 유령적 존재를(Begeistung; 精氣) 지양하며 술어를 주체로부터 해방시킨다. 이 술어는 .. 일반적인 것으로서만 발견되며, 그 자립성 때문에 물질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144쪽)

예를 들어 처음 플러스 전기는 유리에서 얻었어요. 그래서 유리전기였죠. 반면 마이너스 전기는 머리칼에서 얻었고 머리칼 전기라 불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순수하게 되어서 플러스 전기이고 마이너스 전기가 된 거죠. 이 전기는 물질Materie입니다만 순수한 물질이고, 이미 물질을 넘어선 것, 곧 힘이 된 거죠. 헤겔은 이를 비감각적인 감각적인 것Unsinnliches Sinnliches, 물체 없는 것이지만 대상적으로 존재하는 것 Koerperloses und doch gegenstaendliches Sein)이라 규정합니다.

6)이성의 이행에 관해
지금까지 이성은 감각에서 시작하여 비자연적인 물체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과정은 사실 의식 단계에서 감각, 지각, 오성이 거쳐갔던 길을 다시 한 번 되풀이 하는 것 같습니다. 개념도 당시 나온 개념들이 반복됩니다. 다만 그때 감각, 지각, 오성과 달리 이 경우는 이미 이성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이성은 인정을 통해 실재로 나가려 합니다만 목표에 도달했던가 싶으면 다시 밀려나가고 맙니다. 목표는 곧 일반적 실체에 이르는 것이죠.

이성은 경험을 강조합니다. 주관성을 넘어서기 위해서이죠. 이성은 객관성, 사물 자체의 일반적 실체를 향하여 전진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이성이 도달하는 것은 다시 자기 자신이 됩니다. 주관성으로 되돌아 온 거죠. 이성은 이런 주관성을 다시 벗어나려고 이성은 다시 객관성을 찾죠. 이제 이성은 자연적 사물의 법칙에 이르렀습니다만 다시 주관적인 힘의 개념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여기서 다시 객관성을 항해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를 향해 이성이 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게 영원한 이성의 방랑이죠.

이렇게 이성은 앞으로 전진하면서 마침내 유기체에 이르게 됩니다. 유기체에 대한 설명은 145쪽에서 이어지지만 단락이 지어져 있으니 다음에 설명하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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