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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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빈더의 영화를 보고
이병창 2013.06.10 359
지난 일주일간, 아무 것도 하고 싶지도 않았고

아무 것도 생각하기 싫었다.

이런 기분에 사로잡히면 견딜 수 없다.



그때는 깊은 산에 가서 며칠 길을 잃고 헤매다가

...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나 비로서 다시 살아갈 의욕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다행히 이번에는 마침 영상자료원에서 독일의 작가 파스빈더의 특별전이 있어, 하루에 영화 세편을 보면서 견디었다.

최소 생존에 필요한 활동을 빼놓고 모두 어두컴컴한 극장 속에 들어 있었다.

거의 자학의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너무 힘들어 그의 영화를 다 볼 수는 없었다.



60-70년대, 파스빈더는 실현될 수 없는 꿈을 꾸고 있었다.

시대의 모랄리스트로서 파스빈더는

그는 자본주의의 비열함을 조롱했고

사랑이라는 가혹한 고문을 폭로했고

노동자에 대한, 여성에 대한,동성애에 대한, 이주 노동자에 대한

사회의 차별을 비판했다.



그의 비판은 철저했다.

이런 차별은 차별받는 노동자, 여성,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자신 속에서도 반향된다는 것을 그는 결코 놓치는 법이 없었다.

그러기에 그의 영화는 절망적인 느낌을 주고, 관객을 비명지르게 하지만

그 절망과 그 비명이 오히려 희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의 영화에 대한 평가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번 특별전에서 내게 전율을 주었던 영화로서는

사랑의 고통을 토로한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과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다룬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그리고

행상인이라는 소시민(아마도 독일을 상징하는 듯)의 자살을 다룬 \계절의 상인\

여성의 저항과 파멸을 다룬 \에피 브리스트\

노동자의 죽음과 그 죽음을 이용(?)하는 가족들이나 언론을 다룬 \퀴스터 인의 천국여행\을 들고 싶다.



그가 신경안정제 과다복용으로 반-자살을 택한 지 무려 5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의 꿈을 다가갈 수 없다니!!



일 때문에 부득이 놓친 그의 영화들은

평생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아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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