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천 선생께 글을 쓰기 전에 며칠 간 한철연의 글을 읽다보니 전호근 선생의 글이 많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옛날에 쓴 글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2001년 쓴 글은 당시 상당히 감정적으로 격한 상태에서 쓴 것이라 좀 야비한 구석이 있으나 그냥 옮겼습니다(1% 정도의 교정)
교수 어쩌고 한 얘기는 욕먹어도 쌉니다.
그러나 아직도 전호근 선생의 글 내용에 대해서는 이해가 안 됩니다. (200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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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자를 웃긴 남자>를 쓴 이경숙에 대해 중앙일보 기자 배영대가 작성하거나 관여한 기사
2. 이 중 2001년 4월 30일 중앙일보에 실린 전호근의 칼럼
3. 전호근의 칼럼에 대한 저의 비판 (200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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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노자를 웃긴 남자>를 쓴 구름(이경숙)은 자기 글에서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에게 밥도 얻어먹고, 홍회장의 배려로 <노자를 웃긴 남자> 선전에 엄청난 혜택을 입었다고 밝혔습니다. 구름 말대로라면 배영대 기자는 홍회장의 하수인입니다. 배기자는 당시 기자 초년생이었지만 홍회장 지시를 지시 그 이상으로 잘 따랐습니다.
당시 홍회장은 무슨 생각으로 구름과 구름 책 띄우기를 했을까? 저 나름의 짐작은 있습니다.
아래 중앙일보 기사 목록의 대부분이 배기자의 작품입니다. 다른 신문사의 기자들도 대체로 배기자의 판단을 따랐습니다. 그 이유 중 한 가지는 배기자가 서강대 철학과 대학원에서 노장사상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비교적 노자에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출판 담당 기자들의 인문학적 무식함과 무성의, 그리고 기회편승주의가 합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래 중앙일보 기사 중 다른 기자의 글은 구름과 무관한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기자들이 모두 구름 띄우기에 동조한 것은 아닙니다.
당시 중앙일보의 행태는 지금까지도 <노자>에 대해서 수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고, 수많은 <구름 노자> 멍청이들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기자들 모두 이 사건을 지나간 일로 생각하고 있겠지만, 이 추잡한 사건에 대하여 밝힐 한 편의 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2008.06.05)
*2000.12 『노자를 웃긴 남자』 출간 이경숙 자인출판사
2000.12.16 중앙일보 신간 소개 『노자를 웃긴 남자』 배영대
2000.12.21 중앙일보 ‘[2000 새뚝이] 1. 사회-도올 김용옥씨’ 우상균
2001.01.04 중앙일보 ‘도올의 『논어』 강의가 더 크려면’ 김기평
2001.02.09 중앙일보 ‘[중앙시평] 소인이 군자를 講하는 시대’ 서지문(고대 영문학과 교수)
2001.02.17 중앙일보 ‘독창적으로 논어 해설한 『도올논어2』 관심’ 배영대
2001.02.17 중앙일보 “[김용옥식 ‘새로운 논어해석’]” 조우석
2001.02.22 중앙일보 ‘도올 김용옥씨 “웃기려는 강의 아니다.” 배영대
2001.02.24 중앙일보 ‘인상비판식 도올 논쟁 유감’ 이경숙 인터뷰 배영대
2001.02.27 중앙일보 ‘[분수대] 사문난적’ 이경철
2001.03.03 중앙일보 ‘[북카페] 도올논쟁 점입가경’ 배영대
2001.03.10 중앙일보 ‘[저널 리뷰] 봄호에 일제히 도올 비평 다뤄’ 배영대
2001.03.11 중앙일보 ‘[동양학 읽기] 1. 고전 읽기는 어렵지 않다’ 이경숙
2001.03.18 중앙일보 ‘[동양학 읽기] 2. 동양학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경숙
2001.03.25 중앙일보 ‘[동양학 읽기] 3. 고전을 다시 읽자’ 이경숙
2001.04.01 중앙일보 ‘[동양학 읽기] 4. 고전의 독해’ 이경숙
2001.04.08 중앙일보 ‘[동양학 읽기] 5. 고전의 독해(2)’ 이경숙
2001.04.22 중앙일보 ‘[동양학 읽기] 6. 연재를 끝내며’ 이경숙
-위의 글 6편은 전면 칼럼입니다.
2001.03.16 중앙일보 ‘[중앙시평] 화나면 밥도 안 먹는 군자?’ 서지문(고대 영문학과 교수)
2001.04.16 중앙일보 ‘이경숙 ․ 김용옥 동양학 논란을 보고...’ 홍광훈(서울여대 중문학과 교수)
2001.04.21 중앙일보 ‘[삶과 문화] 센 자를 물어 뜯어라’ 홍사종(숙대 문화관광학 교수)
2001.04.21 중앙일보 ‘[상반된 시각으로 본 도올 동양학]’ ‘...일본 베끼기’ 배영대
2001.04.27 중앙일보 ‘[상반된 시각으로 본 도올 동양학]’ ‘...인문주의’ 배영대
2001.04.30 중앙일보 [도올 ․ 이경숙 동양학 논란을 보고] “저마다의 공자만 있고 모두의 논어가 없다” 전호근(철학박사, 전통문화연구회 고전연구원 교수)
2001.03. 『월간 중앙 3월호』‘도올은 종교의 참메시지 모르는 철부지’ 이상학(주 중국 상하이 총영사관 영사)
2001.04. 『월간 중앙 4월호』 ‘누가 진짜 <노자>를 웃겼나’ 배영대
2001.04. 『월간 중앙 4월호』‘노자를 웃긴 남자 도올을 울린 여자\ 배영대
-『월간 중앙 4월호』20페이지에 달하는 이경숙 특집이었습니다.
2001.05.22 중앙일보 ‘TV <도올논어>김용옥씨 돌연 중단’ 배영대
2001.05.23 중앙일보 ‘<도올의 논어이야기> 중단 배경에 고심’ 우상균
2001.07.12 중앙일보 ‘<동양학 논쟁> 김진석 - 김상환 교수 <교수신문>서 공방’ 정재왈
*2004.01 『완역 이경숙 도덕경』 「도경」, 「덕경」 출간 이경숙 도서출판 명상
2004.01.14 중앙일보 ‘<도올 저격수> 이경숙 컴백’ 배영대
2004.01.19 중앙일보 [사람사람] ‘완역 도덕경` 펴낸 아줌마 논객 이경숙씨’ ‘도올 비판은 오류잡기의 첫 단추’ 배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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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 목 도올·이경숙 동양학 논란을 보고 (전호근교수)
[도올·이경숙 동양학 논란을 보고] 2001.04.30 중앙일보
“저마다의 공자만 있고 모두의 논어가 없다”
전호근(철학박사, 전통문화연구회 고전연수원 교수)
논어를 둘러싼 최근의 열기는 우리 사회의 인문학적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는 일대사건이다.
많은 사람들은 도올 김용옥씨와 이경숙씨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각기 마음 속에 그려두었던 공자의 모습과 비교해 보며 재미 있어 하기도 하고 혼란스러워 하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공자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 중에서 도올의 공자는 단연 눈길을 끈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의 공자는 짱구머리에 무사와 무당의 자식이며 도둑패거리이기도 하다.
물론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런 것들을 중시하지 않는다. 공자의 머리가 짱구였다는 말은 공자의 키가 컸다는 말 만큼이나 알려주는 것이 별로 없고, 무사와 무당의 자식이란 추측도 남자와 여자의 자식이라는 말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학자들만 사는 것이 아니다. 이게 중요하다. 학문적으로 타당한 것만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동양학계의 스타 도올과 아줌마 학자 이경숙씨의 공로를 높이 산다. 물론 그들을 학문적으로 높이 평가해서가 아니다.
***학문을 우스갯거리로 만들어
그들의 공은 학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의 생산에 있기 때문이다.
도올 최대의 공로는 그가 아무리 어려운 한자를 써도 사람들이 경청하게 한 데 있다. 도대체 그런 기적이 어떻게 가능한지 감탄할 뿐이다. 반면 이경숙씨의 경우는 전문적인 학습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라도 누구나 열정만 있으면 고전의 원문을 직접 읽으면서 감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논어를 가슴 속에 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우리에게 종교와 이념을 초월하는 공유의 텍스트가 없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가슴 아픈 일이다. 만약 논어가 그런 위치에 오르는 꿈이 실현된다면 그것이 도올과 이씨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기꺼이 수긍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학문적 철저함을 우스갯거리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과오를 저질렀다. 도올의 강의를 듣고 있자면 마치 맞춤법이 틀린 글을 읽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불안하다.
한 강의에서 도올은 공자의 제자 증삼(曾參)을 비난하면서 맹자에 나오는 일화를 근거로 제시했다. 원문의 내용은 `무우인어아실 훼상기신목(無寓人於我室 毁傷其薪木)` 으로 `내집에 사람을 붙여서 땔나무를 훼손치 않게 하라` 는 뜻이다.
그런데 도올은 이 부분을 `우리집에 절대 사람이 살아서는 안돼` 라고 번역했다. `무(無)` 는 `훼상(毁傷)` 을 부정하는 표현인데 도올은 `우(寓)` 를 부정하는 표현으로 착각했던 모양이다.
또 노자 80장의 `낙기속(樂其俗)` 을 들면서 `(통치자가)풍속을 즐겁게 해 주어야 한다` 고 번역했다. 하지만 이 문장은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풍속을 최고의 것으로 여기게 하여 다른 사람의 것을 욕심내지 않게 한다` 는 뜻이다.
그래야 바로 뒤의 구절 `민지노사 불상왕래(民至老死 不相往來 : 자신의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라는 노자 자신의 해설과 상통한다. 노자를 무시하고 노자를 해석하는 오류를 저지른 것이다.
또 중용(中庸)의 `달도(達道)` 를 `도달해야 할 도` 라고 번역했다. 하지만 `달도` 의 `달(達)` 은 `통(通)` 과 같은 뜻으로 달도는 천하의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적인 도라는 뜻이다. 서울대 강연에서도 그는 장자(莊子)에 나오는 `지어지락(知魚之樂)` 의 맥락을 잘못 이해하여 장자가 직관을 강조했다는 억지 결론을 이끌어냈다.
***공자 주석도 틀렸다고 할 판
다행히 그의 이런 오류는 학자들만 알았던 것이 아닌 모양이다. 보다 못해 아줌마 학자 이경숙씨가 칼을 빼들었다. 이씨의 『노자를 웃긴 남자』는 그래서 나온 책이라 한다. 재미있다. 더욱 놀랄 만한 것은 도올의 잘못을 상당 부분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적인 학습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옥편 한 권에 의지해서 오류를 밝혀낼 수 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적이 안도감을 준다.
그런데 두 사람은 닮은 구석이 있다. 이를테면 도올은 자신의 해석을 내놓으며 기존의 해석을 깡그리 부정해 버린다. 필요하면 공자의 제자들이 말한 내용조차 무시해 버린다. 어처구니없는 노릇이다.
공자에게 제자가 없었다면 논어가 어떻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겠는가? 공자의 제자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공자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는 시도 자체를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이와 같은 독단성은 이씨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이씨는 논어의 제1장에 나오는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 :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마음 속에 노여움을 품지 않음)` 을 대단히 기발하게 번역했다. `사람이 공부하다가 모르는 것이 나오더라도 화내지 않는다` 는 뜻으로 본 것이다. 굳이 오역이라고 말할 것도 없다.
만약 공부하다가 모르는 것이 나왔다고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군자가 아닐 뿐더러 그 사람이 제정신인지 의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정당한 비판.지적은 수용을
그런데 문제는 오역을 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진짜 과실은 맥락을 놓친 해석을 내놓고는 그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이천년 동안 모두 잘못 해석해 왔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다간 공자가 주석을 달아도 틀렸다고 할 판이다. 도올의 과오를 비판하면서 그 자신도 도올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기존의 해석에만 얽매이는 고루한 태도를 거부하고 고전을 과감하고 새롭게 해석하려는 이들의 시도는 칭찬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새로운 시도가 건강한 비판을 거부하는 독단적 논조에 의해 지지되는 것이라면 고루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겠는가.
문제의 심각성은 이와 같은 현상이 두 사람만의 과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정당한 비판이나 지적을 거부하는 독단적인 태도는 이들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를 합리화하게 한다.
또 무책임한 태도는 두 사람을 군중 속에 숨는 존재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독단은 무책임을 자양분으로 삼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학문적인 풍토 속에서 `저마다의 공자` 는 있을지 몰라도 `모두의 논어` 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지혜를 어디에서 찾을까□ 논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고루해지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독단에 빠진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 논어 위정편)` . 지금이야말로 논어의 지혜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전 호 근 <철학박사, 전통문화연구회 고전연수원 교수>
▶1994년 성균관대학교 유학과 대학원 박사 ▶현재 전통문화연구회 고전연수원 교수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정보자료부장
◇ 주요 논문 : 「先秦儒家의 天思想 變遷에 關한 硏究」「16세기 朝鮮 性理學의 특징에 관한 硏究」「朱子學의 論理的 構造와 理念的 志向에 관한 硏究」「花潭 徐敬德의 氣一元論」
◇ 주요 저서 : 『강좌 한국철학』『논쟁으로 본 한국철학』『현대 신유학』(공저, 예문서원)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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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저급한 도올 비판을 비판한다>(김상철, 씨앗을 뿌리는 사람, 2006) 75~85 페이지
**비판을 위한 비판 (전호근 칼럼을 읽고)
2001년 4월 30일 월요일자 중앙일보에 <도올 ․ 이경숙의 동양학 논란을 보고>라는 칼럼을 쓴 전호근은 전통문화연구회 고전연수원의 교수라는데, 나는 교수라는 직함을 아무 데나 붙이는 것은 공자가 가장 싫어하는 ‘참월(僭越)’이라고 생각한다. ‘참월’이라는 것은 자기에게 해당되는 것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것처럼 행세를 하는 것이다.
칼럼의 제목도 말이 안 된다. 북과 장구를 이경숙과 배영대 기자가 다 치다가 제풀에 떨어진 것은 만인이 다 아는데, 무슨 도올과 이경숙의 논란이 되는가?
내가 대학 교수를 대단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무조건 전호근이 진짜 대학 교수만한 실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기는 은연중에 대단한 학자 행세를 하면서 다른 사람을 이렇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전호근] “그러나 세상에는 학자들만 사는 것이 아니다. 이게 중요하다. 학문적으로 타당한 것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동양학계의 스타 도올과 아줌마 학자 이경숙씨의 공로를 높이 산다. 물론 그들을 학문적으로 높이 평가해서가 아니다.”
나는 전호근이 글을 비겁하게 쓴다고 생각한다. 첫째 이유는 글 전체에서 도올을 이경숙과 의도적으로 병치(倂置)하여 동격으로 만든 점이고, 둘째는 ‘세상에는 학자만이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학자 아닌 사람도 생각해 주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저는 학자로 만들고 도올은 학자에서 제외시킨 것이다. 여기서도 도올을 이경숙과 병치시켜 놓았다.
[전호근] “그들은 학문적 철저함을 우스갯거리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과오를 저질렀다. 도올의 강의를 듣고 있자면 마치 맞춤법이 틀린 글을 읽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불안하다.”
나는 전호근의 ‘학문적 철저함’과 ‘불안한 마음’에 대해 알아보느라 교보문고에서 한 시간을 보냈다. 다시 도올에 대한 전호근의 말을 들어 보자.
[전호근] “한 강의에서 도올은 공자의 제자 증삼(曾參)을 비난하면서 맹자에 나오는 일화를 근거로 제시했다. 원문의 내용은 ‘무우인어아실 훼상기신목(無寓人於我室 毁傷其薪木)’으로 ‘내 집에 사람을 붙여서 땔나무를 훼손치 않게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도올은 이 부분을 ‘우리 집에 절대 사람이 살아서는 안 돼’라고 번역했다. 무(無)는 ‘훼상(毁傷)’을 부정하는 표현인데 도올은 ‘우(寓)’를 부정하는 표현으로 착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한문을 줄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러나 나는 전호근같은 자칭 학자의 말을 그냥 믿는 사람도 아니다. 도올은 ‘절대’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그래서 <도올 논어> 1권에서 확인해 보니 위의 한문이 실제로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다. (사실 이 글은 번역이 아니라 그 내용을 도올이 드라마틱한 대화체로 구성한 것이다.)
<도올논어> 1권, 201 쪽
“내가 이 집에 없을 동안 어떠한 사람도 여기 들어와 살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풀 한 포기도 나무 한 그루라도 다치지 말게 하여라.(無寓人於我室, 毁傷其薪木.)”
전호근은 도올의 번역을 조금 악의적으로 변조했다. 그래도 큰 뜻은 다르지 않으니 넘어가자. 그런데 전호근이 학자 취급을 하지 않는 도올의 <논어> 번역은 전호근이 보기에 당연히 틀린 곳이 많을 텐데, 하필 ‘집을 지키느니 마느니’ 하는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택했을까? 나는 여기에 도올을 깎아내려야 하는 전호근의 비밀이 있다고 본다. 이 이야기는 조금 뒤에...
나는 전호근이 도올과 동격화시킨 이경숙과는 달리 잘 모르는 부분이 있을 대는 여러 책을 참고해 본다. 이경숙은 옥편 하나만 있으면 되지만...
<도올논어>는 도올이 책에서 밝혔듯이 여러 가지 주석서를 참고하여 쓴 책이다. 그런데 전호근은 자기의 해석이 맞고, 도올이 착각으로 틀렸다고 너무도 당연한 듯이 이야기한다. 그래서 내가 교보문고까지 가서 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 ‘무우인어아실 훼상기신목(無寓人於我室 毁傷其薪木)’의 번역
1) A형 번역
성백효(<맹자집주>, 전통문화연구소: 성균관 한림원 강사)
내 방에 사람을 붙여 두어 섶과 나무를 훼상하지 말도록 하라.
이기동(<맹자강설>, 성균관대 출판부: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장)
네 집에 사람을 살게 하여 섶이나 나무를 훼손하지 말도록 하라.
전호근(전통문화연구회 교수, 성균관대 박사)
내 집에 사람을 붙여서 땔나무를 훼손치 않게 하라.
2) B형 번역
도올(<도올논어> 1권, 통나무; 전 고려대 교수)
내가 이 집에 없을 동안 어떠한 사람도 여기 들어와 살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풀 한 포기도 나무 한 그루라도 다치지 말게 하여라.
차주환(<맹자>, 범우사; 전 서울대 교수)
다른 사람을 내 집에 들이지 말고 집의 풀과 나무를 망가뜨리지 말아라.
김종무(<맹자신해>, 민음사; 서울대 박사)
아무도 내 방에 들어 와서 그 초목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라.
홍인표(<맹자>, 서울대 출판부; 서울대 교수)
내 방에 사람이 묵지 않도록 하고, 땔나무를 훼손하지 마라.
박경환(<맹자>, 홍익출판사; 고려대 박사)
내가 떠난 다음 다른 사람이 들어와 살거나 마당의 나무를 손상시키지 못하게 하라.
명문당 편(<사서삼경>, 명문당)
다른 사람을 내 집에 들이지 말고 집의 풀과 나무를 망가뜨리지 말아라.
제임스 레게(James Legge)(
Do not lodge my persons in my house, lest they break and injure the plants and trees.(내 집에 아무도 살지 못하게 하라. 그래서 그들이 풀과 나무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하라.)
도올과 같은 의미의 번역을 많이 소개한 것은 전호근의 번역이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전호근이 말한 것처럼 도올이 착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올의 번역은 ‘무(無)’ 자가 두 구절을 모두 부정한다는 것이다. 전호근식 번역을 하려면 부정사인 ‘무’ 자가 뒤 구절 앞에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전호근의 말대로라도 집에 사람이 살면 땔나무가 줄어들지 그냥 남아 있을 수 있는가? 전호근은 자기가 존경하는 증자를, 저 혼자 피난가면서 집에 있는 땔나무가 없어질까 걱정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나는 누구의 해석이 맞다고 판단을 내릴 권위가 없다. 그러나 전호근은 기껏 잘 해 봐야 해석의 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남을 비난하는 데 사용한 것이다. 전호근이 자기의 번역과 다른 번역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올의 번역이 착각이라고 했다면 전호근은 나쁜 사람이다. 몰랐다면 전호근은 무식한 것이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다.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장인 이기동을 포함하여 성균관대에 관계된 사람들은 모두 전호근식 해석을 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언제나 <사서집주(四書集註)>를 쓴 주자(朱子)의 해석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주자의 해석만이 옳다고 하는 것이다. 주자의 주가 없는 부분은 또 다른 권위자가 해석하면, 모두 그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예에서 보듯이 성균관식 해석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전호근이 <논어>의 문장도 아닌 이 문장을 골라서 도올이 틀렸다고 한 이유가 있다. 도올이 이 구절을 인용하여 증자(曾子=증삼)의 행위를 비난했기 때문이다.(<도올논어> 1권 200쪽) 이 구절은 원래 <맹자/ 이루 하>에 실려 있고,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증자가 큰 스승이 되어 고향인 무성(武城)에 살 때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여 극진히 모셨다. 하루는 월나라에서 도둑 떼가 침입하여 누가 피난을 권유하자, 증자는 집 잘 지키라고 하고는 떠난 것이다. 도둑 떼가 물러가자 집수리를 시킨 후 잽싸게 돌아 온 증자에게 사람들은 자기들을 남겨두고 그럴 수 있냐고 항의하였다.
맹자의 글은 이에 대한 변명이자, 증자가 자기만 피난 갔다 온 것을 합리화하는 내용인 것이다.
나는 전호근이 도올의 <논어> 강의를 들을 때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는 증자, 맹자, 주자에 대한 존경심을 전제로 하지 않은 도올의 <논어> 해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증자에서 맹자(孟子)로, 그 후에 주자로 이어지는 전통을 이은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에서 공부한 전호근은 전통 주자학의 계승자로 자부하는 것이다. 원래 정통적 주자의 해석을 거부하는 것은 ‘성리학(性理學)의 가르침을 어지럽히는 도적놈’이라는 사문난적(斯文亂賊)인 것이다. 지금은 민주화된 시대라서 다행이지만, 조선 시대에는 주자의 해석에 위배되는 해석에 죽음이 따르기도 하였다.
다음은 조선 시대의 노론의 영수였던 송시열의 말이다. 송시열은 <논어>, <맹자>보다 <논어>, <맹자>에 대한 주자의 해석인 <사서집주(四書集註)>를 더 중시했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에서 인용한다.
[송시열] “하늘이 공자에 이어 주자를 내셨으니 참으로 만세(萬世)의 도통(道統)이다. 주자 이후로는 일리(一理)도 밝혀지지 않은 것이 없고 일서(一書)도 명확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윤휴가 감히 자신의 견해를 내세워 가슴 속의 억지를 늘어놓으니, 윤휴는 진실로 사문난적이다.”
이번에는 반(反)주자학자 윤휴의 말이다.
[윤휴] “천하의 많은 이치를 어찌 주자만 알고 나는 모르겠는가? 이제 주자는 그만 덮어두고 진리만을 연구해야 한다. 주자가 다시 살아온다면 나의 학설을 인정하지 않겠지만 공자가 살아온다면 내 학설이 승리할 것이다.”
나는 주자가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본다. 주자는 송시열과 같은 주자학자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주자도 공자의 <논어>로 돌아가자는 윤휴의 태도를 옳다고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자의 <사서집주>도 당시의 시대의식의 표현이며, 시대가 달라지면 주자의 해석도 달라질 것이다.
또 전호근은 통행본 <노자> 80장의 ‘낙기속(樂其俗)’이라는 구절을 들어 도올을 비판한다. 우선 전호근의 말을 들어보자.
[전호근] 도올은 또 <노자> 80장의 ‘낙기속(樂其俗)’을 들면서 ‘(통치자가) 풍속을 즐겁게 해 주어야 한다’고 번역했다. 하지만 이 문장은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풍속을 최고의 것으로 여기게 하여 다른 사람의 것을 욕심내지 않게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바로 뒤의 ‘민지노사 불상왕래(民至老死 不相往來; 자신의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라는 노자 자신의 해설과 상통한다. 노자를 무시하고 노자를 해석하는 오류를 저지른 것이다.
전호근은 ‘낙기속’ 세 글자에서 많은 깊은 뜻을 읽어내는 대단한 능력이 있다. 그러나 도올의 번역을 직역(直譯)이라 하고, 전호근의 것은 너무 심한 의역(意譯)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남의 것은 번역을 자기의 것은 뜻을 가지고 비교하면 안 될 것이다.
<노자> 80장 전문을 보자. 여기의 번역은 도올의 <노자: 길과 얻음)을 참고하여 본인이 한 것이다.
통행본 <노자> 80장
小國寡民, 使有什伯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소국과민, 사유십백지기이불용, 사민중사이불원사.
雖有舟輿,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使人復結繩而用之.
수유주여,무소승지; 수유갑병, 무소진지; 사인복결승이용지.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감기식, 미기복, 안기거, 낙기속,
鄰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 不相往來.
인국상망, 계견지성상문, 민지노사, 불상왕래.
나라의 크기를 작게 하고 인구를 적게 하라.
수많은 문명의 이기가 있어도 사용치 않게 하고,
백성들이 생명을 귀중히 여겨 멀리 이사다니지 않게 하라.
배와 수레가 있어도 그것을 탈 일이 없게 하고,
무기가 많아도 쓸 일이 없게 하라.
그리고 백성들이 글자 대신 다시 매듭을 쓰게 하라.
백성들이 맛있는 것을 먹게 하고, 좋은 옷을 입게 하며,
사는 것을 편안하게 해주고, 풍속을 즐기도록 해주어라.
(그러면) 그냥 보이고 닭과 개의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나라에도
백성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전호근은 ‘민지노사 불상왕래(民至老死 不相往來)’를 ‘자신의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라고 제 맘대로 확대 해석해 놓고, 여기에 도올의 ‘낙기속’의 번역을 연결한 후 틀렸다고 하는 것이다. <노자>에서 백성들은 자기의 것을 최고라고 생각하여 다른 나라에 안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작은 것에 만족하므로 왕래하지 않는 것이다. 최고가 아닌 것을 최고로 여기게 만드는 것을 우민정책(愚民政策)이라 한다. 도올은 도올대로 번역의 일관성이 있으니, 전호근은 틀린 제 해석에나 전체적 일관성이 있으면 될 것이다.
한자로 된 원문 밑에 우리 말로 되어 있는 것을 번역이라 하고, 그 의미는 독자가 찾아야 하는 것이다. 전호근의 말은 번역이 아니라, 독자가 뜻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거나 해가 되는 제 나름의 해설에 지나지 않는다. (2001.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