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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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주년기념] 서유석 회장 신년사
전호근 2009.01.16 1705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09년 신년사
                                                      “思而不學則殆”


진보적 철학 운동을 기치로 내걸고 창립한 한철연이 어느덧 2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 동안 한철연 창립을 위해 애쓰시고 도와주신 여러 선생님들, 그리고 한철연 운영과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많은 선배 동학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비록 시작은 작았지만 20년이 흐르는 동안 회원 수가 많이 늘었습니다. 때로 갈 길을 두고 방황도 하고 답보도 있었지만 나름의 여러 성과가 있었습니다. 먼저 신년회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의 건투와 한철연의 새로운 도약을 기원합니다.

개인이건 조직이건 20년이 되면 여러 가지 관행이 생깁니다. 그 관행 중에는 떨쳐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또 존재가치를 되물어 더욱 살려나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이 그런 갈림길이요, 선택의 결단을 내려야 할 적시(適時)입니다.

시대가 변하였습니다. 게다가 사회는 보수화 하고 있습니다. 정치권력도 제도도 국민의 의식도 그렇습니다. 이런 국면은 장기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겨울의 끝과 봄은 멀게만 느껴집니다. 진보진영은 정치권이건 학술운동권이건 패배의식과 분열 속에 헤매고 있습니다. 사회적 모순 극복의 대안도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20년을 맞은 한철연은 일정부분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아울러 진보적 철학운동 조직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 지 다시 한 번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올 기축년은 이런 위기를 냉정히 짚고 새로운 출발의 토대를 마련하는 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에 회장으로서 몇 가지 의견을 말씀드립니다.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토론을 통해 더 좋은 의견을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1. 혁신과 진보의 사회상을 모색하고 학문적으로 제시하는 일에 더욱 노력합시다.
한철연의 존재이유는 진보적 사상운동에 있습니다. 진보 사상을 매개로 하여 시대적 과제를 진단하고 학술적으로 처방하고자 한철연이 있는 것입니다. 일반 철학회의 평균적인 관행에 젖어서는 안 됩니다. 한철연이 제도권 철학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많은 진보적 학술공동체 가운데 철학운동체로서의 한철연의 고유성도 찾아야 합니다. 어렵지만 진보 사상을 새롭게 구축하는 일에 적극 나섭시다. 신자유주의 반대, 한미FTA반대만으로는 미래의 모습을 그려낼 수 없습니다. 대안적 삶과 대안 사회의 사상적 원리를 탐구하고 토론하고 그럼으로써 학문적 성과를 내는 길만이 한철연이 역사에 기여하는 길입니다. 정기심포지엄, 월례발표회, 분과연구, 각종 공동연구와 저술활동, 학술지 발행, 사회단체/학술공동체와의 연대 등 그 동안 해 오던 모든 분야에서 진보의 사상적 재구성에 더욱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2. 전문성과 다양성을 확보하자
한철연은 사회운동 단체도 아닙니다. 그런 단체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몫, 우리가 해야 할 몫은 다른 것입니다. 사상에 있어 전문성을 확보하여 기여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올해는 한철연 회원 개개인과 내부 소집단 모두의 연구역량이 강화되는 해가 되어야 합니다. 한철연은 진보적 철학으로 무엇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아울러 19세기 사상의 도식에 매몰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 정신을 오늘에 살려야 합니다. 또 전공의 벽을 허물고, 학문 간의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다양한 사상 조류를 이해하고 타 학문 공동체들과 교류하는 일에도 적극 나서야 합니다.

3. 자립기반 확보에 노력하자
한철연의 자립기반을 더욱 확충해야 합니다. 물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운동은 사상누각이 됩니다. 전문성 확보를 위해서나 다양한 학적 교류를 위해서도 많은 재원이 필요합니다. 연구자의 생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왕성한 연구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회장으로서 기금 마련에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출판 사업 등을 통한 재원 마련에도 함께 힘을 모읍시다.

4. 신진 연구인력 양성에 전력투구하자
신진 진보 연구자의 공급이 막혀 있습니다. 비판사회학회가 정기 학술대회마다 대학원생 발표를 정례화하고 있으며 특정대학들과 연계하여 심도 있는 세미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시도들을 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대학에 학생운동 진영이 있었고 그들이 한철연의 잠재적 회원이었습니다만, 지금은 그런 것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거꾸로 대학으로, 학생들에게로 나아가야 합니다.

5. 국제적 학문교류에 나서자
오늘의 문제는 일국의 문제가 아닙니다. 또 진보정치와 진보사상의 경험에서 우리보다 앞선 나라들이 있습니다. 또 훌륭한 학자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한철연이 진보철학운동에서 국제적 교류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비판지리학회가 대안지리학을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진보적 인문지리학의 동아시아 연대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을 배워야 합니다. 지난 세계철학자대회에서의 한철연의 작은 발표회가 있었습니다. 작은 시작이지만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습니다. 앞으로 국제교류를 통한 진보사상 네트워크 구축에 힘을 모아봅시다.  

6. 오래된 계획들을 과감히 실행에 옮기는 한 해가 되어야
대중잡지, 대학원 세미나, 타 학회와의 공동 발표회, 국제 연계활동 강화 등 그동안 많은 논의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한 일들이 있습니다. 선배들이 주로 그렇습니다만, 철학자들은 생각만 많이 하고 실천에는 더딥니다. 올해는 일을 벌이는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발전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두서없이 새해의 바람을 몇 가지 말씀 드렸습니다. 기축년 새해, 한철연 식구들 모두 건강하시고, 학문에서나 삶에 있어 큰 진보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창립 때의 정신을 되살려 다시 한 번 뛰어봅시다.

한철연 만세.

2009년 신년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장 서유석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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