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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현대 중국사상과 동아시아 출간
hanphil 2008.04.12 3249
조경란 회원의 신간 안내와 인터뷰 기사를 소개합니다.


동아시아적 시각으로 中 근대화를 성찰하다  / \현대 중국사상과 동아시아’ 펴낸 조경란 교수

‘파사입공(破私立公·사적인 것은 파괴하고 공적인 것만 세우자)’은 중국 문화혁명 당시 극단적인 분위기를 상징하는 슬로건이었다. 개혁·개방 30년을 맞는 지금 중국사회의 모습은 ‘파공입사(破公立私)’라는 정반대의 말이 꼭 어울릴 정도로 빈부격차가 극심하고, 끝없는 개인욕망 추구가 판을 친다.


중국현대철학 연구자 조경란 성균관대 겸임교수(47·사진)는 “역사야말로 공짜가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문혁의 트라우마가 이런 식으로 역사에 앙갚음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최근 출간한 ‘현대 중국사상과 동아시아’(태학사)에서 ‘개인의 자유(욕망)와 공동의 자유(욕망)를 조화시키는 것, 다시 말해 진정한 입사입공 혹은 입공입사는 불가능한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이 물음은 량치차오, 루쉰, 후스, 옌푸 등 20세기 중국 사상가들이 고민했던 지점이기도 하다. 조 교수는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이 중국 내부적으로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공동체의 구상에도 중요하다고 본다.

9일 오전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조 교수는 “중국에서나 한국에서나 국가가 공공성을 담보하는 역할을 포기한 지 오래됐다”고 했다. “국가는 자본의 영역을 넓혀주는 쪽으로 법률도 고쳐주”고, “규모가 큰 공동체에서는 소수자나 약자의 목소리는 항상 묻히게 마련”이다. 그는 “결국 규모가 작은 공동체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그의 이번 책에는 ‘보편공동체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규모가 작은 공동체’와 ‘보편공동체’. 무언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보편’이라는 말은 왠지 서구적이고, 억압적인 뉘앙스의 ‘근대’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이에 조 교수는 “‘보편’을 넘어서는 ‘보편’공동체”라는 알듯말듯한 말을 했다. 여기에는 서구 근대적 의미의 ‘보편’과 이에 대항해 중국 지배 엘리트가 구축해온 가부장적 공동체주의를 모두 넘어서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했다.

당장 국가의 역할을 전면 부정할 수는 없지만 “마오의 유령이 되살아날 정도로 불만이 팽배해 있는 노동자, 농민들을 보면” 그 기본은 작은 공동체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강국몽상(强國夢想)’을 좇는 주류에 휩쓸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동아시아적 ‘개인의 전통’ ‘자발적 공동체의 전통’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1919~1920년 사이 베이징에서 천두슈, 리다자오 등이 벌였던 공독호조단(共讀互助團) 운동을 예로 들었다.

조 교수는 “이 문제는 사실 생태 문제와도 관련돼 있다”고 했다. 지역사회의 자연스러운 공동체 내의 자치는 기본적으로 생태친화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의 경우 먹는 것, 마시는 것, 숨 쉬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굉장히 심각하게 다가오는 문제이기 때문에 여전히 미성숙하고 빈약한 중국 내 시민사회 형성의 와중에도 환경단체만이 유일하게 활동 공간을 허용받고 있다. 생태 문제는 동아시아 네트워크에 중국을 끌어들이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로도 이어진다.

조 교수의 이러한 생각은 노자에 심취했던 학부 시절에까지 뿌리를 두고 있지만, 최근 중국 내 신좌파 지식인의 기수로 떠오른 왕후이(汪暉)의 그것에도 영향을 받았다. 그 자신 왕후이와 자주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서구 문명이 확산시켜온 현대성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 내장된 패권주의적 성격을 비판하고, 이와는 다른 현대화의 길을 모색하려 했던 중국의 사회주의적 실천에 대해 최소한의 역사적 의의는 인정해야 한다”는 왕후이 주장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 다만 민주주의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과 국가 중심주의, 그리고 한국과 같은 ‘변방’에 대해 무심한 중국 중심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한편 티베트 사태에 대해 조 교수는 “중국의 입장과 티베트의 입장, 달라이 라마의 입장과 일반 민중의 입장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 있을지 아직 관(觀)이 서지 못했다”면서 “다만 이상적으로는 1949년 이후 서방의 식민통치 방식이 그대로 들어오며 잊혀져버린 청조 정부의 느슨한 소수민족 통치 전통을 얼마나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지금 체제 속에 녹여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경향신문, 2008, 4, 12,  글 손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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