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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절된 학문 넘어 세상을 온전하게 사유하기
hanphil 2008.01.05 3093
분절된 학문 넘어 세상을 온전하게 사유

                                                                                 한승동 기자, 한겨레, 2008. 1. 5.  

〈이분법을 넘어서〉장회익 최종덕 지음/한길사

물리학자-철학자 통합적 사유 담긴 대담집/ 생태파괴 시대 극복할 실천적 규범 모색
생명매커니즘 이해 깊어지면 인간 삶 달라져

“아직도 우리의 전통규범들은 너무도 인간중심적이에요. 물론 일부 종교에서는 신중심적이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도 신 자체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역시 인간중심적 시각을 못 벗어나고요. 이것은 결국은 인간중심적 문명을 만들어 생태적 파멸을 자초하지요. 문제는 이러한 인간중심주의가 생태적 파멸로 연결되고 있음을 충분히 못 느낀다는 거예요. 그래서 한 가지 방식은 그들이 태산같이 믿고 있던 기존의 규범과 윤리를 깨뜨리는 거예요.”

한국 물리학계를 대표하는 장회익(사진 오른쪽) 전 녹색대 총장. 물리학에서 메타과학, 철학으로, 다시 생명과학으로 나아가 모든 학문분야가 접는 부채의 연결고리처럼 하나로 연결되는 ‘온생명’이라는 독창적 개념을 창출한 그는 우리가 흔히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하는 것을 ‘낱생명’이라고 일컫는다. 모든 낱생명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고 물과 공기, 흙과 태양 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들 낱생명의 생명활동을 뒷받침해주는 것들이 ‘보생명’이다. 이들도 무생물이 아니라 생명으로 본다는 점이 중요하다. 온생명이란 낱생명과 보생명이 합쳐진 전체를 가리킨다. 보생명 없이 살아갈 수 없는 게 인간인데도 보생명을 죽인다면 자멸은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장 전 총장과, 대학시절 물리학을 전공했다가 철학 쪽으로 방향을 바꾼 뒤 독일에서 과학철학으로 학위를 받고 한의학과 생물학에까지 관심영역을 넓혀온 최종덕(사진 왼쪽) 상지대 교수가 ‘안다는 게 무엇이며, 과학과 철학은 어떻게 만나고, 패러다임의 전환은 어떻게 이뤄지며, 생명, 그리고 동-서양과 의식-물질에 관한 통합적 사유란 어떻게 가능한지’에 관해 종횡무진으로 펼친 ‘고담준론’이 〈이분법을 넘어서〉(한길사)라는 대담집으로 묶여 나왔다. 그들의 대화는 제목이 시사하듯 환경·생태 파괴와 생명과학, 교육 문제 등 지식·사유의 분절에서 비롯한 위기적 징후들에 대처하기 위한 절박한 실천적 규범 모색과 묶여 있다.

두 사람은 ‘도덕’이라는 실천적 규범이 생명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장 교수는 도덕을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요인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온생명의 사유구조는 생명의 세계를 온전하게 인식하자는 데 있는 것이고 이러한 온전한 인식으로부터 사회적 행위 곧 도덕에 관련된 실천적 규범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최 교수에게도 도덕은 선험적인 이론화 과정이나 사회화된 거대 약속을 통해 생산된 것이 아니라 “사회화된 집단의 종 보존을 위해 최적화된 삶의 양식으로 진화하여, 나중에 문화적으로 묶이고 정리되고 규범화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만일 사회와 인류 그리고 온생명을 제대로 파악해서 존재론적 위상에 따라 행동한다면, 이것이 곧 도덕적 행동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자연파괴나 도덕적 타락은 자연이나 생명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 말하자면 세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데서 비롯되며, 따라서 자연과 생명 메커니즘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깊어갈수록 그런 위기회피 또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여지도 커진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는 뉴턴적 고전역학, 상대성 이론, 엔트로피, 양자역학 등 새로운 개념이 등장할 때마다 인식이 폭발적으로 확장됐다. 이들 녹록지 않은 자연과학적 개념들은 이 분야에 정통한 두 사람의 관록 덕에 풍부한 비유와 함께 생경함을 털고 훨씬 친숙하게 다가온다.

“불교적 인식을 말해볼 수도 있겠군요. 불교에서 말하는 깨우침에 관한 핵심논쟁이 돈오(頓悟)냐 점오(漸悟)냐 하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탁 깨우치는 게 돈오라면, 점진적으로 수행해가면서 깨우치는 게 점오입니다. 사실 둘은 하나예요. 세상을 보는 이해의 틀이 보이지 않게 성장해 가다가 어느 한순간 세상의 새로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지요. 탁 깨우치는 찰나만 보면 돈오입니다. 그러나 거기까지 이르게 된 내공은 보이지 않게 쌓여간 것이니까 점오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과학에서의 깨우침도 돈오라고 봅니다. 연속적으로 조금씩 이해되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탁’하고 전모가 보이는 경우가 많으니까.”

토머스 쿤이 얘기했던 ‘패러다임의 전이’가 바로 그런 것이며, 그런 전이가 일어날 때마다 전에 보이지 않던 게 보이게 되고 대립관계가 해소되며 단절돼 있던 것들이 서로 연결되고 확장됐다. 따라서 자연과학과 인문학, 고전역학과 현대물리학, 개체와 온생명, 동양과 서양, 의식과 물질 등의 이원적 분화, 또는 철학사상의 정신과 신체, 본질과 현상, 실체와 양태, 경험과 이성 등의 이분법적 존재론 및 인식론의 분화도 인식의 심화확장과 함께 가려져 있던 오류와 한계를 드러낸다.

장 교수는 의식과 물질도 일원론적으로 파악한다. ‘의식’과 ‘주체’도 신경생리학으로 분석 가능한, 물질이 지닌 또다른 특성의 발현으로 보는 일원양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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