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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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진보지식인과 진보언론의 비열함
이병창 2012.06.03 656
일부 진보언론, 진보지식인의 비열함



최근 한 달여 동안 일부 진보언론과 진보지식인들이 통합진보당 구 당권파를 비판하는 방식을 보면 정말 목불인견이라는 말 그대로이다. 나는 믿지 않지만 그들이 정말 일부 진보언론과 진보지식인이 말하는 그대로 부정을 저질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그렇다. 그 가운데 폭력이 저질러졌고 사과도 없다고 하자.



싸움도 상대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을까? 진보언론과 진보지식인들은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후를 따져도, 아니 가깝게는 박정희 시대부터 독재정권과 투쟁해왔다. 이런 투쟁 가운데 진보언론과 진보지식인들에게 공동목표를 지녔던 수많은 동지들이 생겼다. 서로 어깨를 맞대고 서로 같이 최루탄을 맞으며 서로 같이 곤봉에 두들겨 맞으며 같이 고문도 당했고 같이 감옥에서 먼 하늘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이런 동지들이 잘못했다고 하자. 이번 부정선거와 폭력행위에서 저질러졌다는 잘못이 민중을 착취하고 민중을 억압했던 적들의 잘못보다도 더 큰 잘못인가? 광주에서의 죽음을 생각해 보자. 그 수없는 의문사를 생각해 보자. 성고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수천 수백억씩이나 저질러졌던 부패를 생각해보자. 아직도 저질러 지고 있을 그 수많은 비리와 부패 부정을 생각해 보자.



그런데 동지들의 잘못이 정말 이런 짓을 저지른 적보다 더 한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진보언론과 진보지식인이 소위 잘못을 저질렀다는 동지들에 대한 태도는 정말 적에 대한 비판보다도 더 엄청나다.



이미 ‘종북파’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을 때부터, 이 말 자체가 사실은 동지를 비판하는 정도가 아니라 동지를 국가보안법의 손에 집어 넣으려는 비열한 음모를 깔고 있다고 나는 비판해 왔다. 이것은 일제시대 조선공산당이 파쟁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일제경찰에 밀고했던 것과 무어 다르겠는가?



충분한 사실 규명도 없이 무작정 엄청난 부정이 저질러졌다고 언론에 고발한 진상조사위원회의 태도가 동지들의 등에 칼을 꼿으려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잘못을 해결하는 데 상대를 존중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



최근 나오는 수많은 비판은 경쟁적으로 구 당권파를 조롱하고 협박한다. 그런 비판 중에는 ‘종북파’라는 단어와 마찬가지의 의도를 깔고 있는 악랄한 표현들도 상당수 있다. 그런 비판은 지금 호시탐탐 진보주의자들을 탄압하려하는 검찰의 손아래 구 당권파를 밀어 넣으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나는 여기서 그런 표현들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겠다. 교활하고도 악의적인 유시민 전 대표의 표현만 예를 들어 보자. 그는 이정희 대표를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고 구당권파가 사용하는 물건정도 취급한다. 그래서 이정희 대표를 동정한다면서도 사실은 인간 이정희를 부정한 것이다. 교활한 표현이다. 그런 후 수십억의 국고지원이 불투명하게 사용되었다고 그는 진보론언론에 공개적으로 고발한다. 그것은 검찰보고 조사해 구당권파를 감옥에 집어넣으라는 말과 같지 않는가? 전대표가 이토록 악의적인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가? 대표로서 그는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도대체 진보주의자들이 공개적으로 과거 동지들을 비난하는 일종의 밀고대회를 여는 것을 보면 정말로 이게 진보주의자들인가 의심스럽다. 이들의 표현을 여과 없이 상대의 해명을 기다리지도 않고 그대로 발표하는 진보언론은 각성해야 한다. 이런 담합이 어디 있으랴, 진보언론은 그 비판적인 기능을 상실했다. 진보언론은 진보지식인과 마찬가지로 적과 동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동지들이 얼마나 잘못했는가? 동지들을 적의 손에 넘겨주면 진보가 다시 살아나는가? 동지들이 정말 청산의 대상인가? 동지들에 대한 비판은 궁극적으로 동지들이 진보의 올바른 길을 다시 가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그들 혼자서 진보를 꾸려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구당권파 지도자를 처단하면 그 나머지 그들을 지원했던 수많은 당원들은 그냥 물건처럼 손으로 줏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식으로 동지들을 비열하게 처단하고 나서, 국민들에게 호소하면 국민들은 박수를 쳐줄 것인가?



다시 길을 함께 하려는 목적으로 지닌다고 한다면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지를 존중하면서 실천과 모범을 통해서 동지를 설득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먼저 잘못을 고백하고 고쳐 나가면서 동지들이 자연히 따라오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우선 다짜고짜로 동지를 적의 단두대에 처넣고서야 어떻게 그 동지들을 교정하고 동지들을 다시 보겠는가? 나는 그들의 비열함 때문에 참담한 절망감에서 잠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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