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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단체의 사라진 헌신성에 대하여...
둥글이 2007.04.13 2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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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 남는 사람만 보세요 ---


 


 


[시민사회단체의 위기에 대하여...]


 


시민사회의 위기가 닥쳤다라는 말이 들리워진지가 한 두 해가 아니다.


시민사회가 위기에 처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이는 근본적으로는 ‘시민사회의 기반’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다.


 


즉, 먹고 살기에만 신경을 쓰고 사회문제에 대한 책임감을 상실한 대다수 시민들과, 기득권세력들의 시민들에 대한 우민화 전략, 이에 의한 문화의 하향평준화로 건전한 시민정신이 존재할 기반을 잃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관련 글 -> 어떻게 시민 참여를 끌어 낼 것인가?  )




두 번째 이유는 시민사회단체의 구성원들이 세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철저한 ‘헌신’과 ‘투쟁력’이 담보되어야 하는 것이 시민사회단체의 자세임에도


어느 때 부터인지 ‘효율성’과 ‘성과’를 중시하면서 관료화되어가는 시민사회단체들은 자본과 권력에 대한 견제를 적당한 수준(대차가 맞는 수준)에서 이루면서 그들과 공생의 길을 가고 있는 듯 하다.




시민사회를 바로 세워야할 주체들이 변절하고 있으니 시민사회에 위기가 오지 않을 리가 없다.


 


이들의 ‘몸 사리는 노력’이 좀 더 세련되고 유연화되는 특정 시점에서 이들은 권력에의 일부가 되기 위한 시도를하는데, 이것은 여지껏 그들을 키워낸 ‘역사’와 ‘민중’에 큰 죄를 짖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들 자신들의 바뀌어진 인식 틀로는 그것은 단지 ‘새로운 운동 국면으로의 진입’ 이외의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들의 눈으로 보는 ‘기존의 시민운동’이라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물론 과거에서부터 투쟁의 장에서 선호되어져 왔던 ‘구호성 활동’만에는 한계가 있고, 분명 쇄신되어야 하는 운동의 형태이기는 하지만, ‘헌신’과 ‘순수성’을 잃고 자본과 권력을 지향하는 운동보다는 시민사회에 훨씬 풍부한 자양분을 제공하는 것은 염두에 두자.




시대는 변했다고는 하지만,


자본과 권력을 가진 이들의 교묘한 술수는 우리의 의식을 보다 교묘하고 집중적으로 침탈하고 있다. 한 지역의 ‘실세’가 ‘자본가’ ‘행정체계’와 손을 잡고 ‘언론’을 마음대로 조정하면서 시민들에게 ‘채우고’ ‘높아질 수 있음’을 끝없이 선동하면서 ‘욕망’을 주입하는 ‘현실’은 전혀 변한바가 없다. (관련 글 -> 지방자치의 현실)




이렇게 21세기형 파시즘이 득세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그에 맞는 격렬하고 집중적인 운동을 해야한다.(21세기형 아나키즘으로 무장해야한다.) 이는 국가권력자체를 거부하여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러한 국가’ ‘그러한 사회’ ‘그러한 문화’를 분쇄하고 보다 이상적인 세상을 열어내기 위한 보다 급진적인 노력이 필요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하지만 변심한 그들에게는 이러한 주장이 한낱 이상주의자들의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해 봤자’ 변하지 않을 것이 뻔한 것으로 스스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변화’의 원동력은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각 개인의 의지’인 것을 잊은지가 오래이고, 변화를 위해서는 ‘결과를 발생시키는 권력과 자본’을 획득해야한다고 믿고 있다.


‘각 개인의 변화에의 의지’가 촉발되는 ‘순간’ 자체가 변화의 시작인 것을 모르고,


오직 ‘통밥’을 재면서 ‘효율’의 문제만을 고민하다보니,


결코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자신의 의지로부터 시작되는 ‘변화’는 기대할 구 없는 것이고,


필연적으로 ‘자본과 권력’의 후광을 받아서 그로부터 ‘힘’을 얻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그들’ 자신이 순수성과 헌신의 마음을 함께 가지면 변화를 가능케 하는 큰 힘이 솟아 날 수 있지만,


그들 ‘각자’가 ‘통밥’만 재고 있으니 그들 ‘모두’가 그러한 권력과 자본에 야합하는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헌신성’과 ‘순수’를 잃은 이들에게 죽음을 각오하고라도 더욱 강력히 투쟁해야할 ‘현실’이 보일리 만무하다.




그들의 삶에는 ‘헌신’이 빠져 있음으로, 필연적으로 ‘자본과 권력’을 향하는 그 의지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이미 ‘권력자’의 그물에 얽혀있게 했음을 그들은 잊은채... 이미 ‘권력자’의 시야로 세상의 문제를 그들은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의 씨앗은 오래전부터 자라고 있었다. 


시민시민사회단체는 애초부터 자신의 내면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이해(마음공부)를 바탕으로, 순수와 헌신의 마음으로 ‘나누고 비우려는’의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었다.




그들은 ‘반독재’ ‘반민주’를 외치면서 나섰을 뿐 그러한 반독재와 반민주의 성향이 축소되어 스며들어가 있는 ‘일상적 파시즘’이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살펴볼 ‘마음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부로 보이는 ‘적’과만 ‘싸우고’ ‘쟁취’하려는... 결과적으로 ‘채우고’ ‘얻으려는’ 목적으로 활동을 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그 속성이 ‘권력과 자본’에 일치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고, 자신도 모르게 변심의 길로 가게되었던 것이다.


아니 그들은 변심을 한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그들은 그 길을 가고 있었음으로...




시민사회의 위기라는 말을 우리는 많이 듣게된다.


우리는 이 문제의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를 뿌리 깊게 성찰해야 한다.




몇몇 시민활동가가 권력의 편에 서서 오히려 시민사회를 탄압하는 그러한 현실을 비판하며 통탄하는 것에만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짧은 관점을 가지고 ‘그들’을 비판했던 이들이 다시 비판의 대상이 된 경우가 한 두번이었던가!




우리는 현재 그러한 일이 빚어지는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 냉철하게 숙고해야 하면서


1. 왜? ‘순수’와 ‘헌신’의 마음을 시민사회활동가들이 마음에 담고 있을 수 없는 지에 대한 것과


2. 사회구조적인 문제에만 집중하며 살아온 이들의 ‘덜된 마음공부’로 인한 폐해의 실상을 진지하게 숙고하여, ‘사회구조적인 부조리’에 대해서 통탄하기 전에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서 반성해야할 시간을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여지껏 시민사회에서 보여온 ‘투자와 그에 따른 성과’ ‘효율성’ 에 대한 맹목성을 버리고, ‘나눔과 비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면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서는 ‘계란으로 바위치는’ 노력까지를 보여야할 의지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현실을 직면하려는 이들에게


‘기껏 나 혼자 그렇게 해서 세상이 변할까’라는 ‘효율적 사고’는 접어두어야 할 첫 번째의 것이다.


‘너 마저 그러하니’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난 것이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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