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자유게시판
책 소개- 이병창, 지젝 라캉 영화(두 죽음 사이), 먼빛으로, 2013
이병창 2013.10.16 498
책 소개



지젝은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기초로 하여 영화, 대중문화 및 이데올로기를 열정적으로 비판해왔던 현대의 대표적인 진보 철학자이다. 그는 현재에도 매년 한 두 권씩의 저서를 발간할 정도로 왕성한 지적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의 명성은 이미 세계적으로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철학적 사유의 전모는 아직까지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이유는 우선 그가 독일 고전철학과 프로이트, 라캉의 정신분석학 사이를, 또한 정치적 이데올로기 비판과 영화 및 대중문화 비판 사이를 어지럽게 횡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지젝의 철학적 사유의 바탕에 있는 라캉의 정신분석학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유를 우리에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병창 교수의 새로운 책 『지젝 라캉 영화』는 지젝의 철학적 사유를 이해하는 데서 부딪히는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시도된 책이다. 이 책은 지젝의 철학적 사유에 대한 전반적인 해설서이며 지젝을 충실하게 뒤따르는 해설서이다. 국내에 이미 몇 가지 지젝에 대한 해설서가 나와 있지만 지젝의 사유를 전반적으로 그리고 충실하게 다룬 책으로는 유일하다 하겠다.



이 책은 우선 1부와 2부에서 지젝이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해석할 때 사용하는 기본 개념들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하여 준다. 이때 이 책은 지젝의 라캉 해석의 토대가 되는 헤겔의 ‘소급적 근거’의 논리나 ‘구체적 보편’의 논리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이 책은 지젝의 라캉 해석의 목표가 되는 ‘두 죽음 사이’의 영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영역은 상징적 죽음 이후 실재적 생명이 지속되는 영역을 말하며 이 영역이 바로 라캉이 정신분석학의 윤리적 모델로 강조했던 그리스비극의 영웅 안티고네가 거주했던 영역이다.



이 책은 3부와 4부에서 지젝이 제시한 영화의 이론 및 히치코크, 채플린, 로셀리니,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들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설명하여 준다. 지젝의 영화에 대한 관심은 그가 제시한 철학적 방법론인 ‘삐딱하게 보기’의 전형적인 실천이다. 한편으로 지젝에게서 영화는 정신분석학의 이론적 개념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지젝은 영화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소위 프로이트가 꿈의 배꼽이라고 했던 것에 해당된다고 본다. 다시 말하자면 영화는 라캉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순수 이론적 연구가 이론적 연구이기 때문에 오히려 간과하게 되는 핵심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로라는 것이다.



이 책은 마지막 부에서 지금까지 지젝에 대해 국내의 연구가 간과했던 두 가지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그것은 지젝의 라캉 해석에 토대가 되는 독일 고전철학적 기초에 대한 분석이다. 이 부분에서 이병창 교수는 헤겔에서 라캉으로 이어지는 ‘탈중심적 주체’라는 개념이 철학에서 낯설고 두려운 타자 즉 절대적 타자의 문제를 제기하여 왔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이 책은 지젝의 철학적 사유가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정치적 지향점을 분석한다. 그것이 바로 포스트모던적인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며 거꾸로 말한다면 레닌의 진리의 정치를 부활시키려는 지젝의 시도이다.



이병창 교수 역시 헤겔 철학의 연구자이며 영화이론에 관심을 가져 왔으며 문화 이데올로기적 비판에 주력해 왔다. 또한 이병창 교수는 프로이트, 라캉에 관한 여러 논문들을 발표해 왔다. 그러므로 이병창 교수는 지젝과 철학적 사유의 지반을 공유해 왔기에 누구보다도 지젝의 입장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보겠다.



항상 새로운 모색을 향해 떠나가는 지젝의 철학적 사유를 하나의 틀로 가둘 수는 없을 것이므로 이 책이 지젝의 사유를 이해하는 데서 아무래도 하나의 징검다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적어도 지젝이 내적으로 고민했던 문제가 무엇이었는가를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0 개의 댓글
(댓글을 남기시려면 사이트에 로그인 해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