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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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본능
이병창 2013.12.06 254
박근혜 정권과 유신본능



1 박근혜의 명령

박근혜 정권은 12월 2일 신임 검찰총장에게 “어떤 경우라도 헌법을 부인하거나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하는 것, 이것에 대해서는 아주 단호하고 엄정하게 법을 진행해서 그런 생각은 엄두도 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국어사전을 찾아 보니, ‘엄두도 내지 못하다’는 말은 ‘마음도 먹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라 한다. 이는 의식적인 생각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인 생각조차도 틀어막겠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 성리학 외에는 사문난적이라 하면서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들었던 사상탄압을 21세기에 와서 다시 부활하겠다고 한다.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시민이라면 정말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박근혜 정권은 태연하게, 그것도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인 검찰의 수장에게 명령한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 인류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것일까? 그렇게 본다면 소크라테스는 정말 인류의 적이 아니겠는가? 설혹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의 구체적 제도 자체에는 한계가 있지 않는가?



자유민주주의의 모델이라는 서구 사회만 보더라도 아주 일찍부터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를 깨닫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해 왔다. 서구 사회는 자기의 고유한 역사와 현실에 맞게 이를 위해 엄청난 고투를 거듭해 왔다는 것을 박근혜 정권은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 이런 한계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의 의미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2 유신본능

우리 헌법에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이 정확하게 그대로 나오지는 않는다. 헌법을 한번 펼쳐보라. 물론 유사한 말이 있다. 누구나 다 알겠지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이 발견된다. 이 말은 헌법 전문에도 나오고, 헌법 4조 등에서도 언급된다.



두 말은 그게 그거 아닌가 싶은데 실상 엄청나게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자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하나의 질서, 인류 사회에 보편적이고 역사적으로 불변하는 제도가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후자는 ‘기본’이라는 말에서 짐작하듯이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은 확정적인 것이 아니고 사회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가변적인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얼마나 다른 의미인가? 박근혜 정권은 이런 근본적인 차이를 무시하면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을 자유민주주의라는 말로 바꾸어 버렸다.



그렇다면 우선 헌법에 나오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무엇인가. 전문가들의 해석을 들어보자. 필자가 우연히 얻어서 오래 전부터 간직해 왔던 책 󰡔판례 헌법,2판󰡕(정재황 저, 길안사, 1994)을 보자. 헌법 전문에 나오는 ‘자유민주적 질서’라는 개념을 설명하면 정재황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준다고 함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국가단체의 일인독재 내지 일당독재를 배제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 자유 평등의 기본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 질서의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고,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 등 우리의 내부체제를 파괴 변혁시키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17쪽)



너무 길어서 이해하기 힘드니 간단하게 다시 말하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그 정신에서는 국민의 자치를 의미한다. 자유민주주의를 다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경제적으로 사유재산과 시장 경제라는 제도이며 그리고 정치적으로 민주주의에서 흔히 기본적이라고 알려진 제도들(즉 기본적 인권, 의회, 삼권분립, 복수정당제, 선거제도 등)이다.



이런 설명은 별로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그런데 이런 설명을 들어 보면 누구나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권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하는 세력이 도대체 어떤 세력인가? 국정원이나 군 및 권력기관의 불법적인 선거개입을 규탄하는 야당 및 시민단체들이 모두 이런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하는 세력일까? 아니면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주장하는 종교계가 바로 이런 세력일까? 아니면 국정원의 조작에 의해 내란음모 세력이라고 고발되어 해체의 위협에 처한 진보당이 이런 세력일까?



그들 가운데 누가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기본권을 부정하고, 의회를 무시하며,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하고, 복수정당제를 파괴하고, 선거제도를 파괴했을까? 위에 거론된 집단들 가운데 그 어떤 집단도 이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할 생각은 엄두에도 내지 안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자유민주적 시민이 있을까?



그러므로 박근혜 정권이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하는 세력을 척결하라는 명령은 정권을 위협하는 세력에 대해서 대대적인 탄압을 자행하라는 명령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그런 정권의 요구를 정권으로부터 마땅히 독립적이어야 할 검찰의 수장에게 명령하고, 그것도 엄두에도 내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하는 것처럼 반민주적인 오만한 모습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러니 신임 검찰총장은 잘 살펴보라. ‘종북’이라는 매카시즘적 탄압을 통해 사상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박탈한 세력이 누군가를. 법치주의를 부정하면서 조작된 증거로 무고한 사람들을 내란음모로 구속한 세력이 누군가를. 불법적인 선거개입을 자행했던 민주적 선거제도를 파탄시킨 세력이 또 누구이며 정당의 자유에 기초한 복수정당제의 기본원리를 부정하고 진보당의 해산심판을 청구한 세력이 누군가를. 그런 세력의 정점에 도대체 무엇이 있는가를 신임 검찰총장은 명백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유민주적 질서를 항상 깨뜨려온 사람들은 박정희, 전두환을 비롯한 군부 쿠데타 세력이었다는 것을 상기해 보라.



어쩌면 박근혜 정권은 거울에 비친 자기의 얼굴에 놀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기의 비밀을 폭로하는 게 무의식의 작용이다. 혹시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철저하게 유린한 유신체제를 또 다시 부활시키려는 무의식의 작용은 없었는가? 그러니 박근혜 정권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하는 세력을 찾기 위해서 자기의 무의식을 점검하여 보아야 한다. 자신의 마음속에 유신 본능은 혹 없는가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라.



3 자유민주주의란 살아있는 생명

그런데 이처럼 어느 세력이 현존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반하고 있는가를 따지는 것처럼 무의미한 행위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더 발전시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정재황 교수의 설명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구체적으로 본다면, 현존하는 몇 가지 제도들을 구성요인으로 하는, 그것들의 결합체를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구성요인들이나 그것들의 복합체는 모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동일한 것인가는 의문이다.



물론 미국과 유럽의 나라들을 모델로 하여 본다면 대체로 정재황 교수가 언급한 것과 같은 제도들을 찾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시야를 넓혀서 전 세계의 수많은 국가들이 표방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를 살펴본다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란과 같은 이슬람적 자유민주주의를 생각해 보자. 소련에서와 같은 푸틴적 자유민주주의를 생각해 보자. 심지어 수십 년간 일당독재를 이어온 일본의 자민당식 자유민주주의를 생각해 보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구체적 제도라는 것이 마치 수학공식이나 원소 주기율처럼 일의적으로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라는 고정된 실체는 없다. 서구적인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면 모두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이처럼 서구중심주의적인 사고방식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상대적이니 그 어떤 자유민주적 질서도 다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입장을 취한다면 이는 유신적 민주주의도 자유민주주의라는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필자가 주장하려는 것은 나라마다 다른 구체적 제도로부터 자유민주적 질서가 도출되는 기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기본정신을 다시 말하자면 독재나 전제를 거부한다는 것이며 국민의 자치와 법치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핵심을 역시 시민들의 자유로운 합의라는 의미를 지닌 ‘국민의 자치’라는 개념이 될 것이다. 구체적인 제도란 이런 기본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각 나라마다 구체적인 역사나 현실에 적합하게 형성된 것들을 말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은 기본정신이다. 구체적 제도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조봉암 선생이 주장했듯이 국가 기간산업을 국민의 자치를 통하여 국유화 한다면(이는 박정희가 쿠데타를 통해 답습했는데, 단적인 예가 은행의 국유화라 한다.) 이는 사유재산을 해치는 것이지만, 그것도 역시 자유로운 민주주의이다. 만일 국민의 자치에 의해서 프랑스 혁명 당시처럼 삼권을 모두 의회에 종속시키는 제도를 정한다면 그것 역시 자유로운 민주주의를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이런 구체적 제도들이 과연 국민의 자치를 통해서 실제로 결정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그리고 이런 제도들이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을 가장 잘 살리는 것인가 역시 논란의 여지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적어도 국민의 자치를 통한 것이라고 한다면 자유민주주의라는 기본정신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모든 일에서 그렇듯이 자유민주주의의 경우에도 현실이나 역사는 항상 제약으로 작용한다. 그 결과 각 나라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구체적으로 제도화되면서 그 기본정신을 실현하는 데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는 87년의 국민적 합의에 의해서 설정된 것들이다. 그러므로 많은 정치학자들은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87년 체제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87년 체제가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끊임없이 헌법개정이라는 문제가 이슈화되는 것을 보아도 분명하다.



그러므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더욱 완전하게 실현하기 위해서 정치적으로 끊임없는 노력이 이루어져 왔다. 자유민주주의는 국민의 자치라는 그 기본정신에 맞도록 끊임없이 발전하고 개혁되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역시 생물처럼 끝없이 진화해야 한다. 이런 끊임없는 변화 발전이 없다면 바로 그것이 죽은 자유민주주의이다.



이런 진화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바로 정치계이며 정치적 투쟁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정치계라는 것은 결코 특권을 지닌 자리를 어떻게 분배하는가를 따지는 제도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정치계가 바로 이런 특권의 분배에 몰두하기에 자유민주적 시민들은 이에 등을 돌리기에 이르렀다. 정치계란 정치를 발전시키는 투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그런 정치의 발전이란 국민의 자치라는 기본적 정신을 더욱 더 잘 실현한 구체적 제도를 찾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4 사상의 자유

얼마 전 어떤 자칭 진보주의자는 진보도 헌법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 역시 현존하는 헌법 즉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절대화하는 주장이어서 지탄을 받은 바가 있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권은 이번 명령으로 현존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고정된 실체로서 그리고 불변하는 것으로서 즉 ‘자유민주주의’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권은 이를 부인하는 것을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만들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와 같은 명령은 곧 자유민주적 질서로서 기본권인 사상의 자유에 대한 탄압을 의미한다. 이런 질식할 듯한 명령처럼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고 심지어 자유민주주의를 고사시켜버리는 반 자유민주적 명령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박근혜 정권 역시 사상의 자유가 왜 중요한 지를 잘 알지 못한다. 자칭 자유주의자들은 자유라는 기본권 자체를 두려워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 사상의 자유만은 감히 무서워 접근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나 자유민주적 질서가 발전하기 위해서라도 더 적합한 제도들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하고 토론하고 발표하는 사상의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만일 그런 자유가 불온하다고 해서 틀어막으려 한다면 그 사상적으로 질식할 듯한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런 나라는 조선 시대에서 보듯이 썩고 문드러져 마침내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자들은 사상의 자유만은 결코 허용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역사의 발전이 두려워 쥐구멍으로 숨어버리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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