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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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법치주의 - 왜 사법철학(司法哲學)인가
미래를여는책 2008.05.16 2745


퇴계와 법치주의
                 - 사법(司法)의 철학


  

  왜 사법철학인가


오늘날 퇴계학은 새로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퇴계학의 영역을 확대하는 작업이다. 지금까지 퇴계는 대체로 문학, 역사, 철학 등 인문학의 영역 내에서 논의되어 왔다. 퇴계를 말하는 자는 주로 인문학자들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퇴계는 오늘날의 학자들처럼 ‘전공’에 갇혀 있었던 사람이 아니며, 또 ‘상아탑 속’ 이론가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시대 현실에 고민하였고 현실의 변화를 기획하였던 실천사상가였다. 이러한 퇴계임을 상기할 때, 우리는 무엇보다 퇴계를 강단 인문학의 울타리에서 해방시킬 필요가 있다. 퇴계학을 보다 ‘현실과 밀접한 학문의 영역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퇴계의 사상이 인문학 밖에서도 타당하다면 가장 근사한 분야는 어디일까. 필자는 법치 분야, 그 중에서도 ‘사법(司法)’의 영역이 아닐까 생각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근거는 이렇다.

첫째는, ‘理發說’을 중심으로 하는 그의 理철학이 주는 메시지 때문이다. 퇴계가 자신의 철학에서 중심 범주로 삼았던 理는 사법의 이념인 ‘정의(正義)’를 표상하는 성리학상의 개념이다. 중국과 조선을 막론하고 기라성 같은 성리학자들 가운데서 (주희까지도 포함해서) 理를 가장 적극적으로 인식한 사람이 바로 퇴계이다. 그는 ‘현실’을 징표하는 氣 개념과 대비하여 理의 절대적 우월성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理는 귀하고 氣는 천하다.”
“理는 氣를 부리는 장수요 氣는 理를 따르는 졸병이다.”
“理는 지극히 높은 존재여서 사물(氣)에 명령을 내릴 뿐 사물로부터 명령을 받지 않는다.”

나아가 그는 理의 운동성까지 주장하였다. 이는 퇴계가 理가 지배하는 사회, 정의가 살아 숨쉬는 사회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사법의 영역에서 이는 ‘사법적극주의’를 뜻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둘째는, 퇴계의 敬사상이 주는 메시지 때문이다. 퇴계는 정의의 이념인 ‘理’는 敬에 의해 현실화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퇴계는 理를 높이고 강조하는 것 뿐만 아니라 敬의 실천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보았다. 理의 인식과 敬의 실천을 ’수레의 두 바퀴’요, ‘새의 두 날개’라고 하여 함께 강조하였다. 퇴계가 중요시한 이 敬이 바로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양심’의 실천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헌법 제103조를 보자.

“《헌법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敬이 없이 理의 실현이 있을 수 없듯, 법관이 양심을 저버릴 때 법정에서 정의는 결코 구현될 수 없다. 한편 敬은 그 자체 목적으로서의 덕목이 아니라 理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실천 윤리라는 점에서, 만약 ‘절차적 정의(正義)’라는 개념을 인정한다면 敬이 바로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셋째는, 퇴계 말년의 대표적 저술인『성학십도(聖學十圖)』가 주는 메시지 때문이다. 『성학십도(聖學十圖)』는 성리학의 이상적 인물인 ‘성인(聖人)’에 이르는 길을 열 폭의 그림과 글로 표현한 것이었다. 여기서 ‘성인’은 인간의 본성에 주어진 理를 현실화시키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성인’은 理의 구현자, 풀어 쓰면 ‘정의(正義)의 구현자’이다. 바로 법관의 이상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칼 포퍼의 기준에 의하면) ‘성인’이 열린 사회 리더쉽의 표본임을 생각할 때는 이 성인을 이념으로 하는 사법 시스템은 ‘열린 사법’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성인의 철학은 배심제의 형이상학적 근거가 된다.

이상의 단서를 근거로 퇴계의 사상을 ‘사법철학(司法哲學)’으로 구성할 수 있다면 이는 퇴계학의 현대화 작업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는 동시에 대한민국 사법의 올바른 전개를 위해서도 의미 깊은 작업일 수 있다. 생각해보자. 우리에게 ‘사법철학’이라는 게 있었던가.
이는 소위 법조삼륜(法曹三輪)이라 하는 한통속 차원의 두루뭉술한 법조집단의 윤리, ‘법조윤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법조 내에서도 검찰과 변호사 집단과도 다른 사법부의 철학, 변화하는 대한민국의 질서 속에서 사법의 독자적 정체성과 역할을 성찰하고 사법의 이상적 모델을 주체적으로 모색하는 노력 말이다. 근래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런 말을 했다. “국민은 법조 3륜(법원, 검찰, 변호사)을 한통속으로 본다. 그렇게 되면 법조 전체가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 지당한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사법이 독자적 정체성을 가지고 올바른 법조문화를 선도할 때야말로 대한민국의 법질서가 살아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법철학의 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근대 사법체계가 도입된 지 어느덧 100년이 넘었다. 일제와 독재, 그리고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법관들은 정치권력 앞에서는 시녀로 굴종했고 국민들 앞에서는 오만한 특권층으로 군림했다. 그들에게 사법철학이라는 게 있었던가.

“정권이 폭압적이었다고 하지만, 판검사로 상징되는 사법부는 결코 권력의 희생양이 아니었다. 일제시대 이래 그들은 스스로 권력의 주체로 우뚝 섰다. 어려서부터 ‘영감’이라고 불리던 이들 판검사는 두려움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공무원으로서의 판검사가 얼마나 많은 월급을 받았으랴마는 그들은 언제나 최고의 명예와 부를 향유했다. 그것은 억지로 쥐어짜낸 민중의 피눈물이 아니었다.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만 해도 빌빌거리다가, 시험에 합격하는 순간 이들은 신분이 수직 상승하여 즉시 권력 최상층부에 편입되었다. 그들은 시험에 합격하는 순간 또 하나의 깡패로 거듭났을 뿐 결코 민중을 위해서 헌신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담뚜의 유혹을 즐기고, 민중을 호령하는 권세를 즐기는 천박한 속물에 지나지 않았다.”

민주화가 되자 이번에는 자본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있다. 어느 현직 법관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 다시 독재권력이 들어선다면... 우리 대법원은 또 다시 권력의 시녀가 될 것이다.” 아니 이미 그들은 또 다른 권력의 시녀가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 권력’의 시녀,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상기하게 하는 근래의 몇몇 판결은 민주화된 시대에도 사법의 일그러진 모습은 본질적으로는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 주고 있다. 하여 법률기술자가 아닌, 정치의 시녀가 아닌, 자본(돈)의 하수인이 아닌 국민을 위한 법치의 수호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사법철학’의 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필자는 본다.
요즈음 사법개혁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그 이전에 필요한 것이 사법철학의 정립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것은 과거 사법부 오욕과 시련의 역사와 결별하고 새로운 사법의 역사를 열기 위해서이며, 궁극적으로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사법부로 거듭나기 위해서이다. 민주주의 시대 국가3권 중에서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유일한 권력이 사법권이다. 더구나 오늘날 사법부의 막강한 위상은 사법부 자신의 노력과 성취에 의해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과 투쟁의 산물이었다. 그들은 그 변동의 물결에 무임승차한 것 뿐이다. 과거 독재 정권 시대에는 ‘정치의 시녀’ 소리를 들어도 독재자에게 핑계를 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민주화가 된 지금 사법부는 스스로의 이름으로 역사 앞에 바로 서지 않으면 안된다. 사법철학이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법제도의 개혁,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다. 사법에 대한 신뢰는 법관에 대한 신뢰에서 오며, 사법의 질은 법관의 질이 결정한다. 사법부는 지금 메시아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퇴계는 말한다. 그 메시아는 바로 그대들 자신이라고.
퇴계는 16세기 당시 타락한 훈구파 세력에 의해 정의가 유린될 때 시대를 구원할 세력으로 사림 세력을 주목하고 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 “선비(士)야말로 나라를 지탱하는 근본적 생명력(元氣)이 깃든 곳이며, 도덕과 정의(禮義)의 원천이다.” 만약 퇴계가 21세기 법치주의가 지배하는 오늘의 시대에 살고 있다면 다시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싶다.

“법관이야말로 법치국가를 지탱하는 근본적 생명력(元氣)이 깃든 곳이며, 도덕과 정의(禮義)의 원천이다.”


                                  

                 1. 왜 사법철학(司法哲學)인가

                 2. 퇴계의 理發과 사법적극주의
                    (1) 사법의 이념(정의)과 理
                    (2) 사법의 본질과 理 개념의 구조적 유사성
                    (3) 理發과 사법적극주의

                 3. 敬의 철학과 헌법 제103조의 ‘양심’
                    (1) 敬 - ‘절차적 정의(正義)’의 성리학적 표현
                    (2) 법관과 敬
                    (3) 헌법 제103조의 ‘양심’에 대한 해석

                  4.『성학십도』의 법철학적 의미 - 법관의 이념형
                    (1) 서(序) - 정의로운 인간의 길
                    (2) 『성학십도(聖學十圖)』란 무엇인가.
                    (3)『성학십도(聖學十圖)』와 21세기 대한민국의 법치주의
                    (4) 열린 사법을 위하여

                           .........이상, <<헌법의 눈으로 퇴계를 본다>>, 미래를 여는 책, 2008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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