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자유게시판
김창호 회원 출판기념회 공지
hanphil 2009.11.03 1436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이번에 ‘다시 진보를 생각한다’ 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고,
존경하는 선생님들을 모시고, 출판기념회 및 토론회를 열고자 합니다.
바쁘시더라도 꼭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 주시기 바랍니다.

          - 일시 : 2009년 11월 10일(화) 오후 6시 30분
          - 장소 :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 순서 :
                    축사              이재정 (前 통일부장관)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석좌교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조   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토론자            박순성 (희망과 대안 공동운영위원장, 동국대학교 교수)
                                        김민전 (경희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진행)
                                        정상호 (명지대학교 국제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김창호 (연구공간 우연재 소장, 前 국정홍보처장)
                                                         前 국정홍보처장         김  창  호  올림
                                                         http://truthpower.tistory.com
                                                         kimch2483@gmail.com
                                                         硏究空間 宇淵齋 02 ? 586 ? 7114-5
    
                                                        ※ 화환은 사양하며,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김창호 저, <다시 진보를 생각한다> 서문

우리 사회의 근본프레임을 바꾸는 진보와 민주주의를 위해

2009년 5월 23일 아침, 습관적으로 틀어 놓은 TV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안위에 관한 보도가 자막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이은 한 통의 전화는 믿고 싶지 않은 사태를 전해왔다.

인간 노무현이 서러웠고, 우리 역사가 서러웠다. 우리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야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삶 자체가 서러웠고, 그러한 개혁을 한 번도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 우리의 역사가 서러웠다.

봉하로 가는 동안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한 지난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되살아났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한 시간들은 필자에게 자랑스러우면서도 고통스러운 기간이었지만, 그 역사를 이제 추억으로 넘기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필자가 국정홍보처장으로 임명되기 전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공석에서든 사석에서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당시 국정홍보처장은 참여정부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인 언론과 정부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정책의 소통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언론과의 건전한 긴장관계’를 실무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자리였다. 한마디로 정책과 정치에 대한 복합적 판단을 요구하는 자리였다.

이와 같은 일을 하다보면 기존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특권적 보수언론과의 갈등이 불가피했고, 그들의 정파적 공격을 견뎌 내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대통령과 아무 인연이 없던 필자에게 이런 직책을 맡아 참여정부에서 3년간 일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3년간 정부의 주요한 회의에 대부분 참석하여 정책이 어떻게 제기되고 또 수립되는지, 그리고 그 정책이 여론과의 소통과정에서 어떻게 추진되는지를 필자는 직접 참여하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전직 언론인으로서 외부에서 관찰만 하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경험이었다. 더욱이 사회정치철학 전공자로서 대통령의 철학을 현장에서 공유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진보지식인으로서 어떤 진보적 정책 대안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를 경험했던 것은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기백 있는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은 윤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언제나 정당함을 추구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정당한지, 스스로 당당한지 끊임없이 자문하곤 했다. 대신 특권과 비합리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타협적으로 대응했다.

이처럼 윤리적, 정치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사물에 대한 인식도 애매하거나 모호한 것에 숨어 적당히 넘어가려 하지 않았다. 인식론적으로도 핵심을 바로 치고 들어가는 거침없는 사고방식을 지녔고, 핵심을 에둘러 접근하거나 모호하게 타협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본질적으로 사고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추구했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추상적인 주장이나 애매한 결론은 스스로 용납하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기백 있는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어찌 쉬운 일이었겠는가. 애매한 주장과 정책 속에 숨어 있는 기득권의 구조를 해체하는 일은 언제나 갖가지 저항에 부딪히기 마련이었다. 보수언론은 이러한 시도들을 참여정부에 대한 정치적 공격으로 동원하고, 이에 편승한 정치세력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임기말 참여정부에서 일했던 실세 정치인들마저도 언론정책 등을 놓고 대통령의 ‘양보’를 요구했다.

이들에게 정치적으로 정당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추구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누리던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그것이 그들에겐 언제나 불편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2007년 후반기로 들어서면서 이른 새벽에 대통령의 목소리를 듣는 횟수가 늘어났다. 물론 대통령은 당시 보수언론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고 있던 필자를 위로하고 국정홍보처를 격려하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울림이 좋은 대통령의 목소리에서 느낀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적지 않은 장관들이 이미 보수언론을 통해 본격적인 커밍아웃을 시작했고, 고위직 인사 중에서도 그의 언론정책과 통치철학을 불편해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대통령의 당당한 목소리에서 대통령의 서운함과 외로움, 그러나 자신의 원칙과 철학을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짙게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통령의 죽음으로 필자는 얼마간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당성에 기반을 두는 정치와,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대통령의 경우처럼 결국 스스로 목숨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대통령과 더불어 자부심을 갖고 일해 왔고,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고통과 어려움을 불가피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엄혹한 현실은 그 때까지만 해도 실감할 수 없었다.

대통령이 하나의 결정을 하기 위해 실존적 생존을 걸고 얼마나 치열하게 고뇌했는지, 필자는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필자를 가장 가슴 아프게 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는 유서였다. 죽음을 결정해야 하는 절박한 순간을 \읽고 쓰는 일\로 표현했던 것은 그만큼 대통령이 쓰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이 꼭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의 근본 프레임을 바꾸는 진보와 민주주의를 위한 교과서를 꼭 쓰고 싶다”고 했고, 이를 위해 그는 오랫동안 이런저런 구상을 해 왔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대통령의 절박한 목표였는지 필자는 가까이에서 지켜보아 왔기 때문에, 이를 완수하지 못한 대통령의 회한이 죽음을 앞두고 얼마나 절절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특히 이런 저런 이유로 대통령의 마지막 희망을 흔쾌하게 도와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2008년 12월 필자가 캐나다에서 귀국하여 만났을 때 대통령은 무척이나 반갑게 맞아주면서 “공부나 하자”고 제안하였다. 검찰의 수사로 더 이상 방문객을 맞이할 수 없다고 선언한 시점이었다. 절박한 정치적 상황을 그는 오히려 치열한 공부의 동력으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12월 중순부터 집필 준비를 본격화했고, 필자는 그 작업을 보좌하기 위해 봉하를 자주 방문했다. 몇 차례의 1박 2일 토론회를 거쳐 2009년 1월 31일 목차 구성을 위한 토론에서 대통령은 “진보의 시대를 대비한 미래 담론을 준비하고 선투자 후복지, 성장 중심의 50년간 이어 온 보수주의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싶다”며 자신의 구상을 정리했다.

그는 평소에도 국정홍보처에서 집필 제작한 《대한민국 교육 40년》, 《대한민국 부동산 40년》, 《참여정부 경제 5년》 등 3부작에 대해 특별한 애착을 가졌다. 그리고 자신의 정책적 경험을 기반으로 ‘진보의 미래’에 관한 책을 쓰고 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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