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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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는 왜 난을 좋아했을까?
강경표 2009.07.17 1395
이런 저런 글들을 읽다보면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인데, 식물에 관한 책들을 보다가 든 생각들을 몇자 적어본다.

난초...
난초라 하면 왠지 드는 생각이 있다. 가녀린 여인이 생각나기도 하고, 청초한 그 무엇이 생각나기도 하고, 꽃이라도 필 때면 맑으면서도 짙은 향기는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난 난초 키우는 법을 군대에서 배웠다. 이게 무슨 소린지 좀 생소하게 들리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당번병 시절 대대장님의 강요로 난을 키웠다. 행사 때마다 들어오는 난초의 행렬을 보면서, 그것들을 키워야하는 하는 내 심정은 정말...(난 지금도 이해가 안간다... 군인들이 그렇게 많은 난초를 주고 받는 다는 사실이...)
그래서 몇몇 난초들은 죽음을 맞이했다. 미숙한 내 손에 죽기도 하고, 생존력이 떨어져 보이는 몇몇 아이들은 자연도태란 그럴싸한 명분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내 손에...
그렇게 모진 환경 속에서 몇몇 아이들은 꽃을 피웠다. 그리고 그 때서야 알았다. 난초가 얼마나 아름다운 꽃인지...

내가 머무는 곳에는 항상 난초 화분이 하나씩은 있다. 여러개는 관리를 못하기 때문에 지금은 하나만 키운다. 난초를 키운다고 해서 나를 늙수그레한 할아버지로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생각보다는 아주 젊다...
대학교 조교시절 사무실에서 키우던 난초는 후배 조교녀석이 너무나 키우기 싫었던지... 물대신 마시던 커피를 주기적으로 준 덕분에 죽고 말았다. 그 녀석은 그 날 나한테 죽었다... 술로...
지금있는 사무실에서 키우는 난초는 나말고는 물주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좀 멀리 오랜기간 나갔다오면... 잎이 말라 있다. 일주일에 한번만 나 대신 물을 주라고 해도 사람들이 물을 주지 않는 것 같다.

나 말고도 난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난이라는 단어는 시경에 가장 먼저 등장한다. 물론 그 당시에는 사군자적 의미의 난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문헌에 난이 등장하는 것은 최치원의 문장에서 처음 드러난다고 한다. 확인해 본적은 없지만...그리고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시대부터인가... 난은 선비를 상징하는 4가지 식물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인적이 드문 깊은 산골짜기에 숨어 꽃향기를 풍기는 난. 난은 고결한 선비가 명돈수행하는 자세와 같아 이욕과 공명을 초개와 같이 여기는 군자에 비유하고, 사시사철 푸른 잎새는 군자의 지조에 비유되며, 잎새의 곡선은 경서의 서법과 같고, 난은 중용지덕을 지키는 지키는 식물이며, 난에는 군자의 자세가 있으며, 사대부의 기개가 있다고 하였는데...\"

좋은 말은 다 달라붙어 있는듯한 이 난에 대한 예찬을 보면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난의 실체는 사실 그렇지 못한데...
난에 대한 동양적 예찬을 뒤로하고, 난을 살펴보면 난은 비열한 꽃이다. 대부분의 난초들은 곤충에게 꿀을 제공하지도 않으며, 꽃가루도 제공하지 않는다. 아주 독창적인 사기꾼 같은 꽃이 난이다. 난은 향기의 달인으로 많은 향을 내뿜지만 향만 있을 뿐, 정작 곤충에게 필요한 것은 없다.
더 웃긴놈들도 있는데, 성욕을 자극하는 놈들이다. 오프리스(Opriys)속 난초들은 암컷말벌을 완벽하게 재현해서 수컷말벌들을 흥분시키는데, 착각을 한 수컷말벌들은 꽃잎에 앉아 흥분한 나머지 일을 치르기 위해 몸을 비빈다. 그러다 마치 야동을 보는 젊은이들처럼 자신의 짝이 흥분하지 않은걸 알고는 좌절하고 뒤돌아서게 만드는 꽃이 난이다.

선비들은 왜 난을 좋아했을까? 현대의 선비들도 난을 좋아할까? 그들은 난의 어떤 모습을 본 것일까? 그들도 나처럼 난의 자태와 향기에 취해서 난의 본 모습을 못 본 것은 아닐까? 이 시대의 선비들이 난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겉으로만 고결하고 순수한 이 시대의 지식인의 모습을 우리는 난을 통해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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