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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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은 유죄인가(펌)
김세균 2004.04.07 4497
[시론]송두율은 유죄인가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제24부는 송두율 교수에게 비록 실권이 없는 명예직이지만 북한으로부터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적이 있고, 저술활동을 통해 ‘북한을 위한 지도적 임무’를 수행한 데다 진지한 반성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7년 징역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정치국 후보위원 선임 문제와 관련하여 신빙성을 결여한 황장엽의 전언과 이른바 ‘김경필 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함으로써 사법적 판결의 신뢰성을 좌지우지하는 ‘증거주의’ 원칙을 무시했다는 문제점을 노출했다. 나아가 송교수의 저술활동과 관련하여 학문·사상·양심의 자유라는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심대하게 침해한 판결이라는 비판을 면할 길 없다.


재판부는 “학문, 사상, 양심의 자유 등이 인간의 내적·정신적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외부적인 활동으로 나타날 경우 국가안보 등을 위하여 제한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런데 자신을 외부적으로 표현할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자유가 대관절 무슨 자유이겠는가? 이 점에서 재판부의 이런 판시는 인권 억압적인 국가보안법에 의한 국민기본권의 제한을 정당화한 것에 불과하다.


-학문자유 침해한 월권판결-


재판부는 ‘내재적 접근법’에 의거한 송두율 교수의 북한관련 저술이 심한 북한편향을 노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학문의 문제는 어떠한 법적 처벌의 위협을 받지 않고 자유토론을 행할 수 있는 학문의 법정에 맡겨야 할 문제이지, 법적 처벌의 주관부서인 사법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 그 때문에 사법부가 학문의 법정이 맡아야 할 문제에 대해 왈가불가한 것 자체가 이미 월권이자 학문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인 침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송두율 교수의 내재적 접근법은 한마디로 ‘내재적 이해에 기초한 내재적 비판’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런 연구방법론이 물론 다른 모든 연구방법론들과 마찬가지로 그 나름의 장·단점을 가지겠지만, 유력한 사회과학 연구방법론의 하나라는 점은 학문세계에서는 공지의 사실이다. 내재적 접근법에서는 ‘내재적 이해’가 ‘내재적 비판’의 전제를 이룬다. 이 때문에 송교수가 행한 북한사회에 대한 내재적 이해는 그것만으로도 학문적인 연구성과로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더욱이 송교수는 애초에는 ‘내재적 이해’에 선차성을 부여하는 학문적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북한을 내재적으로 이해하는 데서 더 나아가 내재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탁월한 관점들을 한층 더 정교하게 발전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송교수의 북한사회에 대한 내재적 이해만을 문제삼으면서 그의 학문적 저술을 북한체제를 찬양하거나 주체사상을 옹호하는 정치적 저술로 폄훼했는데, 이런 평가는 송교수가 내재적 이해의 방법에 따라 행한 학문적 업적에 대한 반학문적 비방이자 송교수의 북한연구 발전 궤적을 무시한, 그의 학문적 저술에 대한 일면적 평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재판부는 송교수의 북한관련 저술활동을 ‘북한을 위한 지도적 임무 수행’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런 강변은 사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백보를 양보해 재판부의 다른 주장들이 모두 옳다고 할지라도 재판부 자신이 강조한 ‘지도적 임무 수행에 대한 합리적 해석’을 넘어서는 송교수의 저술활동에 대한 가장 매카시적인 비방이라는 문제점을 지닌다.


-국보법 폐지 필요성 절감-


총괄컨대, 송두율 교수의 저술활동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은 법률에 의한 학문, 사상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인’ 제한을 옹호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런 법적 제한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학문적 저술을 학문외적인 공안적 시각에 따라 재단하고, 그것도 재판부 자신이 강조한 ‘합리적’ 해석의 선을 넘어서는 판결을 내렸다는 점에서 인권존중이라는 시대적 요청을 수용하기를 거부한, 이 시대의 대표적인 수구적·매카시적 판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판결은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러한 수구적·매카시적 판결을 가능케 하는 국가보안법 폐기의 절박성을, 국가보안법의 그늘에서 수구동맹의 최후 보루 역할을 담당해 온 공안당국과 사법부 개혁의 필요성을, 송두율 교수를 포함한 모든 양심수 석방의 정당성을 역으로 일깨워준다. 이 계기를 살려 역사를 진전시키는 것은 양식 있는 모든 이들의 몫이다.


〈김세균/서울대교수·정치학〉



최종 편집: 2004년 04월 07일 18:5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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