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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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호 2006.08.14 2726
대중성과 전문성 사이에 운동성이란 글을 읽으면서
사상과 과학의 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덕이란 명제는 모세의 십계명이나 공자의 인의 사상을 기준을 설명하는 것에 진위에 관계없이 오늘날까지 확대 해석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도덕적인 확대가 발달하였다는 것 보다 부패라는 상반되는 개념도 같이 발달되어왔다는 것을 집고 넘어가고자 한다.

이는 부패가 도덕의 미완성에서 생긴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논어나 노자와 같은 고전의 확대해석으로 이어져 오는 과정에 동양철학이 정립되어 왔다.

여기서 관점의 전환을 해본다면,
부패가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음은 도덕 그 자체가 절대성이나 완성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덕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이는 역할이다.

역할은 항상 대치되는 것이 존재하거나 구성체가 다양성이 있어야 생긴다.
이를 과학의 논리로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와 (-)가 존재하는 이유는 운동성을 만들기 위함이다.
이는 운동을 만들기 위한 역할이며 그 운동성이 생명력인 것이다.

(+)      - 운동성, 생명 -   (-)
선                                악
도덕                           부패
평등                          불평등
균일                          불균일

위와 같이 선, 도덕, 평등을 추구하지만 이는 생명력인 운동성을 만들기 위한 역할에 머문다.
이는 평등을 이루면 불평등해지려는 방향성이 만들어지는 반복에서 운동성이 생기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역할에 의해 도덕이 부패를 없애거나 선이 악을 없애는 일은 생길 수없다.


이처럼 과학적 논리로 보면 모순은 명확한 원인이 있다.

모순에 대한 예로 법이 공평하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는 모순일것이다.
그 원인은 평등이란 개념이 인간의 역할이 아닌 인간자체의 평등으로 해석되어온 사상의 모순에서 생긴 까닭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

위에서 보듯이 평등은 불평등과 항시 존재한다.
그리고 운동성으로 본다면 평등이 생명력을 얻기위해서는 평등에 머무는 것이 아닌 불평등으로 평등을 얻음이다.
법이 평등이 생명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불평등으로  얻을 수 있다.

즉, 사람이 아닌 역할에 따른 차등적인 법의 불평등이 평등인것이다.
그래서 법도 역할이므로 생명성을 갖기위해 차등적이고 불평등하다.
단지 대상이 바뀌어 이를 우리가 법이 불평등하다고 생각하게된 원인이다.

즉 관점의 변화로 본다면 유전무죄와 같은 법의 유동성은 모순이 아니라 그 간의 사상이 모순을 가진 탓에 생긴 결과인 것이다.

사상은 현상에 대한 인간의 인식으로 만들어졌다.
현상은 자연의 모든 입자가 생성되고 해체되는 순환성에서 생긴다.
그리고 인간의 인식은 인간을 구성하는 입자들의 정보순환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사상과 과학은 근원적인 요소가 같은 것이다.

전문성의 추구는 불평등이며 보편성이란 평등일 것이다.
이는 그 목적이 평등이나 불평등이 아닌 반복을 통한 문명발달에 있다.
그리고 그 반복이 생명인 까닭에 과학과 사상은 생명이라는 운동성에 구성된 하나의 역할이며
이는 본질적으로 과학과 사상이 다르지 않음이다.

모순은 우리가 항시 접해오면서 이제 그 모순마저 수용하려는 과정에 있으나 이는 수천녀간 지속되어온 고정관념이 만든 결과이다.

균형이란 물질의 순환인 운동성에서 생긴 일시적인 현상으로 불균형으로 생명성을 갖는다.
물질의 순환이란 이럴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가 아닌 비판이란 분별작용을 통한 순환을 목적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관용과 중용사상은 그 자체가 모순이며, 죽은 사상이다.

죄가 밉지 사람이 미운가?
죄 없는 자가 없다는 중재론은 모두 중용사상의 결과이다.
이는 비판을 죄악시하는 감성을 사람들에게 만들었다.
그러나 체제가 변해오면서 이 말의 혜택을 받은 사람은 모두 기득권자인 것도 중용이 가진 모순일 것이다.
그 원인은 고전이 체제유지를 위한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사상이 발달하였다고 보는 관점보다 고전의 이러한 단점이 지금도 지속되는 것은 고전의 비판이 아닌 절대적인 수용의 결과이며,
이를 확대 해석만 하여왔다는 것에서 해석됨이 필요하다.

부족한 글이지만 사상 연구에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취지였습니다.

이를 가입인사로 대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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