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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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성과 무한> 읽기와 쓰기
문성원 2016.05.31 9
문성원 교수님, 올려준 글 <전체성과 무한>을 잘 읽었읍니다.
그런데 오히려 레비나스의 생각에 대해 많은 의문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내가 나름대로 레비나스의 글을 읽고 정리해 보았어요.
논점은 왜 타인의 얼굴이 문제가 되는가 입니다.
둘째로 왜 타인의 죽어가는 얼굴 앞에서 우리는 무한한 책임을 느끼는가 하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지만 레비나스의 입장을 더 정확히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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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나스의 죽어가는 얼굴>


레비나스의 출발점 역시 개인의 삶은 타자를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그는 현상학적인 직관 개념을 이용하여 타자의 얼굴 속에서 타자의 실존적 지향성을 직관한다. 타자의 실존은 나의 실존에서는 파악되지 않는 것이며 그러므로 나에게는 심연, 무, 타자에 해당된다. 나의 실존과 타자의 실존 사이의 이런 관계는 사르트르가 지향적 시선이 타자의 지향적 시선에 의해 무화되는 관계와 유사하다.

그런데 나의 실존과 타자의 실존이 부딪히는 경계에 타자의 얼굴이 있다. 타자의 얼굴은 타자의 실존이 드러나는 흔적이다. 이 흔적은 물론 온 몸에서도 드러날 수 있는데 레비나스는 왜 하필이면 얼굴에 주목하는 것일까? 아마도 레비나스는 얼굴이 지닌 특수한 지위를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얼굴은 그 자체 자기를 부정하고 그 배후의 것을 표현하는 표현적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특수적 지위 때문에 타자의 실존은 얼굴에서 가장 탁월하게 드러난다.

나 자신의 실존에서나 타자의 실존에서나 얼굴은 곧 실존의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실존을 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얼굴은 실존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로서 독자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실존이 다시 되 살아나는 경우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죽음 앞에 서 있는 경우이다. 하이데거 같으면 불안의 상태일 것이며, 사르트르 같으면 곧 구토의 상황일 것이다. 나치에 의해 포로 수용소에 갇혔던 레비나스는 실제 죽음 앞에서 있는 경우를 들고 있다. 바로 이 경우 그에게 실존이 다시 살아난다. 이제 그의 얼굴은 죽어가는 얼굴이 되며, 거꾸로 본다면 그의 실존이 다시 살아나는 얼굴이 된다.

물론 레비나스의 입장에서 죽어가는 타자의 모습이 반드시 얼굴에 나타나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얼굴은 실존의 특권적인 흔적일 뿐이다. 또한 그에게서 죽음이 굳이 실질적인 죽음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타인의 죽음은 상징적 죽음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더 탁월한 이해가 아닐까 생각한다.

죽음과 실존의 관계는 이미 하이데거가 선구적으로 분석한 적이 있다. 타자가 나의 실존이 부딪히는 무라는 것 역시 사르트르가 주장한 바가 있다. 레비나스 철학의 독자적인 지점이 있다면 타자의 죽음 앞에서 발생하는 나의 연대감이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죽어가는 얼굴 앞에서 나는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고 한다. 그 책임은 타자에 대한 환대라는 윤리적 태도를 발생시킨다. 레비나스에게서 책임과 환대라는 이 윤리적 태도의 근거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대학시절부터 레비나스와 우정을 교환했던 모리스 블랑쇼의 죽음(실존)의 공동체라는 개념을 고려해 본다면,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타자와 나는 이 소외된 세계 속에서 실존을 망각한 채 살아간다. 블랑쇼는 타자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을 촉발시킨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블랑쇼는 죽음의 공동체가 성립하며, 이는 곧 실존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니 실존의 공동체가 될 것이다. 블랑쇼의 실존의 공동체라는 개념은 레비나스의 고유한 입장을 이해하는 데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타인의 죽음 앞에서 내가 책임과 환대의 윤리를 느낀다는 것은 곧 타인의 죽음 앞에서 나의 실존이 회복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책임과 환대의 윤리적 태도는 곧 실존적 윤리의식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블랑쇼와 마찬가지로 레비나스 역시 왜 타자와 나 사이에 이런 공동체적 연관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나의 실존이 이미 타자의 실존을 바탕으로 성립하고 타자의 실존 역시 나의 실존을 바탕으로 성립한다는 나와 타자 사이의 실존적 연관을 직접적인 연관으로 이미 전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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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부산대학교 인문학 연구소에서 발표한 발표문과 ppt자료입니다. 레비나스의 주저 <전체성과 무한>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해석 글이지요. 논문 형태가 아니라 읽기 어렵진 않을 겁니다. <전체성과 무한> 번역본이 아직 나오지 않아, 이런 발표를 하기가 좀 부담스럽습니다. 번역은 거의 완성된 상태니 금년 아니면 내년 초엔 번역본이 꼭 나올 겁니다.^^ 아, ppt는 용량 때문에 올라가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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