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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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중용에서 신독의 의미가 무엇인가?
이병창 2018.01.12 150
전호근 교수가 내게 장자 강의도 보내주시고, 대학 강의도 보내주시니 고맙기 짝이 없다. ‘장자 강의’도 흥미롭게 읽었으나, 이번 ‘대학 강의’도 흥미롭게 읽었다.

대학 강의는 무려 4시간 만에 밥 먹는 것을 잊고서 독파했으니, 그만큼 전 교수의 필력이 나를 사로잡은 것이다. 찬탄의 말을 백번 해도 모자랄 것이다.

전 교수의 설명의 장점은 내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사실 내가 그 장점을 말할 자격도 되지 못한다. 나야 동양철학에 대해서는 귀동냥 수준이니 말이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있어, 질문하고자 한다. 신독의 해석에 관한 질문이다.

사실 내가 대학 시절 ‘대학, 중용 강의’를 들었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의문이다. ‘‘나는 그때 신독을 혼자 있는 것을 피하라라고 배웠다. 당시는 내가 좀 낭만적이라서 고독을 즐겨했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암송하던 시절이었다.

나중에는 거꾸로 신독의 의미가 다가왔다.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혼자 있으면, 망상과 자만에 사로잡히고, 실천의 어려움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독야청정하려 했기 때문이다. 소위 낭만주의의 오만에 대해서 나는 한참이나 살아간 뒤에야 이해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대학 중용의 신독이라는 말이 다시 다가왔다. 그런데 전 교수의 신독 해석을 보니, 약간 혼란스러운 느낌이 든다.

우선 전교수의 본문 해석은 이렇다. “홀로 있을 때를 삼간다”

그 의미는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독이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행위에 대한 보상이나 처벌을 염두에 두지 않는 조건에 놓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신독이란 남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는 뜻이 될 텐데...

그러면 다음 페이지에 “여기서 신독은 오직 나 혼자 있는 상태를 가정한 것이니 칭찬이나 징벌이라는 조건이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라고 해석한 것과 차이 있다.

좀 이상하다. 또 다음과 같은 설명도 서로 어긋난다.

“행위에 어떤 다른 목적이나 이유가 없고 그 행위 자체가 올바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신독입니다.”

여기서 신독은 칸트적으로 해석되어 있다.

하지만 “악취를 싫어하는 것처럼 어떤 행위를 싫어하거나 호색을 좋아하는 것처럼 좋아하게 되면 억지로 마지못해 타인의 시선 때문에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라는 말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자연적 경향성에 따른 실천을 말하고 있다.

전교수의 해석은 독을 목적어로 해석하는데 신독에 관해 다른 사람들의 해석은 또 다르다. 대체로 이를 장소로 해석한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찾아본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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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天, 즉 상제(上帝)와 귀신(鬼神)은 형상도 소리도 없는 존재이나 또한 강림하여 항상 인간들을 낱낱이 굽어보고 있으니, 바로 이러한 사실을 알아 암실(暗室)이나 혼자 있을 때에도 계신공구(戒?恐懼)하는 것이 바로 ‘신독’인 것이다.”라고 ‘天·귀신’과 관련하여 신독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요즘 사람들은 귀신에 대해 과연 그것이 있는 것인가 의심하면서 아득히 알 수 없는 곳에다 버려 둔 까닭에 인주(人主)의 경외(敬畏)하는 공부와 학자의 신독의 의의가 모두 성실하지 못한 데로 귀결되고 말았던 것이다.”라고 하면서 “신독의 공부는 귀신의 덕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라고 귀신의 덕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신독의 개념을 이렇게 알아왔고 지금도 아주 중요한 철학의 범주로 말하고 있습니다.


중용(中庸)에선 “군자는 보지 않는 곳에서 삼가고(戒愼乎 其所不睹), 들리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두려워한다(恐懼乎 其所不聞)”고 쓰고 있다. 이런 경지에 오른 상태가 바로 ‘신독(愼獨)’이다. 남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즉 혼자 있을 때 스스로 삼간다는 뜻이다. 유학에서 말하는 개인 수양(修身)의 최고 단계다. .....중용(中庸)은 이어 “숨겨져 있는 것보다 더 잘 보이는 것은 없고(莫見乎隱), 아주 작은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은 없다(莫顯乎微). 그러기에 군자는 홀로 있을 때 스스로 삼간다(故君子愼其獨也)”고 했다.

난 요즈음 낭만주의적 고독이 오만함을 생각해 볼 때, 위와 같이 장소적으로 독을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즉 혼자 있을 때 삼가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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